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선생의 마지막 저작이자 자서전이기도 한 대담집. 이 한 권의 책은 선생의 인생만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갖가지 국면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때문에 대담집이라는 꽤나 책장이 잘 넘어갈 것 같은 형식을 취한 이 책은, 생각보다 빨리 읽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런 말 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정말 더디게 읽었다.) 비록 부분부분 선생의 강한 자존심이나 자긍심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부분을 읽을 때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렇지 않았으면 그는 그 세월을 살아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부제가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지식인'이라는 이름을 걸고 사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던 시절(하긴 누가 저 시대를 살기 쉬웠다고 하겠냐마는.) 선생은 적어도 자신이 옳다고 배우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살아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시건방스럽게 선생에게 약간의 불만이 있었다면, 이 책 내내 '현실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물론 나도 모르는 게 아니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정치판이라는 거. 더럽고 비열한 무대라는 것.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저런 더러운 판에는 관심이 없다. 라고 해버리는 것은 좋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태도를 취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저들은 저 '더러운' 판에서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직접 저 더러운 판에 뛰어들어 정치가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더럽고 아니꼽더라도 저들을 계속 바라보고 감시해야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쉬운가. 더러운 정치인들.. 이렇게 혀를 차고 돌아서는 것은. 하지만 돌아선다고 해서 당신 등 뒤에 벌어지는 일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하자. 내가 이렇게 쉽게 돌아서는 순간, 그리고 쉽게 잊을 수 있는 순간에 나처럼 쉽게 돌아서지도 못하고, 돌아설 힘조차 없고, 잊을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쨌거나 선생의 저작 '베트남 전쟁'을 읽고 싶어졌다. 꼭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