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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이로써 '동물농장'을 세 번째 읽게 되는 셈인데, 이번엔 네이버 오늘의 책 소개 때문에 다시 읽게 되었다.
두 번째 읽었을 때가 아마도 군에서 제대한 직후였던 것 같은데, 그 때 읽은 느낌과는 또 다르다.
아마도 러시아 혁명이나 스탈린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조금은 늘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어렸을 적 '동물농장'을 만화로도 봤고 동화책으로도 읽었었는데,
그건 아마도 오웰의 경고를 단순히 반공주의로 생각한 이들의 책과 만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웰의 경고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는 사회주의자임을 자칭했으며, 그렇기에 내부비판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혁명이 어떻게 배반당할 수 있는지, 권력이 독점되는 순간 어떻게 부패가 되는지,
그리고 그 부패되는 순간 대중들이 무지하고 무관심하다면 어디까지 치닫게 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여름 내내 농장 일은 시계처럼 돌아갔다. 동물들은 일찍이 상상도 못했을 만큼 행복했다.입에 넣는 먹거리는 그지없이 달콤했다. 그것은 과거 인색한 주인이 마지못해 동냥주듯 던져주던 그런 먹이가 아니라 동물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위해 생산한 먹이, 진정한 그들 자신의 먹이였기 때문이다.
「동무들, 여러분은 설마 우리 돼지들이 저들끼리만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또는 무슨 특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진 않겠지요? 사실은 우유, 사과를 싫어하는 돼지들도 많아요. 나도 싫어합니다. 그런데도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가져가는 것은 건강유지를 위해서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돼지들이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어야 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돼지들이 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어찌되는지 아십니까? 존즈가 다시 오게 돼요, 존즈가! 그래요, 존즈가 다시 오게 됩니다!」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 아닌가? '존즈'라는 거대한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서, 내부의 잡음을 없애는 것.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는 동안 클로버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클로버는 여러 해 전 동물들이 인간을 뒤집어엎기로 했을 때 일이 이 지경이 되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오늘 있었던 공포와 살육의 장면들은 늙은 메이저가 그들에게 반란을 사주했던 그날 밤 그들이 꿈꾸고 기대했던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담긴 미래의 그림이 있었다면 그것은 굶주림과 회초리에서 벗어난 동물들의 사회, 모든 동물이 평등하고 모두가 자기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회, 메이저의 연설이 있던 그날 밤 그녀가 오리새끼들을 보호해 주었듯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 주는 그런 사회였다.
「동물농장의 주인 여러분, 당신들에게 다스려야 할 하급 동물들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에겐 다스려야 할 하층 계급들이 있습니다」 이 <명언>에 온 좌중이 함성을 질렀다. 펠킹턴 씨는 다시 한번, 동물농장이 식량 분배는 줄이면서 노동시간은 늘인 것을 축하하고 그가 본 대로 이 농장에서는 동물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이 없다는 것도 축하했다.
인간인지 돼지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이 소설의 끝은, 그렇다고 해서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는 허무주의로 해석하긴 어렵다.
조지 오웰의 다른 글에서 나타나듯이 그의 글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쓰여졌다.
우리 시대처럼 소란한 세월을 살면서 이런 문제들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넌센스이다. 이 시대의 작가는 누구나가 다 이런저런 형태로 그 문제들을 다룬다. 그것은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어떤 방법을 따를 것인가의 문제이다. 자신의 정치적 편견을 더 많이 의식하는 사람일 수록 자기가 가진 미학적 지적 성실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도 더 많이 갖게 된다.
조지 오웰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한,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의식하면서 쓴 첫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름 나의 글쓰기 지표랄까 그런 것을 하나 더 얻었다.
정치적으로 써라. 그것만이 너를 정치적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라는.
소설 속 캐릭터와 배경을 실제 역사와 맞춰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동물농장이 우리의 현실과 너무 비슷해서 씁쓸하기 그지 없지만.
조지 오웰의 다른 책들과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을 읽어봐야겠다.
돼지가 두 발로 서던 장면의 충격이 다시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