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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열광 - 어느 인문학자의 스포츠 예찬
한스 U. 굼브레히트 지음, 한창호 옮김 / 돌베개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스포츠,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혹시 그가 먹물이라면 '나 스포츠 좋아하지;라는 얘기를 잘 하진 않는다.
자본주의, 우민정치의 수단 등으로 자리잡아버린 스포츠의 역할(?)이 찜찜한 탓일까.
심지어 스포츠를 사랑하는 학자라도 막상 자신이 갈고 닦은 개념을 적용할 때면 결국 스포츠를 바람직하지 않은 경향들의 어떤 증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빠지곤 한다....(중략)...
간단히 말해, 스포츠 찬양이 그들의 몫은 아닌 것이다. 한편 지식인들이 스포츠를 찬양하는 데 무능력한 더욱 일반적인(그리고 더욱 설득력있는) 이유는 항상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있다.
스스로를 교양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적 경험이란 오직 몇 가지 규범화된 대상과 상황에 의해서만 유발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즉 '문학적'이라고 내세우는 책에 의해, 연주장에서 연주되는 음악에 의해, 박물관에 걸려 있는 그림에 의해, 혹은 무대에서 공연되는 극예술에 의해서만 미적 경험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엘리트 집단은 정전(正典)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사회적 차별화와 특권의 도구가 되어버린 미적 경험에서 이득을 본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요즈음 스스로 교양있는 중산층이라 칭하는 사람들은 이 차별화의 기제를 무식하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보다는 '그저 돈만 많은 사람들'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저자는 '주관적 보편성'이라는 기준을 통해서 볼 때, 그리고 '주변성'이 스포츠만 가지고 있는 특성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스포츠는 틀림없이 미적 경험으로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한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스포츠를 미학적으로 분석하면 '현존'과 '의미'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미의 차원에서 사건은 새롭고 다소간 심오한 변화의 시작을 특징짓는 순간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현존의 차원에서는 '모든' 시작이, 심지어 끊임없이 반복되거나 오래전부터 예상했던 시작조차도 '사건'이라는 지위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의 '세계'에 대한 고찰도 꽤나 탁월하다.
운동선수와 관중에게는 오히려 그런 규칙들이 일상 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 경기중에 강렬하게 집중하여 몰입하게 만드는 전제조건이 된다.
비록 책의 뒷 부분에 가서는 왠지 처지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이 능력은 분명 인문학자로서 반드시 갖춰야할 것이 아닌가 싶다. 내 관심사를 '그럴듯'하게 포장해낼 수 있다는 것.
타인이 어찌보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예찬할 수 있다는 것. '도구'와 결합되는 스포츠를 설명하는 장면을 보라.
...정말로 유명한 선수들은 기계적 지식과 육체적 직관의 조합을 통해 그런 셋업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나타낸다....(중략)...그런데 자동차경주에서 관중이 위다함과 마주하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사실 이 말은 오후 한 나절 내내 경주차량이 단지 몇 번 전속력으로 눈앞을 지나가는 짧은 순간에, 켄타로우스 같은 경주 선수의 윤곽을 포착한다는 뜻이다.
그저 스포츠의 기록과 에피소드만을 담은 책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밑의 책이랑 정말 비교된다. -_-)
오랜만에 '신선함'을 느끼며 재미있게 읽었던 책.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야 어쩔 수 없지만)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에피스드가 주는 감동이 뭔지 대충은 알 거다.
그리고 이 감동을 대충 아는 사람은, 이 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오사카 출신인 내 친구 에이코 후지오카에게 야구와 관련된 가장 소중한 기억은 정확히 패자의 비장미와 관련된다. 그런 우아함은 아레테(탁월성을 향한 노력)가 아곤(경쟁)에 비해 아주 눈에 띌 정도로 우위를 점하게 되는 어떤 수준이 존재하리라고(이것은 당연히 스포츠가 거둔 최고 수준의 성과일 것이다) 희망할 수 있게 해준다.
15년 전쯤 당시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뛰던 코지 아키야마의 팬이었을 때가 정말이지 앚혀지지 않아. 난 텔레비전으로 일본 챔피언전을 시청하고 있었지, 두 명 아니면 세 명쯤 주자가 진루해 있고 투아웃 상황에서 아키야마가 타자석에 들어섰어. 또 한 점 얻을 수 있는 기회였지. 볼카운트는 투스트라이크였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된 상황이었는데 그 다음 투구에 아키야마는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았어. 그런데 그만 스트라이크가 돼버린 거야. 삼진을 당해버린 거지. 이런 아주 중요한 경기에서 자기 팀에 또 한 점을 올려줄 기회를 그만 잃고 말았던 거야. 경기장은 실망한 라이온스 팬들의 큰 한숨 소리로 가득 찼어. 이런 상황에서 아키야마는 타자석에 평소보다 잠깐 더 오래 머물러 있더니 진정으로 아름다운 웃음을 투수에게 보내지 않겠어!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키야마의 웃음은 상대 투수가 그날 야구 시합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느낌, 그리고 경쟁에서 패했지만 그 자신도 이러한 성취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에서 나왔음에 틀림없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