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의 발견
김민철 지음 / 김영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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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은 명백한 비난이다. "잘못 읽거나 틀리게 읽음"이라는 국어사전의 정의는 오독이라는 말 속에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선고한다. 학계에서 사용하는 좁은 의미로서의 오독도 그러하고(토론자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며 방어를 시도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학계에서 이 단어는 방패가 아니라 칼이다), 비유적인 의미에서도 오독은 좋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거의 없다. 오독은 오해보다도 더 독한 비난이다. 오해는 그럴만한 정황과 맥락이 있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오독은 오로지 읽은 이의 편견이나 무식함에 기인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독서 에세이인데, 오독을 발견한다고?


자칫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다. 저자가 말하는 오독은 그냥 마음대로 읽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다. '오독오독'이라는 부사처럼, 이 책에서 말하는 오독은 오히려 책이라는 세계의 설계자를 존중하며 그의 세계를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나의 삶과 연결할 수 있을 때까지 곱씹으며 읽어나가는 것이다. 마음대로 읽어버리고 말 것이라면, 저자가 북클럽을 삶에 중심에 두고 생활 주기를 맞출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최근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을 출간한 장강명 작가는 벽돌책 같은 "버거운 책"을 읽는 것이 좋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의 인터뷰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꺼운 책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거나 세상의 진리가 그 속에 있었다는 말이 아니었다. "지루해서 책장이 안 넘어가는 대목을 버티는 경험, 어떤 의견에 '정말 그럴싸한걸'하고 동의했더니 뒤이어 비슷하게 그럴싸한 반론이 쏟아져서 혼란에 빠지는 경험, 한 작가가 공들여 제출한 세계관이나 문제의식을 몇 주간 검토하면서 삶의 일부로 흡수하는 경험"이라는 말이었다.


독서는 (요즘 시대에는 더더욱) 고리타분하면서도 고상한 취미가 되어버렸다. 왜 그러한가? 얇은 책이든 벽돌책이든, 책은 일방적이다. 어찌됐거나 작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어야 한다.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은 메모를 끄적거리거나 책을 던져버리는 것뿐이다(흠. 책을 던졌다면 이것도 일종의 패배 아닌가?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책을 끝가지 읽는 이유이기도). 그러다보니, 독서라는 행위가 때로는 답답하고 또 때로는 비실용적인 행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실용적'으로만 생각해보자면,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의 내용은 솔직히 하나도 기억나지 않으니 그런 비난도 나올만 하다. 허나 책은 기억하기 위해서만 읽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기억하지는 못해도 깊어질 수는 있"다(59쪽). 장담컨대,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은 나의 일부를 만들었다. 내용과 별개로 버티고 혼란에 빠지고 질문하고 무너져내리는 경험이 '완독 후의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오독'이 위험하지 않냐고? 작가의 의도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오독만 해버리면, 독서가 무슨 의미를 가지냐고?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없이 많은 오독이 책 한 권 위로 쌓이면? 그 오독들을 공유한다면? 그때 책 한 권은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나가게 되는 걸까? 책은 얼마나 긴 생명력을 얻는 걸까? 얼마나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걸까? (163쪽)


독서를 두고 매우 개인적인 활동일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함께 하는 독서는 또 다른 장르다. 내가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 만나는 걸 그닥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독서 모임을 계속해오는 이유다. 내가 이렇게 읽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또 다르게 읽을 수 있다(경험상 좋은 책일 수록 할 얘기가 많아진다). 그것들이 '오독'이라고 할지라도, C.S. 루이스가 <오독>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저 읽었다/읽지 않았다로 구분하는 독서로는 "여기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지겹도록 늘 나 자신뿐"일 수밖에 없으니. 그러므로 이 책은 다른 '오독'들을 위한 귀한 마중물이다. 책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책이 추동하는 새로운 이야기. 책으로 동시대는 물론, 시대와 공간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공감의 느낌. 그것이 때로는 고통이라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고통이기 때문에 함께 읽어야 한다. 그것이 더 필요한 시대이고, 그 시대에 어울리는 책이다. 저자의 필력 덕에 이런 책을 쉬이 읽어나갈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어떤 고통은 이야기로 치환을 해야 겨우 삼킬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 과정 중에 우리는 스스로를 치유하기도 하고, 인간의 끔찍함을 조금이라도 인내할 수 있게 되고, 그 고통으로부터 멀어져 지금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하죠. 이야기는 마치 거울처럼 나를, 타인을, 시대를 비춥니다. 나의 고통은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되고, 타인의 고통도 그제야 껴안을 수 있는 것이 됩니다. 그 고통을 찬찬히 들여다본 시간을 가진 후에야 우리는 거울에 반사된 빛을 따라서 과거를 등지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걸지도 모릅니다. (178-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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