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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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는 게 다 그런 거 아냐? 에이 뭐, 검찰이 다그렇지. 경찰이 그랬던거, 몰랐어?

 

어쩌면 우리는 그런 말을 너무나도 쉽게 해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쉬움'에는 비판보다는 '나도 그럴 수 있지 뭐'라는 이상한 관용이 묻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내부고발자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배반'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는 것일지도.

 

나의 문제제기를 배신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는 배신당한 사람의 입장에 선 것이니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대체, 내가 무엇을 배신당했다는 말인가? 당신은 김용철에게 무엇을 배신당했는가?

순간 말문이 막히는 나를 보며, 이 책은 삼성을 생각하는 책이자, 나를 다시 생각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힘없는 사람 한두 명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는 처벌하되, 힘있는 이들이 똘똘 뭉쳐서 오랫동안 조직적으로 저질러 온 범죄는 처벌하지 않는 사법기관을 신뢰할 사람은 없다. 한국의 사법정의는 한때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하는 수준까지 도달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성공한 재벌'의 경제범죄는 처벌하지 못했다. 삼성 비리에 대해 면죄부가 나온 이후, 경제범죄로 처벌받는다면 그는 '실패한 재벌'이거나 '재벌이 되지 못한 자'가 되는 셈이다. 이런 사례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한 재벌'이 돼라. 그 과정에서 저지른 죄는 저절로 사면 받는다"라는 것.

 

다 그렇다는 거 몰랐냐고? 그렇다면, 그거 알고 있는 당신은, 나는, 우리는, 대체 무엇을 했는가?

너무 서슬이 시퍼런 질문일지는 몰라도, 이젠 싸가지 없게 이렇게 되물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침묵이 마냥 중립이 될 수만은 없으니까.

 

  한편 일부 언론의 왜곡과 많은 지식인들의 침묵과 냉소는 용기 있는 증언자들을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지연되고 있는 경제민주주의의 배후에는 언론과 지식인들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또한 경제라는 이름의 물신을 위해 모든 가치를 뒤로 미루는 오늘의 국민정서 또한 재벌의 범죄를 방관하거나 관대하게 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범이기도 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김용철 씨가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분명 삼성의 비리를 도왔고, 그만큼 부를 누렸'던' 사람이다.

하지만, 김용철 씨 그 자신 또한, 자신이 정의의 사도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양심고백을 하는 대부분의 내부고발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만큼의 벌은 달게 받을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이들을 두고 '단물 다 먹고서는 버림 받으니 뒷통수 친다'라고 한다.

단물은 누가 다 먹은 걸까? 배신은 누가 먼저 한 걸까? 뒷골목의 의리를 이야기한다더라도, 이건 순서가 잘못됐다.

게다가 그 빌어먹을 의리는 그들 사이의 이야기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란 말이다.

 

삼성을 생각하자. 그것은 단순히 한 재벌을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건 우리 사회를 생각하는 것이며, 또 나를 생각하는 것이다.

더불어 나는 앞으로 삼성의 제품을 단 하나도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안사봐야.. 라는 생각은 일단 버린다. 나라도 안쓰겠다. 작은 소비 하나라도 가치 중립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내 공연 보고 싶으면 표 끊고 공연장에 와서 보라는 나훈아 형님의 자존심을, 왜 나는 가지지 못하는가?

남이 누굴 배신했는가 묻기 전에, 나 스스로가 나를 배신하지는 않았는지 묻는 것이 순서다. 조그마한 자존심이라도 있다면.

 

중간중간 사족 같은 부분이 많고, 표현상 조금은 자기방어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어차피 이런 회고록 류의 책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특성이니 감안하고 보시길. 그러나 기회가 된다면 꼭 일독하시길.

'삼성이 다 그렇지 뭐'... 그 이상을 보여준다. 당신이 '다 그렇다'고 알고 있는 것은 정말 얼마되지 않는다.

 

"A라는 사람이 어찌어찌해서 죽었대!"라는 말에, "사람은 다 죽는 거지 뭐"라는 대답만큼 멍청한 대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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