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쟁과 사회 -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김동춘 지음 / 돌베개 / 2006년 11월
평점 :
전쟁에서 누가 이겼는가라고 묻는 것은 샌프란시스코 지진에서 누가 이겼는가 묻는 것과 같다 - 케네츠 월츠(447~448쪽)
초등학교(실은 국민학교) 시절, 6월만 되면 학교에서 꼭 하는 연례행사가 있었다. 반공 글짓기, 반공 웅변, 반공 포스터 그리기 등의 대회가 바로 그것이다(실제로 나는 그런 대회에서 몇 개의 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중에 인상 깊이 남아있는 것은 반공 그림 그리기였다. 대한민국 국군이 승리하는 순간이 아니라면, 연상되는 그림은 컴컴한 새벽에 붉은 별을 단 북한군의 탱크가 철조망을 짓밟으며 넘어오는 장면이다. 바로 1950년 6월 25일의 순간을 그린 것인데, 교과서 등에서 이미 익숙해진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마치 내가 38선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장병이 된듯한 느낌을 준다. 그 그림이 포착하는 탱크의 모습은 주로 앞모습이었지 뒷모습이나 옆모습이 아니었다. ‘남침기습’이라는 공식에 걸맞으려면 그렇게 그려지는 것이 당연했으리라.
이 책 『전쟁과 사회』의 저자 김동춘은 역사학자가 아닌 사회학자답게, 한국전쟁의 ‘기원’을 찾는다거나 ‘책임자’를 추궁하는데 몰두하지 않는다. ‘코리언’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시작했는가’보다 ‘왜 시작되었는가’이며, ‘왜 시작되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전쟁 중 무슨 일이 있었으며, 전쟁을 통해 누가 무엇을 얻었는가, 지금 코리언에게, 전쟁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인들에게,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어떤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85쪽). 그래서 이 책은 기존 연구가 집중하고 있던 한국전쟁의 원인, 배경, 경과 같은 부분보다는 ‘피란’이나 ‘점령’, ‘학살’과 같은 조금은 낯선 부분에 주목한다. 그것이 이 책이 기존의 연구서들과 가장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기존 연구들과 ‘다르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책이 출간될 당시의 현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그리고 실은, 2011년 현재가 그 당시보다 더 '퇴행'한 느낌이다).
사실 저자가 한국전쟁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국의 노동운동을 연구하다보니 한국사회의 갈등이 단순한 사회갈등이 아니라 전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성들은 군사적인 것과 사회경제적인 현상을 분리해서 사고해 온 한국의 기존 사회과학과 그러한 패러다임에 입각한 한국 사회연구에 대한 회의로 연결되었다. 군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휴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지 않고 있으며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는 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실을 그동안 필자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 동안 필자가 겪어 온 과정, 그리고 군사적인 조건과 결부시키지 않고 이해해 온 정치적 지배질서와 사회적 갈등, 사회통제 등을 전쟁의 연장, 전쟁의 지속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으로 가닥이 잡혔다. (55쪽)
이런 문제의식을 시작으로 연구를 시작했지만, 저자가 보기에 한국전쟁 연구는 지나친 편향성을 띄고 있었다. 그것이 또 다시 저자의 문제의식으로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전쟁의 영향을 연구하려는 출발점에서 더 나아가 한국전쟁 자체를 일단 다뤄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은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이라크전쟁이 그러하듯이 실제로는 '미국의 전쟁'이자 세계전쟁이었고, 이 점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명칭도 아직은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41쪽)
저자는 기존의 연구에서 이상하게 간과하는 점을 지적해나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힘의 불균형 상태.
