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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1984-1987 2 - 우리는 체르노빌 세대
실뱅 사부아 그림, 마르제나 소바 글, 김지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총 4권으로 구성된 이 책 중 전반부에 해당하는 1, 2권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폴란드 소녀 마르지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다. 귀엽고도 소소한 일상이 재밌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공산 폴란드의 ‘그 무엇’을 기대했을 텐데, <페르세폴리스>만큼의 극적인 사건들은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부모님이나 친척이 고위층이나 투사도 아니고, 마르지는 그것들을 인지할 만큼의 나이가 아니었다. 때문에 이 책에서 드러나는 것들만으로 당시의 폴란드 정세가 어땠는지 일목요연하게 알기가 힘들다. 하지만.
우리에게 1980년대는 무엇인가? 누군가는 88올림픽을 떠올릴지도 모르고 한창 호황을 누리던 시절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1980년 광주의 선홍빛 피와 그것을 덮으려는 정부의 3S 정책, 쥐도 새도 모르게 주검이 되곤 했던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것도 우린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시절,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나는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내가 ‘체험’한 1980년에 광주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남 울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까 당연한 일일 것이다. 87년의 노동자 투쟁도 울산이라는 그 핵심 도시에서조차 직접 느끼기 어려웠다. 우리집은 대규모 공단이 몰려있는 동구 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1980년대를 살아간 또 한 명의 마르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되새기는 1980년대와 내가 체험한 1980년대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까? 그 어느 것이 1980년대의 ‘실상’이라고 칼로 자르듯이 구분할 수 있을까? 동네 친구들과 놀고 싸우고, 부모님께 혼나고, 이사를 다니고 했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내 어린 삶 속에도 몇몇 파편들이 존재했다. 어쨌거나 80년대를 살았던 내가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하고 자랐다면, 그것은 권력이 어떻게 그것을 통제하고 억압했는지,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이 어떻게 금기가 되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다. 초등학교 때 기호 1번 국회의원이 나눠준 책받침이 기억이 나고, 집에는 반공 글쓰기 대회 상장이 남아있다. 87년 동구 쪽에 살던 친구가 학교에 못 왔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집에서는 동요 테잎만큼이나 노동가 테잎, 그리고 또 함께 있던 ‘사가’ 테잎(쌍용, 쌍용, I love 쌍용~)을 자주 틀어놓고 놀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렇게 기억으로 남겨진 ‘역사’는 순도가 높고 질서정연하지만, 실제 경험하는 역사는 앞뒤가 맞지 않고 남루하기 그지없다. 또 그 사이사이에 포함된 ‘불순물’은 우리가 ‘역사’로 일컫는 것보다 훨씬 방대하다. 때문에 역사가라는 직업이 여전히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만인이 각기 쏟아놓는 수없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기에 채로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론 이 ‘채’를 곰곰이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이 걸러내는 작업이 얼마나 타당성을 갖는 것인가? 도대체 기준은 뭔가? 하는. 사실은 걸러질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분리해서 순도 높은 금을 캐냈다고 주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그 금이 과연 순수한 금이기나 할까? 1970년대의 강박적인 반공주의를 학생들에게 장황스럽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똘이장군’을 5분 보여주거나 내가 어릴적 반공 글쓰기나 반공 포스터를 그렸다는 말을 해주는 것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이 책 <마르지>에서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악화된 동구권의 경제사정, 쌓이는 불만, 노동운동의 시작, 체르노빌의 여파 등을 이런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실감나게 보여주기에는 아이의 시선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아이의 단순한 시선 속에서 드러나는 현실이야말로 낭중지추일지 모른다. 즉 폴란드사 개설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폴란드사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줄을 서서 배급을 받고, 모든 물품이 같은 소련제로 교체되고, 그 와중에도 미국제에 대한 환상이 존재하고, 공산주의 체제임에도 종교적 색채가 강한 집안 분위기가 있으며,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를 걱정하는 어린 딸이 있는 폴란드.
이 책을 통해 거시적 내러티브를 좋아하는 역사가들은 ‘일상’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볼 기회를 얻을지도 모르겠다.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조에 대해서는 년도와 날짜까지 따져가며 순차적으로 정리를 해내지만, 정작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일상을 영위했는가에 대해서는 “사료가 없어서”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당시의 역사가들이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들의 선배들이 하찮고 흔해빠진 일상을 지우는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이 책의 폴란드와 위키백과상의 ‘폴란드사’를 한 번 비교해보자.
차관 상환, 무역수지 적자, 1979~1980년의 마이너스 성장 등 불안한 경제상황 아래에서의 지도층의 부패로 인한 국민의 정치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1980년 7월 육류 가격인상을 계기로 발생한 노동자의 파업은 강한 정치적 색채를 띠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2개월 동안 전국을 뒤흔들었다. 정부는 8월 31일 그단스크에서 노동자측과 회담하여 파업권과 자주관리노조, 즉 자유노조의 결성권을 인정하는 합의문서에 조인함으로써 공산권에서는 전례가 없는 대폭적인 권리를 노동자측에 허용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결국 기에레크는 혼란의 책임을 지고 9월 해임되고 스타니스와프 카니아가 뒤를 이었다. 노조결성권 획득 후에 결성된 자유노조의 '연대 노조'는 곧 전국적으로 조직이 확산되어 11월에 정식으로 등록되었으며, 38세의 바웬사가 위원장이 되었다. 악화일로의 경제사정은 다시 전국 규모의 노동자 파업을 불러일으키고 1981년 10월 카니아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였으며, 참모총장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가 서기장 및 총리, 국방장관을 겸하게 되었다.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 연대에는 1천여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하여 폴란드 민주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야루젤스키 정권은 1981년 12월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바웬사를 비롯한 노조지도자, 반체제 지식인 5,000여명을 체포함으로써 노조활동은 지하로 잠적하게 되었다. 1982년 5월과 8월에는 계엄령하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감행되었고, 이 사이 주미, 주일대사를 비롯한 폴란드인의 망명사태가 일어났다. 정부는 1982년 10월 자유노조를 불법화하고 1983년 7월 계엄령을 해제한 후 '위기상태법'( 1985년 12월 말까지 시한)을 제정함으로써 계엄해제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였다.
정부의 강경정책에도 불구하고 자유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은 꾸준히 전개되었고, 1987년 11월 정부는 일련의 정치개혁, 경제개혁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나, 부결되어 정부의 위신은 더욱 실추되었다. 1988년 8월 다시 탄광을 중심으로 파업이 연발,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위험에 직면한 정부는 바웬사에게 자유노조 합법화를 등을 토의하기 위한 원탁회의를 제의, 설득하여 파업을 종결시켰다.
우리는 무엇을 기록하고 또 무엇을 지우고 있을까? 당연한 것들이 현실에서 기록되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사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생뚱맞게도 역사가란 직업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