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의 사랑
마이클 커닝햄 지음, 김승욱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원래 나는 누군가가 권하는 책을 잘 읽진 못하는 편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결국 읽게 되더라도 권해줬던 그 시점으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바로 읽기 시작했다. 물론 꽤나 더디게 읽었지만.
 
이 책은 격렬한 열정 같은 것을 드러내지 않지만, 읽는데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했다. 감정적으로.
 
내 평안을 위한 가학적 배려.
 
  우리의 교류는 오로지 육체를 통해서만 이루어졌고, 우리에게는 그것이 정상적인 것처럼 보였다. 육체가 아닌 다른 것을 통한 교류를 시도했다면 아마 감상적이고, 부자연스럽고, 무분별한 짓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의 관계에는 성의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 우리는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서로를 경멸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적인 이기심.
 
  눈물이 흘러 넘쳤다. 바비가 내 손을 꼭 쥐어 주었다. 한순간 조나단과 내가 남매이고, 우리 두 사람의 친구인 바비가 우리를 위로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곧 나는 내가 죽은 사람을 위해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자잘한 슬픔 때문에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자 오히려 울음이 더 거세게 터져 나왔다....... 바비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슬퍼하는 것을 알고 그가 나를 배려해 주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죽은 사람이 살아 있던 시절의 모습을 직접 기억하고 있는 반면, 내 슬픔은 전혀 낯선 사람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의 슬픈 기억들에 대한 것에 불과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지금까지 내 감정에만 너무 빠져 있었다.
 
자기방어적 자만심.
 
  어쩌면 사람들은 첫사랑의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는 법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람들은 젊음의 방종으로 인해 너무 쉽게 경솔하게 사랑을 줘 버리고 아직도 우리에게는 누군가에게 줄 사랑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건조한 후회.
 
  나는 사막에서 살고 있던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가 내게서 받은 것이라고는 알맹이 없는 위로의 말뿐이었다. 아버지는 우편함에서 우편 판매 상품 카탈로그와 팜플렛 등을 꺼내 가지고 오다가 죽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보내려고 쓴 편지를 주머니에 넣어 둔 채 부치지 않았다.
 
  특히나 앨리스와 조나단이 격한 감정으로 싸우던 장면에선 힘들어 책을 몇 번이나 덮었다.
 

"조나단, 사랑할 사람을 찾아라."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사랑을 원한다.'
 
  우리는 다른 사랑을 원했다. 우리가 원하는 사랑은 우리가 지닌 인간적 연약함을 잘 알고 그것을 용서해 주면서도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자존심을 작게 축소시키지 않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런 사랑이 가능할 것 같았다. 우리가 서두르지 않는다면, 겁에 질리지 않는다면, 자극적인 도전과 따스함을 함께 갖춘 사랑이 나타날 것 같았다. 우리가 그런 사람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었다.
 
4명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왠지 몇몇 인물의 서술 방식이 자꾸 눈에 걸렸기 때문이다.
특히 바비의 경우(내가 가장 가깝다고 느낀 등장인물이기에 그랬을까.)
왠지 그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텐데.
이런식으로 묘사하진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조나단이나 엘리스, 클레어가 바라본 바비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사랑을 한다고 해서, 내가 바라본 '그 사람'와 실존하는 '그 사람'이 일치할 수 있을까, 하는.
그것이 완전히 일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사랑을 시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글쎄, 잘 모르겠다.
한 사람을 이해해가는 과정, 즉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닐 것이다.
비록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일말의 '가능성', 그리고 내게 아직 남아있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희망을 걸어본다.
내게 남은 능력은 너무나도 보잘 것이 없지만
정말
정말 다행스럽게도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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