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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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국사'라는 단어와 그 의미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국사는 편협한 내셔널리즘의 표출이며, 그런 의미에서 국사를 '해체'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좀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의도가 불순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해체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안이 마땅치 않아서 그게 문제지만.

 

이 책도 '밖'이라는 수사를 쓰면서 편협함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도로 쓰여진 역사 에세이다.

(저자의 부인이 중국교포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역사서술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진 각주 하나 없는 책이므로 부담 없이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읽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가벼운 형식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게 무지 힘들었다.

앞에서 각주 하나 없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

서술 하나하나에 대한 근거가 무엇인지 불명확한데다가, 서술의 대부분이 추측으로 되어 있다.

문제는 저자가 분명히 추측의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확신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의 서술을 보자.

 

  서희의 담판 100여 년 후에는 여진이 중원을 점령했고 다시 100여 년 후에는 몽골이 천하를 휩쓸었다. 군사적으로는 고려가 이들의 기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정복자도 고려라는 국가를 없애려들지 않았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려 들지 않았다. 뛰어난 문명국인 고려가 자기 색깔을 가지고 살아남는 것이 천하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럴듯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 결코 아니다.

특히 마지막 줄과 같은 서술은 '밖'이 아니라 철저하게 '우리'의 입장에서 해석한 것 아닌가? 다음의 서술도 보자.

 

  <삼국지> '동이전' 변한 조에 "나라에서 철이 나 한과 예와 왜가 모두 여기서 이를 얻었다"고 하는 기사가 특히 눈길을 끈다. 철광석은 흔한 물건이다. 현대의 철광 생산지는 철광의 질이 좋고 경제성이 뛰어난 곳을 택해서 채광하는 것이지, 철광석이 없어서 철을 만들지 못하는 곳은 세상에 별로 없다. 당시 변한이 철 생산의 중심지였다면 그것은 재료 획득의 중심지라기보다 생산기술의 중심지였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철광 생산지 특성이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도 그럴거라고 생각하는 건 무리다.

채광에도 기술이 있고, 그 기술 능력에 따라 채광이 가능한 곳과 불가능한 곳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현대에도 그러니까 그때에도 그랬을 거라는 추정을 하는건 오류에 가깝다.

 

이렇다보니 각주가 없는 이 책에선 무엇이 추측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알 도리가 없다.

추측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어떤 학문도 추측이나 가설 없이 연구가 진행될 수 없다.

하지만 추측도 나름의 '타당성'을 검토 받아야 하고, 그 추측을 뒷받침할 정황을 충분히 찾아야만 한다.

 

이 책에 덧붙여진 수많은 추천사와는 달리, 나는 이 책이 설정한 '밖'이 어디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 밖에서 본 역사가 기존의 것과 얼마나 다른지도 잘 모르겠다. 실망스러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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