우리는 은연중 미, 소가 국제정치에서 대등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라는 전제하에 문제에 접근한다. 이것은 소련과 국제공산주의의 위협을 과장했던 미국발 냉전적 사고의 영향이며 잘못된 가정이다. (43쪽)
그래서 북한의 침공을 공산주의 진영의 자유세계 위협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은 사실상 레토릭에 가까운 것이지 객관적 혹은 주관적 위기를 표현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한반도 개입 역시 맞수가 되지 않는 북한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나라를 지켜 주지 않을 경우 잃을지도 모르는 미국의 국제적 위신 때문이었다. (44쪽)
저자의 이런 지적들은 타당해 보인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통설'로 받아들여지는 내용들이 모두 저 잘못된 가정 하에서 논지를 전개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저자가 사회학 전공이어서 그런지 때때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이론가들을 인용한다던가 서론 부분에서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을 조금은 지루하게 늘어놓는다던가 혹은 사료를 다소 작위적으로 사용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실은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군의 통수권은 군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있으며, 정치가로서 대통령과 의회는 오직 군사작전의 필요에 의해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하면서 전쟁을 수행한다”(105쪽)라는 부분에 기대를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저자의 말대로 “군사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국내외 ‘정치적으로는’ 명백한 이유를 갖고 있었”(45쪽)다면 그 ‘명백’한 이유를 좀 더 상술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성격’이라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문제의식이 시작된 지점은 책에도 직접 서술하고 있지만,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질이 한국전쟁에 기원하는 바가 크다고 보는 가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우리는 ‘한국전쟁은 어떤 전쟁이었나’라는 질문을 ‘한국전쟁은 남북에 각각 어떤 국가, 어떤 사회를 건설했는가’라는 질문과 결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108쪽). 물론 이건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하지만 ‘전쟁의 성격’이라고 할 때, 두 질문은 또 때로는 분리될 필요도 있다. 사후의 일이 그 사건 자체의 성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사건의 해석을 바꾸기는 할지언정.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저자가 ‘문명화 과정’을 종종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사적폭력을 국가가 통제를 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감정의 과잉이 지나친 폭력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1950년의 양 체제가 제대로된 근대 국가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근대적 국민국가의 반열에 오르면 폭력이 제대로(?) 통제될 수 있을까? 또한 폭력이 ‘통제’된다는 의미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한국전쟁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놓고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상이한 역사공동체 간의 전쟁-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과 같은-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난무도 ‘문명화 과정’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이런 의문점들이 남기는 하지만, 아직 '미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언젠가는 완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애초의 의도대로 한국전쟁이 전후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제대로 분석해낸다면, (지금 상태로도 이 책은 좋은 책이지만) 이 책은 굉장한 역작이 되리라 믿는다. 또한 저자가 인용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 “우리가 어떤 것을 칭하는 방식은 실제 그것이 어떤 것인가보다 더 중요하다”(66쪽)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 사회에선 도발적으로 보일 이 질문을 반드시 던져야만 할 것이다(허나 이 책이 2000년에 초판이 나온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부터 하는 나도 이미 자기검열을 시작하게 된 걸까? 여튼 지금 한국사회의 분위기가 이렇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로 신변을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우리는 지금까지 ‘국가 건설’이라는 대의를 앞세워 한국전쟁 전후의 ‘빨갱이 청소’를 정당화해왔지만, 오늘의 시점에서는 누구를 위한 국가 건설이었는가를 다시 물어야 한다. 즉 피학살자가 국가 건설의 희생양이었다는 주장들은 그 국가가 어떤 국가이며, 누구의 국가이며, 그 국가의 정치가 어떤 내용을 갖는지의 관점에서도 비판되어야 하지만, 한반도의 ‘반쪽 국가가 과연 그러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건설되었어야 했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에 의해서도 도전받아야 한다.(381쪽)
어쩌면, 한국전쟁의 연구는 이제 시작단계라고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국제전과 내전이 뒤섞인 이 복잡한 전쟁을 다루면서, 오히려 우리는 '코리언'을 잊어야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과감함이 없다면, 저자가 지적하는 오류-좌파의 미국의 남침유도론이나 우파의 혈맹론, 맥아더 영웅론-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코리언이기 때문이지만, 한국전쟁은 결코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것이 이 전쟁이 비극인 이유이자, 저자가 '코리언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을 밝혀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