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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칠현, 빼어난 속물들
짜오지엔민 지음, 곽복선 옮김 / 푸른역사 / 2007년 3월
평점 :
죽림칠현. 말 그대로 대나무 숲의 일곱 현자다. 대나무 숲이라 함은 속세와는 멀리 떨어진, 즉 속세의 반대말로 생각하면 될 터. 즉 죽림칠현이라 함은 속세에서 떨어져 자연과 함께 삶을 보낸 일곱 명의 현자를 일컫는 말쯤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중국 위(魏)·진(晉)의 정권교체기에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 개인주의적·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신봉하였다. 그 풍부한 일화는 그 후 《세설신어(世說新語)》 등 인물평론이나 회화의 좋은 제재가 되었다. |
인터넷 상에서 찾을 수 있는 죽림칠현의 '요약'이다. 하지만 '죽림' 조차 세상을 완전히 벗어난 공간이 될 수 없었다. 구름을 타고 노니는 신선들과는 달리 대나무는 뿌리를 땅에 박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칠현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처럼 대나무 숲을 노니는 유유자적한 모습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세상의 풍파를 꼿꼿이 견디며 부러지진 않았으나 결국엔 잘려나갔으며, 누군가는 속세의 욕망과 죽림의 한가로움 사이에서 고뇌했고, 또 누군가는 '죽림'의 이름값을 바탕으로 속세의 욕망을 채우고자 했다. 속세와 가장 거리가 멀었다는 혜강조차 오히려 속세를 너무나 의식했기에 죽림으로 은둔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속세에 얽혀 잘려나간 대나무가 되고 말았다.
사실 죽림칠현의 경우 중국고대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록이 많은 편은 아니다. 이 책의 절반이 혜강와 완적, 두 인물이 중심이 된 이야기인 것은 이에서 비롯한다. 심한 경우, 그러니까 상수의 경우는 공식적인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어려움을 주제(술, 기행, 죽림이라는 공간)와 시, 그리고 후대의 평가로 묶어내는 교묘한 방법으로 넘어갈 뿐만 아니라, 그 방법으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비록 마지막 부분 왕융의 경우, (배경설명을 위해 어쩔 수는 없었겠지만) 지나치게 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오히려 흥미가 떨어져버린 아쉬움은 있지만 이 책의 전체적인 재미를 해칠만큼은 아니었다. 깔끔한 책표지와 편집은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죽림칠현. 이 어찌 그들만의 이야기겠는가. 그 어찌 13억 중국인들만의 자화상이겠는가. 배운 것이 毒이 되는 시대. 그 毒을 삼켜낼 것인가 아니면 내뿜고 다닐 것인가에 대한 고민. 비록 그 毒은 시대가 부여한 것이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몫임을 역사가 보여준다. 죽림칠현으로 묶여 전해오는 저 일곱명의 명사조차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