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인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에서도 나타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기이다. 그럼에도 이 짧은 에세이가 의미가 있는 것은 이 책이 '번역서'이기 때문이리라. 조선인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어로 책을 쓸 수 없는 재일조선인. 에세이스트클럽상 수상 인사말에서 나는 자신을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으로 표현했다. "나는 우리 민족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반대한다. 그 연장선에 위치하고 있는 재일교포들에 대한 일본의 차별정책을 반대한다. 식민지배의 죄과를 부인하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우익의 사상을 반대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일본어로 사고하고 일본어로 표현하고 있다. 일본어를 거치지 않는다면 나의 사고며 표현 행위마저도 모두 불가능하다. 또 이런 이유로 나의 글쓰기는 주로 일본인들의 눈에만 띌 뿐이다. 요컨대 '나'라는 존재는 일본어라는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인 것이다. 비록 조선말을 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조선인임을 항상 자각하고 있었고 (또는 자각할 수 밖에 없었고) '조국'이라는 말에 남다른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형제들. 때문에 그의 형들은 모두 '조국'으로 유학을 갔으나, 조국은 그들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십수년간 유폐시켰다. 어쨌거나 이 책은 독서기인만큼 많은 책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 내가 읽은 책이라고는 '삼국지'와 루쉰의 '고향' 달랑 두 편 뿐이다. 물론 개인차일 수도 있지만 내 독서량이 지극히 부족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상 깊었던 구절. 어른의 눈물을 아는 자가 아이의 눈물을 안다. 아이의 눈물을 이해하는 자가 어른의 눈물까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읽었던 프랑츠 파농의 책 중 한 구절 또한 내 머리 속에 깊이 남게 될 것 같다. 하나의 다리(橋)를 건설하는 일이, 만일 그곳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의식을 풍요롭게 하지 못할 양이면, 차라리 그 다리는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시민들은 예전처럼 헤엄을 쳐서 건너든가 아니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된다. 다리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른 것이어서는 안 된다. [다리는] 사회 전체에 절대로 데우스엑스마키나Deus ex machina식으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피와 땀, 두뇌 속에서 태어나야만 한다. (...중략...) 시민들은 다리를 개인의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때야 비로소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분량이 많지 않은 책이었지만, 깔끔하고도 정성이 깃들여있는 번역과 함께 즐겁게 읽었던 책이었다. 물론 책도 이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