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고 보니, 이 책도 영화가 있다. 프랑스에서 만든 '마르탱 게르', 그리고 헐리우드에서 만든 '써머스비'.

이 책의 저자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는 '마르탱 게르'의 제작에 자문 자격으로 참여를 했었고,

그 과정 속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충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

국내에서도 문화사, 미시사, 페미니즘 역사 등을 이야기할 때 꽤 많이 회자가 되는 책이기도 하다.

사놓은 건 한참 전이고 뒤적거리기도 많이 했던 책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정독.

 

가정을 이루고 있던 한 남자가 집을 떠났고, 몇 년 뒤 다시 나타는 그 남성은 성실하게 생활을 꾸려나간다.

그 남자가 가짜라는 소송이 걸리게 되었으나, 결백함이 거의 증명될 무렵. 갑자기 등장한 절름발이 남자.

그는 자신이 바로 진짜 '그 남자'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어찌보면 그저 흥미거리에 그치고 말 한 사건을 치밀하게 풀어내면서 다른 가능성을 읽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베르트랑드에게 '주체성'을 부여하여 그녀의 '선택'에 주목했다는 점은 중요한 점이다.

 

명백한 동의에 의해서든 암묵적인 동의에 의해서든, 그녀는 그가 남편이 되는 것을 도와 주었다. 베르트랑드가 새 마르탱에게서 발견한 것은 자신의 꿈이 실현되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16세기의 가치를 인용하자면) 평화롭고 화목하게,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함께 살 수 있는 남자였다.

  그것은 18년 전 자신의 결혼처럼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 것도, 자신의 어머니와 피에르 게르의 결혼처럼 관습에 따라 이루어진 것도 아닌, 창안된 결혼(invented marriage)이었다. 그것은 거짓말로 시작되었지만, 이후 베르트랑드가 묘사했던 것처럼 그들은 "진짜 결혼한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함께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 책이 약간은 과대포장된 면이 있으며(특히 국내에서) 헛점도 꽤 많다는 생각도 든다.

데이비스는 분명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지만, 추측으로 서술되는 부분이 지나치게 많다.

'~일 것이다'는 식으로 서술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은데, 저자가 설계한 '체계' 속에서 그 추측이 타당할런지는 몰라도

독자가 읽기에 그런 추측이 간단히 허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도 적지 않다.

책 앞부분의 지루할 정도로 상세한 배경설명처럼, 이런 추측의 과정을 좀 더 세밀하게 설명해줬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또 한가지 문제는, 국내에서 문화사, 미시사로 소개된 이런 책들이 겉보기와는 달리 썩 '재미'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물론 이건 이 분야 연구자의 잘못은 절대 아니지만, 국내에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 놓은 연구자들에게 일말의 책임은 있다고 본다.

문화사, 미시사의 서술방식이 기존의 그것과 분명 다르고 그래서 때론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일종의 '일반론'은,

직접 그 책들을 읽어보면 무참히 깨져버리는 경우가 많다.(하긴 모든 소설이 다 재미있지는 않지. ㅎ)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산에 올라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보다 항상 더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스펙타클'에 더 환호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이번 학기 강의에서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보라는 과제물을 주기도 했는데,

읽은 학생들 중에 흥미진진 재미있게 읽었다는 반응을 보인 학생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지루했다'는 반응이 훨씬 많았다.)

 

어쨌거나 한 인간의 '재량권'에 관심을 가지고 일말의 가능성을 역사학적 방법을 동원해 풀어내는 것은

정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면서 책 자체에 대단한 감동을 느낀다거나 하진 못했지만, 계속 떠오르는 생각은 있었다.

역사에는 진실이 있을지도 모르나, 역사'학'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이 생각이 회의주의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허무한 회의주의는 아니라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