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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 마농 레스코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213
아베 프레보 외 지음, 민희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두 편의 작품을 한 권 속에 편집한 이유는 아마도 두 작품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뒤마 피스는 24살 되던 해(1848)에 <마농 레스코(1731)>를 몇 번이나 읽더니 불과 한 달 만에 <춘희>를 발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이 두 작품은 매우 흡사하다. 특히 창녀를 주인공으로 삼고 그녀를 열렬히 사모하는 청년의 회고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과 사랑했던 여인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춘희>를 소개해 보자. 화자인 ‘나’는 어느 날 파리의 뒷골목에서 경매를 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한다. 죽은 창녀 마르그리트라는 여인의 집에서 그녀가 평소 사용하던 물건들을 경매에 부친다는 포스터였다. 나는 거기에 들러서 <마농 레스코>라는 책을 한 권 사들고 온다. 그렇다고 내가 그 책에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마르그리트라는 창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내 집으로 아르망 뒤발이라는 청년이 찾아온다. <마농 레스크>의 책 속에 자기 이름과 사인을 해 놓은 사람이다. 그는 그 책을 자신에게 넘겨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 온다. 나는 기꺼이 그냥 주겠다고 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선물한다. 그는 떠나기 전에 자기의 옛 애인 마르그리트의 마지막 편지를 건네준다. 읽어보니 죽음을 앞둔 마르그리트가 구구절절 아르망 뒤발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편지에는 뒤발의 눈물자국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이장을 하는 장소에도 함께 간다. 아르망 뒤발은 그녀가 얼마나 그리웠기에 묘지에서 다시 그녀를 파내어 이장을 하며 그녀의 썩은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 했을까?
아르망 뒤발은 어느 날 친구로부터 마르그리트를 소개받는다. 그녀는 아직 채 스물 살도 되지 않은 꽃다운 나이에 파리의 사교계를 뒤흔드는 미인이다. 그는 첫눈에 마르그리트에게 반하여 그녀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 동백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마르그리트는 처음에는 장난삼아 아르망을 가까이 했지만 점차 그의 진정성에 감동한다. 둘은 파리 근교의 부지발이라는 조그마한 동네로 이사 가서 여섯 달을 깨가 쏟아지게 사랑하며 산다. 그러나 아르망에게는 근엄하신 아버지가 있었다. 아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이야기만 듣는 것도 힘든데, 노인은 한술 더 떠서 마르그리트와 동갑내기 딸의 장래까지도 들먹인다. 그러자 마르그리트는 입술을 깨물며 아르망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시골에 사는 아버지가 그녀를 찾아와서 그녀에게 아들과의 관계를 끝내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이다.
“제가 아드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믿어주시는 거죠?”
“믿고 있소.”
“그 사랑이 순수하다는 것도요?”
“물론이지요.”
“그럼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따님께 하듯 저에게 입맞춤해주실 수 없을까요? 제가 1주일 안에 아드님을 당신 곁으로 돌려보낼게요. 그분은 한동안 불행에 빠져 괴로워하실지 몰라도 본디대로 기운을 차리실 겁니다.”
“아가씨, 당신은 정말 고귀한 여자군요.”(p216)
마르그리트는 아르망을 멀리하기 위하여 일부러 후원자이자 옛 애인이었던 백작과 공작을 만난다. 그런 깊은 뜻을 알지 못하는 아르망은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다시 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놀아난다는 생각에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힌다. 그녀의 면전에서 다른 창녀와 가까운 체하기도 하며 일부러 그녀를 못 본 체하며 냉대하기도 한다. 그러자 그녀의 원래 병약했던 몸은 더욱 급속히 나빠진다. 그녀가 죽기 직전에 아르망에게 보낸 편지는 마치 유서를 읽는 것만 같아 마음이 울적하다.
“아아, 아르망, 돌아와 주세요. 나 정말 힘들어요. (...) 열이 심해서 몸이 불덩어리 같았지만 나는 옷을 갈아입혀 보드빌 극장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녀가 립스틱을 발라주었어요. 그거라도 안 발랐으며 꼭 송장처럼 보였겠죠. 나는 당신과 처음 만났던 그 특별석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날 계셨던 그 자리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어요.”(pp216 ~ 217)
‘몸은 더럽혀져도 마음만은 깨끗한 창녀’라는 신화를 만들어 낸 작품, 매년 <라트라비아타>라는 이름으로 계속 공연되어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 수차례 영화화 되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하여 새로 영화로 만들어질 작품, 동백꽃을 보면 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가 생각나는 작품, 사랑이야기의 완성 <춘희>...
자기 자식이 5백 명은 된다고 호언장담하는 희대의 바람둥이 아버지 알렉상드로 뒤마(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사생아로 태어난 아들 뒤마 역시도 바람둥이였다. 이 소설은 작가인 뒤마 피스가 자신이 사랑하였던 고급 창녀 뒤플레시스를 추억하며 쓴 것이라고 한다. 이 소설의 원전이 되는 작품은 <마농 레스코>이다. <춘희>와 <마농 레스코>는 그 형식이나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설정 자체도 판박이라고 할 만큼 유사하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들이 ‘표절’이라는 말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