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삶 그르니에 선집 4
장 그르니에 지음, 김용기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런 아포리즘류의 글은 그다지 읽지 않는 편이다. 어떤 아포리즘이나 그러하듯이 짧은 문장으로 '선언'을 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선언이기에 빛나는 지점도 있기 마련. 어쨌거나 장 그르니에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제목대로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런 단순한(?) 주제로 글을 끌어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재주.

 

시베리아 횡단 여행자나 원양 항해자도 결국은 정착한다. 그는 더 이상 여행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여행>의 패로독스이다. 즉 <존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의도된 <변화>, <존재>를 상정했을 때에만 실재하는 그 <변화>가 이제는 <존재> 그 자체로 탈바꿈하기에 이른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여행하는 자는 자신의 습관에 집착한다. 그는 이전의 그 호텔 그 방에 다시 머무르려 하고 그 음식점의 그 테이블에서 식사하려 한다. 이렇게 해서 방랑자는, 자기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정착민이 된다. 말하자면 여행하지 않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어찌 됐든 왜곡 없이는 정보도 없는 것이다.

 

내가 서 있는 학문의 영역에서도 참고할 말들을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하는 자는 자기만의 그 무엇을 쓰지 못한다. 그는 두 권의 참고 서적을 목발처럼 의지하지 않고서는 걸어 나아가지 못하는것이다. 애초에 자기의 본능을 따랐더라면 달릴 수도 있었을 텐데. 자신의 힘을 믿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는 자기보다 먼저 있었던 자들의 이름을 인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긴다.

 

또 내가 무척이나 동의했던 부분, 침묵에 대한 단상. 나도 평소에 그렇게 생각했던 부분을 명확하게 요약하고 있다.

 

  동등한 관계에서도 무언가를 나타내기 위해 침묵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 관계가 우호적인 감정에 근거해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만약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면, 가령 당신에게 체질적으로 호감을 갖지 않은 어떤 사람과 함께 산책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이보다 더한 고역이 어디 있겠는가. 함께 걷는 내내 그가 말이 없거나 아니면 당신이 말이 없거나……. 그렇지만 다정한 침묵에는, 그것이 동의이든 공감이든 혹은 사랑이든 어떤 공모의 감정이 깔려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동감이 갔던 것은 장 그르니에가 인용한 시구다. ㅋㅋㅋ

 

너는 술 마시는 죄를 범하였구나, 하고 그들은 말하지만

결단코 아니로다, 나는 참으면 죄가 되는 것밖에는 마신 적이 없노라

 

취하지 않고 산 자, 세상을 산 게 아니로다

 

그럼. 그렇구 말구.

 

내게도 언젠가 '아포리즘'을 쓸 수 있는 '현명'과 '통찰'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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