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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문화사 ㅣ 르네상스 라이브러리 5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은주 옮김 / 르네상스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마술이란 시종 일관된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느슨한 관련밖에는 맺지 않는 다양한 현상들을 포괄하는 말이다.
얼마 전 완역되었던 4권짜리 대작, '악의 역사'의 저자가 마녀에 관해 쓴 책이다.
('악의 역사'가 처음 나올 때, 이 책 행사로 끼워서 줬더랬지, 아마;; 그 때 혹해서 살까 말까 했었는데. ㅎㅎ)
아무래도 종교사가인만큼, 르박의 저작과는 조금은 다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역사학자인 르박이 마녀사냥은 왜, 어떤 이유로, 무엇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종교사가인 러셀은 유럽 마술의 기원 자체로부터 출발한다.
각자 다른 범주에 있었던 마술과 이단, 악마숭배가 어떻게 하나로 묶이며 마녀사냥을 낳게 되었는지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종교개혁의 영향, 사법기구/고문의 영향에 관한 부분들은 르박과 비슷한 견해를 유지한다.
게다가 재난이나 질병, 기근과 같은 사회적 조건이 마녀사냥의 원인이라는 느슨한 분석에도 르박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화재나 그 밖의 재해는 민중의 공포심을 부추겨 속죄양을 요구할 가능성을 높인다. 그렇다고는 해도 화재 뒤에 마녀가 고발당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으며, 아무런 재해가 없었는데 마녀 고발이 일어난 경우도 있었다. 재해는 마녀 고발의 한 원인이지만 재해가 마녀 고발을 유발하는 것은 일정한 세계관이 우세한 경우뿐이며, 그러한 세계관을 존재하게끔 만드는 것 또한 일정한 사회적, 지적 조건인 것이다.
그러나 러셀은 르박과는 달리 '마술의 기능'에도 주목하고 있다.
즉 단순한 '희생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마녀사냥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마술은 불행에 대한 책임을 추상적이고 불가해한 힘에서 벌줄 수 있는 특정 개인에게로 전가시킨다. 신이, 혹은 운명이 병을 유발한 것이라면 보복을 해볼 도리가 없다. 그러나 마녀의 책임이라면 상대를 쫓아내거나 그 힘을 저지해 볼 수 있게 된다.......
마술의 또 다른 주요 기능은 이단의 기능과 동일하다. 즉, 마술은 기독교의 경계선을 분명히 함으로써 사탄을 최고 지휘자로 하는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적들의 군대에 맞설 수 있도록 기독교 공동체를 단결시켰다.
이 책이 르박의 책과 가장 다른 점은 현대의 마녀에도 관심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은 종종 역사학자가 도출한 결론에 비해 조금은 더 폭넓은 결론(혹은 경고)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런 광기, 인간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일에 대한 열광이 몇 세기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반세기 동안에도 홀로 코스트, 수용소군도, 캄보디아의 대량 학살을 비롯한 무수한 고문과 처형이 비밀리에 자행되었다. 그보다는 700년부터 1000년까지, 1700년부터 1900년까지의 기간과 같은 비교적 멀쩡한 정신의 시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묻는 편이 오히려 더 합당할 것 같다.
이 광기 상태에 관해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특정한 사회적, 지적 유래가 아니다. 마녀사냥은 본질적으로는 중세의 탓도 기독교의 탓도 아니며, 그렇다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나 르네상스 주술의 탓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마녀사냥이란 인간성에 내재하는 하나의 결함, 즉 악을 타자에게 투영하여 그 사람들을 국외자로 규정함으로써 그들을 가차없이 벌하려 하는 빗나간 요구가 취한 하나의 특정 형태였다....... 악이 취하는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지만, 그 형태의 배후에 숨겨진 악은 이데올로기와는 관계가 없다.
러셀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진보에 대한) 독선을 버리고, 과거에 존재했던 수많은 다양성을 되찾아야 할 때라고 역설한다.
진보라는 관념은 과학적으로 엔트로피의 법칙 때문에 미덥지 않고, 역사적으로도 터무니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마음에 기묘한 신념을 수없이 심어왔다. '야만적인 사회'가 진보해 문명이 되며, 분석적 사고는 종합적 사고에 비해 진보된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또한 실증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주술이 진보해 종교가 되고, 종교가 진보해 과학이 되었다고 가르쳐왔다. 우리는 다신교가 진보해 일신교가 되고, 일신교가 진보해 무신론이 되었다고 믿고 왔으며, 자연을 이용하는 것은 자연과 조화를 도모하는 것에 비해 진보한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일단 이 근거 없는 신념을 내던져 버린다면 우리는 이제까지 완고하게 거부해 온 대안들 속에 있는 가치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분명히 통합적이고, 직관적인 사고의 가치는 분석적 사고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분명 무신론이 종교보다 진보한 형태일 리는 없다. 아마도 다신교는 일신교가 잃어버린 진리로 나아가는 여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용어 번역의 문제는, 내가 보기엔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마법, 마술, 마녀술(이 책에 마녀술이란 용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마녀 등의 번역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진 않는다.
명백한 오역이 아주 가끔 눈에 띄기는 하지만, 눈에 확 띄는 오역이라면 오히려 봐줄만 하니까.
조금 아쉽다면, 이 용어들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따로 부록에 한두 페이지로 정리해서 실어주었다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긴 이 용어들은 지금 학계에서도 어떻게 번역을 해야할지 명확하게 합의가 되지 않은 것들이 대다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witch, witchcraft, socery, soceror, wizard, warlock, magic, magician
당장 witch부터 문제가 되는데, 사실 witch는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번역어인 '마녀'는 그리 적절하지 않은 용어다.
그렇다고 '남자 마녀'도 우스운 말이 되고, '마남'으로 구분을 하자니 이것도 어색하다.
'마인'은 또 demon과 헛갈릴 수가 있어 쓰는게 꺼려진다.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의 도움-_-...으로 감이 오기는 하는데 무슨 단어로 번역을 해야하는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