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4
윌리엄 포크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미국이 낳은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윌리엄 포크너의 「곰 (The Bear)」.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장을 제외한 부분은 그 맥락이 비슷하지만 4장은 다른 장들과는 다른 느낌과 주제를 다루고 있다. 4장의 유무에 대한 논의가 미국 내에서도 뜨거웠듯이  「곰 (The Bear)」을 읽는 우리에게도 4장의 유무 여부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용 연결성 측면에서는 4장이 빠지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올드벤이라는 숲의 영물과도 같은 곰을 사냥하는 동안 성장해나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로서 받아들여지는  「곰 (The Bear)」은  그것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미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통찰 의식을 가지고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반성을 고찰하고자 했던 윌리엄 포크너의 생각이나 책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4장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불멸의 존재인 것은 창조물 가운데 지칠 줄 모르는 목소리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영혼, 곧 동정심과 연민, 희생 그리고 인내할 수 있는 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 작가의 의무는 바로 이런 것들을 쓰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고 과거 영광스럽게 생각했던 용기와 명예, 희망, 자부심, 정열, 연민, 희생을 상기시켜서 인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윌리엄 포크너, 1949년 노벨상 수상 연설문 일부 中 발췌-

 

 

그의 작가관을 뚜렷이 볼 수 있는 수상 연설문이라 일부를 발췌해보았다. 그의 말처럼 작가는 글로써 사람들에게 과거를 상기시키고 그를 통해서 어떠한 감정을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작가들의 의무이자 권리이기에 그만큼 작가들에게도 올바른 역사관이나 가치관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윌리엄 포크너는 그만큼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하여 스스로 고민해왔을 것이며, 그 노력 속에서 이뤄진 결정체가 그의 소설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만큼  「곰 (The Bear)」에 담겨 있는 그의 목소리가 나에게 더욱 중요하게 다가왔다.

 

* 인간 VS 자연. 개발 VS 보전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절, 인류에게 가장 멋진 꿈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따스한 곳에서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 없이 배부르게 사는 것이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인간은 점차 먹을 것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고, 이제 그들에게 사냥은 단순한 취미거리가 되어버렸다. 즉, 사냥은 생존이 아닌 단순한 유희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이 가지려 하는 순간의 쾌락을 위해 숲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영유해가는 동물들은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올드벤이라는 커다란 곰이 이 숲에 살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숲에서 살아온 올드벤은 이제 숲과 다를 바 없는 존귀한 존재이다. 사람들은 올드벤이 주는 공포심에 주눅 들기보다도 올드벤을 사냥하기 위한 즐거움에 더욱 빠져있고, 이 올드벤 사냥은 연례행사처럼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 즐거움은 사냥에 참가한 이들의 숲에 대한 갈망과 올드벤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게 된다. 소년도, 샘 파더스도 어쩌면 그 누구도 자연의 법칙을 그르치고 싶었던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끊임없는 시도, 집착과 욕망은 결국 올드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고, 숲은 모두에게서 떠나버렸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연은 항상 정복되어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되어왔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는 자연 보전보다는 개발이라는 관점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는 자연을 짓밟는 행태로 이어졌다. 이 소설에서는 올드벤이라는 곰 한 마리의 죽음으로써 숲이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자연과 대립하며 개발을 이어온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올드벤의 죽음보다 더욱 크고 값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알아요." 소년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 둘 중 하나여야 하는 거잖아요. 저 곰이 이젠 모든 걸 끝내고 싶어질 때,
그때가 비로소 마지막 날이 될 수 있도록." 

* 소유의 문제 : 땅, 노예, 자유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진정한 소유자는 누구일까? 과연 인간은 누군가의 위에 설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 모든 문제들은 성년이 된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는 4장에서 논의된다. 스물한 살이 된 아이작은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 대를 이어 내려온 땅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고자 한다. 과연 내 선조가 가진 땅이 과연 우리의 소유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그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작(소년의 이름)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사냥 기술을 전수해 주었던 샘 파더스와의 추억과 숲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올드벤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4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1~3장에서 아이작의 과거가 충분히 설명되어야 했고, 아이작이 왜 이러한 가치관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만들었다.

19세기 말 남북전쟁이 끝난 후 사실상 노예제는 폐지된 상황. 아이작은 변화해가는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작의 아버지와 삼촌이 써놓은 기록들을 읽음으로써 과거 흑인 노예들의 삶에 대해 독자들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과 등가교환이 가능한 존재에 불과했고, 여성 흑인 노예들은 종종 백인 주인으로부터의 성적 폭력을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의 자유는 박탈되었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조차 꿈꿀 수 없었다. 남북전쟁으로 노예제는 폐지되었고 시대는 변화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 변화는 남부의 주인들뿐만 아니라 흑인 노예들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한 시대적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이 바로 「곰 (The Bear)」이었다.

 

오래 걸리겠지요. 그런 날이 금방 올 거라고 말한 적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그들은 견딜 것이기 때문에-

 

짧은 한 권의 책이지만 담고 있는 가치의 무게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무거웠던 한 권의 책이었다.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를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기도 우리가 풀어야만 하는 숙제들에 대한 성찰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언젠가는 도시가 아니라 숲이 말하는 대로, 숲의 시간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오길 희망해본다.

그건 도시의 시간이고, 여기는 도시가 아니고 숲이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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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9-12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