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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비용
아룬다티 로이 지음, 최인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61년 생으로 건축학을 공부하고 97년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받아 유명인이 된 저자.
그는 현재 소설 쓰기를 중단하고 환경, 반핵, 반세계화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 저자가 쓴 2편의 시론을 묶은 책. (그녀는 인도극우주의자들에게 '빨갱이 잡년'으로 불린다.)
한편은 인도에서 무차별, 무계획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댐건설 반대에 대한 글이고
다른 한편은 핵무기의 전쟁억제력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반핵에 대한 글이다.
저자가 좀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어서(물론 흥분할만한 일이지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다른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접할 수 있다는 면에서 괜찮은 책이었다.
그리고 그 '다른'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 어찌 이리도 낯설지가 않을까.
인도에서는 세계은행의 무차별적인 대출(요새 광고 많이하는 사채회사나 뭐가 다른가)로
수많은 동식물과 수많은 가난한 이들의 집을 물 속으로 잠기게 하는 댐건설을 해댄다.
문제는 이주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배려는 전혀 없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효과도 전혀 얻지 못한다는 것.
그들(인도의 위정자들과 세계은행)은 이것을 '효율성'이라 부른다.
20만명의 안정적인 급수를 확부하기위하여(혹은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 위하여)
4천만명의 거주지를 완전히 물속에 잠기게 한 후 그들을 내던져버리는 일.
글의 제목처럼 '공공의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어쩔 수없는 일인가?
그렇다면 '공공'은 누구이고 '큰 이익'은 누구의 것인가? 희생자는 누가 결정했는가?
생존의 비용. '생존'의 의미는 천차 만별이다...
이것은 전혀 낯선 장면이 아니다. 올림픽 당시 미관(누구 입장에서의 미관인가)을 위해
사람들을 한 겨울에 허허벌판으로 두들겨 패 내쫓고
청계천에서의 하루의 휴식과 그 휴식하는 모습을 보며 권력의 힘을 만끽하는 자들을 위해
그곳이 삶의 현장이었던 사람들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쫓는 모습.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모습들이다.
그래서 아룬다티 로이는 이야기한다. 희망을 위해 당신의 믿음을 깨뜨리라고.
슬프지만 그 믿음의 파괴 없이는 아무 것도 달라질 수 없다고.
우리가 믿는, 아니 믿고 싶어하는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
저자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우리의 단순한 '믿음'이 어떠한 힘을 가지는 지를 정확히 지적한다.
인도... 하면 어떤 생각을 하는가. 정신적으로 고양된 장소? 평화로운 장소?...
도사인 체하는 사람들은 강연을 하면서 진짜 인도, 인도의 정신은 시골에 살아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이 무슨 허튼 소리란 말인가. 손가락만 한 무화과 잎 하나로 색색의 화려한 물건들이 터질 듯 꽉 들어찬 정부의 수납장을 가려 보겠다는 수작이 아닌가. 인도가 시골에 살아 있다고? 그렇지 않다. 인도는 시골에서 죽어가고 있다. 인도는 시골에서 학대를 받는다. 인도는 도시에 살고 있다. 인도의 시골은 오로지 도시를 섬기기 위해 산다. 인도의 시골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의 노예나 다름없다. 따라서 이들은 지배를 받아야 하고, 계속 살아 있되 겨우, 그리고 간신히 살아가야만 한다.
최근 뉴라이트(젠장 이게 대체 뭐냐!) 쪽에서 교과서를 냈다던데, 참 가관이었다.
체제의 맨 꼭대기에서 온갖 수혜를 받고 커온 그들이 본 역사란 게 바로 저렇다.
자.. 어떤가. 아직도 저들이 이야기하는 '민족'이나 '국가'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고 환상을 가지는가?
촘스키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