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막 She, 또는 He

가지고 있는 구릿빛 열쇠로 잠겨있는 문을 열고 화실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두 개의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는다. 커튼이 걷히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맑은 햇살을 받고나면 마치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충전된다. 이 느낌. 이 맛에 지금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런 생활은 사막 위를 떠도는 여행자를 비웃는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합격한 공무원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했을 때 어머니는 처음으로 내게 손을 댔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뺨이 아직도 얼얼하다는 느낌이 든다.

화실을 열겠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어준 것은 아버지였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 여자 혼자 살만한 거주구역을 찾아주시는 건 물론이고 임대하기 좋은 조건의 건물까지 수배를 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출판사에 가져간 동화가 책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이내 마음을 바꾸셨다. 「우리 딸에게도 소질이 있기는 있구나.」 라고 말하시면서.

처음이었다.

가족이 내 꿈을 응원해준 것은. 마치 막연하게 그저 하늘에 떠 있는 꿈을 잡기 위해 뛰어다니던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화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고정수입이 있기 때문에 나는 동화작가의 길도 함께 걸을 수가 있었다. 필명은 메추라기. 티탄 여신 아스테리아가 제우스의 구애를 피해 다닐 때 변했던 새의 이름이다.

동화작가로서의 평은 사실 그저 그런 수준이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그림으로 꾸며진 동화는 아이들보다도 어른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출판사 쪽에서도 가끔 나에게 어른들을 겨냥한 동화를 그리는 게 어떻겠냐고 담당자인 가희 씨를 통해 은근히 압박을 가한다. 그러나 난 아이들이 더 좋다는 핑계로 항상 그것을 거절하고 있다.

아이들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도 아이들의 가슴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순수한 꿈들을 보는 게 즐겁다. 한때 수시나 입시 미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 아이들의 주요 화젯거리는 늘 ‘어떤 대학에 어떻게 가느냐?’ 였다. 그러나 내 화실에서 배우는 아이들은 나이 탓인지 늘 순수하다. 데생의 기초를 배우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의 꿈은 “그림 잘 그리는 대통령이요!” 이라고 떳떳하게 내세울 정도로 뚜렷하면서도 변함이 없다.

창문을 열어 실내의 공기를 환기하는 동안 내가 사용하는 의자에 앉아 가져온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서 생각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다짐한 애인을 버리면서까지 시작한 공무원 시험.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내 주변에 있었던 친구들이 하나씩 떠나갔다.

누가 그랬지. 가장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그런 말들이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마침내 부모님이 그토록 소원하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때 나를 축하해주던 사람은 가족뿐이었다.

내 인간관계가 소원했던 탓이겠지. 아마도 그때의 인간관계가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를 만들었던 거 같다. 단지 사람이 그리워서. 순수하게 나를 마음으로 대해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조금이라도 더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서.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어쩌면 내가 먼저 뿌리쳤던 그 사람의 따듯한 손을 다시 한 번 잡아보고 싶어서.

디자인을 전공한 내가 동화작가의 일을 하게 된 것도 오래 전에 헤어진 애인 때문이었다. 그 사람의 꿈은 소설작가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순수문학은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수의 선택된 자들만이 성공하는 길이었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그건 말 그대로 승산이 없는 카드를 잡고서 도박에 뛰어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나는 결국 그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내가 먼저 연결된 끈을 잘라버렸다.

「언젠가 네가 내 소설의 표지 디자인을 해줬으면 좋겠다.」

꿈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따뜻한 손으로 나를 안아주면서 그런 소원을 얘기하던 남자를 내가 먼저 버렸다. 꿈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 그러나 오늘날― 나는 다시 꿈속으로 들어왔다.

언젠가 내가 꾸었던 꿈을 다시 붙잡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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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얇은 푸른색 종이. 편지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넓은 종이.
깔끔하지않고, 아무렇게나 막 휘갈겨 쓴 듯한 글씨체가 그녀의 감정을 말해준다.
오랜 생각을 했구나. 글을 쓰는 동안에만 생각해놓은 짜깁기가 아니라, 정말로 오랫동안 생각해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말이구나.

그녀가 편지로 말한다.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있다ㅡ 믿었다

내 마음의 반쪽을 가져간 것이 그대이기에,
나는 그대를 잊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나만의 착각.

내 반쪽은 온전히 남아있었고, 그대라는 이름의 새까만 커튼에 가려져 방치되고 말았다.
오늘 나는 그대에게 이 편지를 쓴다.

"나는 그대를 잊었노라" 라고,

어둠 속에서 쓸쓸하게 울고 있었던 온전한 내 반쪽.
그래. 이제 나는 '나'를 온전히 사랑할 것이다.



편지를 다 읽고, 나는 그것을 곱게 접어서 서랍에 넣어뒀다.

그리고 허공에 대고 말한다.


너의 그 반쪽,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동안에 내게 머물다가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간 거야.

그런데 혹시 너는 내 반쪽이 어디로 간 지 알고 있니?
집을 나가 녀석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아. 내 반쪽은 여전히 텅 비어있어. 거기에는 네 온기만 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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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맞물려가는 톱니바퀴가 좋지 않았다.

늦게 일어났고 (일어나기가 정말 싫었다)
밥도 먹지 못하고 (최근에 아침을 꾸준히 챙겨먹는데, 이유는 점심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버스도 3대 그냥 보내고 (나는 만원 버스를 무지 싫어한다. 그런데 늦었는데도 이 여유는 뭘까)
간신히 3분을 남기고 강의실에 들어갔으나 휴강이란다.

아놔, 님.... 이런 비매너... 라고 중얼거리며 오후에 있는 수업이 있기까지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그렇게 4시간이 지나고, 오후 1시.
20분이 지나도록 교수님이 들어오지 않으신다. 그러다가 뒤에서 어떤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오늘 진짜 잠 온다. 교수 교통사고 나서 휴강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다시 10분이 지나자 조교수가 들어와서 하는 말.

"일본문학 담당 교수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오늘 휴강입니다."

...

뒤에 있던 여학생, 자신에게 신기가 있다고 좋아한다. 아놔, 개념은 어디에 묻고 오셨나요. 사람이 다쳤다는데...



씨앗이란 건 땅에 싣는 것인데,

간혹 못된 씨앗을 하늘에 심는 사람이 있다.

반성하라. 그대의 나쁜 바람이 하늘의 장난기를 부추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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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만 피어날 줄 알았던 코스모스가 언덕에 흐드러지게 펴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가을 도로를 무작정 걷다보면, 어느 사이엔가 나는 손을 뻗어 코스모스들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그건 외롭다는 표현입니다.

자연물을 만진다는 것은 외로움의 표현이고 무엇인가와 소통을 하고 싶지만
 
주위에 관계를 맺을 사람이 마땅치 않을 때 하는 행동입니다.

아니라고요?

하지만 알고 계시잖아요.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손을 꼭 잡고 다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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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여러분, 내가 불혹이라는 게 뭐죠?"

침묵.

익숙하다는 듯 교수님은 자기 할 이야기를 계속 하신다.

"불혹(不惑)은 유혹에 빠지지 않는 다는 뜻이잖아요. 얼마 전에 그 의미를 정확하게 깨달았어요."

불혹이라...

나이 40이면 유혹에 왜 빠지지 않는 다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던 찰나, 교수님이 깔깔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불혹에 가까워지니까 유혹이 눈앞에 있어도 체력이 딸려서 못 놀겠더라고요. 깔깔.

여러분도 나이가 불혹에 가까워지면 아실 거예요. 놀고 싶어도 쉬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해요."

아....

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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