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 배관표 옮김 / 후마니타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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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에 가거나 혹은 글을 통해 벌어지는 학문적 논쟁을 살펴보면,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는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서로 쟁점이 되는(혹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개념을 다르게 상정하고 있을 때.

이 경우는 내가 철학과를 선택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한데, '논쟁'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아, 그 쪽에서 말씀하시는 '평등'은 제가 이야기하는 '평등'과는 다르군요."

학문에서 개념을 두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져야하는 것은 맞지만, 대부분의 경우 되려 논점을 빗겨가기 위한 수단이 되곤 한다.

두 번째는 어느 한 쪽에서 자의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뭉뚱거리는 개념을 다시 살려내려고 할 때이다.

이건 굉장히 피곤한 작업인데, 실은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피해가거나 그런 지적에 대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작업이야말로 엄청나게 중요한 과정이다. 물론 이건 학문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달은 그게 2가지 질문을 던지며 논지를 이끌어 나간다.

첫 번째 질문. 평등이 과연 자유를 (일방적으로) 위협하는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평등과 자유라는 개념을 간단히 이항대립으로 놓지 말라고 주장한다.

"어떤 종류의 '평등'이 어떤 종류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일까?"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평등을 기정사실로 볼 수 있을까? 또는 평등도 자유와 마찬가지로 위태롭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수의 이익과 소수의 이익이 상충할 때마다, 다수가 그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행동한다는 이유만으로 다수는 필연적으로 권력을 남용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비난은 불합리하다.

 

오늘도 여전히 벌어지는 일이지만, 평등이 자유를 위협한다는 공포가 곳곳에서 조성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니, 누군가가 위협받는다고 말하는 자유가 정말 자유일까? 위협한다고 하는 평등이 정말 평등일까?

골치 아픈 질문일지 모르지만, 피해가서는 안될 질문이다. 만약 피해간다면, 그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애초 초등교육부터 잘못되었다고(의도를 생각하면 '매우' 결과가 좋지만) 할 수도 있겠다.

우린 분명 평등과 자유를 대립의 관계로 배워왔다. 그것도 한 쪽의 비중이 커지면 한 쪽은 필연적으로 비중이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그러나 저자는 꼼꼼하게 걸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논증'한다.

(이 부분이 참 놀라운 부분인데, 학자이면서도 당위성 때문에 '논증'하지 못하고 '주장'만을 하는 사람들과 정말 비교된다.)

그 논증을 통해 사유재산권이 (기본권인) 자치권과 동급의 권리가 될 수 없으며, 때문에 '위협'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야말로 색다른, 그러나 실은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을 던진다.

기업 내에서 민주주의가 왜 불가능한가?

 

첫 번째는 기업 내의 민주주의가 우리를 더 나은 시민으로 만들고 우리들 사이에서 정치적 평등을 고취시킴으로써 국가 통치에 있어 민주주의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논증이다. 두 번째는 국가를 통치하는 데 있어서 민주주의가 정당하다면, 기업 내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기업 통치에서도 민주주의는 정당하다는 논증이다.

 

  국가 통치에서 민주주의가 정당하다면, 기업 통치에서도 민주주의는 정당하다. 게다가 기업 통치에서 민주주의가 정당하지 않다면, 국가에서 어떻게 민주주의가 정당할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 민주주의는 부정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모든 것을 해결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쨌거나 현존하는 최선의 방책이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훨씬 더 크고 복잡한 사회집단인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정당하다면, 왜 기업에서는 민주주의가 정당하지 않다는 말인가?

이 질문에 이어 저자는 기존의 사례들을 이용하여 기업 내 민주주의가 효율성'마저' 담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는 이 사실이, 왜 현실화되지 못하는 걸까? 또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비난을 받는게 아니던가?

하지만 로버트 달은 아직 현실이 되지 못한 이 '이상론'을 계속 주장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야만 이 '믿음'이 하나의 '목표'로 부상할 수 있고, 그래야만 그것이 '현실'로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이론적 고찰들이 권리를 지켜 주는 가장 강력한 보호막으로 발전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 국가의 국민에게 민주적 절차가 바람직하다는 믿음이 부족하고, 습관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런 믿음이 뿌리 깊지 않다면 민주적 절차는 지켜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굳이 여러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역사적 선례가 존재한다.

('신분제'가 잘못된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제도적 신분의 철폐가 현실이 되었을까?)

 

물론 현실로 구현하는 이 길이 간단하지 않음을 저자도 인식하고 있고, 그래서 내놓는 몇몇 방식들도 '혁명적'인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증명'을 해나가는 것이 장기적인 혁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가능성을 봐야한다.

 

어떤 소유 형태가 좋을지 판단하기 전에 그것이 자본주의적인지 사회주의적인지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질문이 본질적으로 중요한 질문일까? 정말 중요한 질문은 소유 형태에 어떤 꼬리표가 붙어 있는지가 아니라 그 소유 형태가 사람들이 자신의 기본 가치를 실현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이다.

 

역자의 말대로, "기존 주장들은 대부분 소득 재분배와 같이 불평등을 사후적으로 개선하는 문제에 집중"하지만,

로버트 달은 그야말로 근본적인 문제, 그래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바로 헤집고 들어간다.

 

물론 몇몇 부분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특히 노동자의 에너지와 창의력을 더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민주적 리더십의 장점으로 꼽고 있는데,

맥락이야 이해가 가지만 비판의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물론 이런 부분이 책의 핵심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걸리는 건 걸리는 것.ㅎ)

 

그럼에도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도전해볼만한 책이다.

로버트 달이라는 이름에 짓눌려 망설일 수도 있겠지만, 친절한 번역과 많지 않은 분량 덕에 (나조차도) 잘 읽을 수 있었다.

 

역시 학자는 어려운 문제와 의문점을 피해가서는 안되는 법이다. 그런 사람만이 좋은 학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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