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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ㅣ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평점 :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을 읽다가 저자가 서경식 선생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 있었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각주를 보니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이라,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음. 니시카와 나가오가 인용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16시 45분발 전차로 빠리를 향한 귀로에 올랐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듯한 남구계(南歐系) · 중남미계 · 아프리카계로 짐작되는 노동자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내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은 인도나 파키스탄 쪽 사람 같았다. 윤곽이 뚜렷한 얼굴은 위엄이 있었으나 몸차림은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고, 피로로 충혈된 눈이 나날의 고뇌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그대로 일찍이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와 밑바닥 노동에 시달렸던 나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보다 2주일쯤 전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입국할 때, 안다유의 프랑스 입국관리소가 다른 승객들은 먼저 통과시키고 나만 기다리게 해놓고 여럿이 구수회의(鳩首會議)를 열더니 프랑스 악센트의 영어로 내게 여러가지를 물었는데, 사뭇 위협조로 "트라바유?"하고 이것만은 프랑스말로 묻는 것이었다. 당신 프랑스에서 일할 셈인가 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싸구려 점퍼에 보스턴백, 수염도 깎지 않은 부스스한 얼굴, 신발은 먼지투성이인 행식이었다. 그래도 마드리드에서는 야바위꾼의 표적이 됐는데.
가진 돈을 내보이시오 돌아갈 항공권 좀 봅시다, 하는 따위로 번거로움을 겪고서야 어떻게든 통관이 되긴 했는데, 그때 나는 북아프리카나 중남미에서 이베리아 반도에 이어진 무수한 백색의 길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길은 스페인에서 한 가닥으로 합쳐져서 장대한 성벽과 같은 삐레네를 우회하여 유럽의 중추, 화려한 빠리로 뻗어 있다. 일찍이 식민지이던 나라들로부터 주린 배를 움켜쥔 지친 얼굴의 사람들이 그 길을 올라온다. 그 길을 통하여 군대와 장사꾼과 성직자들을 송출하고, 그 길을 통하여 모든 부를 반입한 자들은 인간들만은 한사코 통과시키지 않으려고 빈틈없는 관문을 설치하여 기어올라오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밀어던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백색의 길은 중남미 제국과 아메리카합중국 사이, 조선 반도를 위시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일본 사이에도 놓여 있다.
번역자가 다르기에 약간 글이 다르긴 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그 '하얀길'이 보이는듯 했다.
그리고 그 길 양 옆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사람들도.
이 책은 자이니치 서경식 선생이 30대 시절에 쓴 미술순례기다.
본래 서경식 선생의 글이 밝기만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젊은 시절의 글이어서 그런지 더 침울하고 어둡다.
쁘띠 빨레 미술관을 나와서 교황청 앞 박석마당에 섰을 때, 어찌된 영문인지 사람 그림자는 거의 볼 수가 없고, 10월도 그믐께인데 강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밝은 페허랄까. 너무 많은 빛은 짙은 그림자를 만들듯이 마음을 어둡게 한다. 마음뿐 아니다. 몸의 생기마저 급속하게 빼앗아가는 듯하다.
흔히 안광(眼光)이라고 말하지만, 눈에서 방사상으로 밫을 발한다 또는 눈에 수렴한다고 표현되는 그것은 잘못하면 초등학생같이 치졸한 착상으로 끝나버렸으리라.
고흐 이전에 이러한 자화상을 그린 사람이 있었을까. 아니 그보다도 이러한 자화상에 걸맞은 자아가 있었는가.
하긴 그것이 꼭 서경식 선생의 치기어린 젊음 때문만이랴.
그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소수자였고, 그의 두 형은 '조국'에서 10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었으니.
루브르에 가서 '사상범'인 형이 좋아한다는 미켈란젤로의 '노예상'을 보며 형에게 엽서를 쓰려던 그.
'노예'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형에게 보낼 그림엽서에 적을 소감을 정리해보려고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뭐라 이름하기 어려운 광풍이 소용돌이쳐 도무지 진정할 줄을 모른다.
"지상의 숙명에 묶인 인간의 고뇌"라느니, "육체의 어두운 뇌옥에서 벗어나 영원을 움켜잡으려고 하는 혼"이라느니, 그럴싸한 수사학이야 왜 없으랴.
하지만 그런 것을 쓰고 있겠는가.
'노예'는 나의 형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도 선생의 표현들은 정곡을 찌르고, 빛을 발한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 쁘린시뻬 삐오 언덕의 총살'의 복제품을 사오다가 서울의 세관원들이 문제를 삼는 대목.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위대한 예술은 동시에 위대한 선전물이다. 거의 2세기 전에 그려진 한장의 그림이 그 작가하고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극동의 한 나라의 관헌들로 하여금 자국에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부당하고도 잔혹한 일들을 연상케 하고, 그래서 불안한 기분을 일으키게 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그림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작자 미상의 '죽은 연인들'을 보면서.
이 그림이 성공하고 있는 비밀은 졸렬함에 있다. 이 그림에는 그 시대의 삽화나 판화 따위에서 볼 수 있는 대담한 희화화(戱畵化)도, 유머러스한 소박함도 없다. 그뤼네발트의 처절한 터치도, 뒤러의 중후함도, 보스의 출렁이는 상상력도 없다. 이 그림은 예술로 승화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때문에 이 그림 앞에 서는 일은 결코 예술감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비길 데 없이 적나라하고 무시무시한 '죽음의 이미지'와 맞서는 일인 것이다.
책 제목에 '나의'라는 단어가 달려 있듯, 이 책은 매우 개인적인 미술순례기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매우 자세한 설명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그야말로 개인적인 감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림이나 작가가 주어가 되지 않는, 바로 '나'가 주어가 되는 이 책이 주는 울림은 결코 개인적인 것으로 멈추지 않는다.
하긴 '디아스포라 기행'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읽던 책의 한 대목 덕에 다른 책으로 바로 갈아탈 수 있는 것, 이것이야 말로 독서의 즐거움이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