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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파파와 바다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7
토베 얀손 지음, 허서윤.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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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민 이야기가 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기에 가장 적절했던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하고 “무민”이 그려진 상품들을 하나씩 사 모으면서도

“무민”이 속한 세계에 대해서는 별로. 그다지. 알려고 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었던 나.

“무민 파파와 바다”를 통해 “무민”뿐 만 아니라 “무민 가족”이 우리에게 던지려고 하는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민”은 따뜻함이 극대화된 소설이 아니며, 어떤 말 한마디로 가슴속에 평생 동안 남겨질 명언을 남기는 소설도 아니다. “무민”을 통해 다른 소설에서 느낄 만한 것들을 찾고자 했다면 오히려 “무민”이라는 소설에 회의감을 느끼거나 이 책 자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민”이 나오는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호의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나에게 이번 <무민 파파와 바다>는 내게 새로운 각도로 이 책을 들여다보게 도와준 것 같다.

무민 가족의 삶은 현실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해 그렸다고 보인다. 물론 이것이 현대화되고 물질문명이 팽배한 인간이라는 형체로 삶을 살아가는 존재에 일대일로 대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민 가족은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하얀색의 귀여운 트롤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보통의 삶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공간에서 보내는 삶과 시간은 인간의 것과 같은 형태로 흘러가고 있으며 삶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똑같이 공유한다. 인간 삶의 사실적 투영이라고 해야 할까? 공간적 요소와 정체성을 인간의 것과 다르게 살짝 틀어버림으로써 우리가 삶 속에서 별것이 아니라고 치부하며 지나쳐버렸을 감정, 추억 등을 끄집어 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일찍이 읽어왔던 다른 소설들 혹은 동화와는 다르게 무민 가족의 삶은 무지갯빛 속의 달콤한 이야기만을 전개하는 방식이 아닌 빛과 그림자가 모두 살아 숨 쉬는 공간에서 이야기들이 흘러가고 있다.

독자들은 때로는 빛 속에서, 때로는 어둠 속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찾아 흩어진 조각을 맞출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퍼즐을 어떻게 끼워 맞추는가?에 따라 우리가 “무민 가족”을 좋아하게 되는 그 특별한 이유도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 같다.

<무민 파파와 바다>는 가족을 위해 쉴 새 없이 걱정을 하는 무민 파파의 소원대로 그가 살고 싶어 하는 섬으로의 이동, 그곳에서의 삶이 주된 이야기를 차지한다. 등불이 더 이상 켜지지 않는 등대, 새로운 공간에서 만난 어부와 해마들, 그리고 그곳까지 따라온 그로크. 그리고 무민 가족들의 새로운 삶...

어쩌면 사소하고 맥락 없는 이야기처럼 들려올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희망으로 인한 이사.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적응을 시도해야만 했던 나의 학창시절.

과거의 추억은 음지에서 나를 기다리고, 새로움에 혹하다가도 어쩔 수 없는 슬픔을 감당하기도 했어야 했던.

나의 어린 시절과 무민의 섬 적응기.

무민 엄마의 말처럼 그곳은 " 우리가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 맛보며 살아가게 될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무민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이 한순간에 바뀌기도 하고..."아무 이유도 없이 모든 게 정반대로 바뀔 수 있다니... 그냥 그렇게 돼 버렸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회피하기도 했다."무민은 혼잣말을 했다. 내일 생각할래. 지금은 머릿속이 꽉 차서 안 되겠어."

나의 조각은 무민의 말들과 함께 퍼즐을 맞춰가며 하나의 결말을 향해 나아갔다.

등대가 다시 어두운 바다를 비추기 시작했듯이 나 또한 이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보았고 또 다른 나의 삶도 이렇게 변화해 나갈 것임을, 등불이 다시금 비칠 것임을 기약하며 또다시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무민과 만나고 있을 다른 누군가는 어떠한 퍼즐을 찾았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어부가 돌아서서 무민파파파를 바라보다니 말했다.

"이제 기억납니다. 우리가 모자를 바꿔 썼네요."

어부가 모자를 벗어 들어 무민 파파에게 내밀었다. 둘은 말없이 모자를 바꾸어 썼다. 등대지기가 돌아왔다.

<무민파파와 바다> p.280두 번째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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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히어로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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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페이지나 될까? 이번에 리뷰할 소설은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나의 마지막 히어로이다. 짧은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이대로 이 소설을 마무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엠마뉘엘이라는 작가를 정의 내리기도 힘들 것 같다는 의구심과 함께 이대로는 나의 감상도 너무 시시해질 것 같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내가 추가로 선택한 2권의 책은 엠마뉘엘이 1985년에 발표한 그녀의 첫번째 책 잭 나이프와 그녀에게 메디치 상의 수여를 안겨준 작품인 그의 여자였다. 내가 선택한 책들이 나의 마지막 히어로 뒷부분에 수록된 이 다혜 기자와 이 종산 소설가의 대담에서도 이 소설과 함께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 선택이 잘못되지는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마지막 히어로」가 그녀가 썼던 어느 소설보다도 그녀가 아끼고 좋아했던 작품이라는 것에 나는 동의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이 가장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엠마뉘엘 소설을 대표할 수 있는 결핍, 집착 등과 같은 매커니즘들이 나에게는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의 마지막 히어로」의 주인공 리즈는 「잭 나이프」의 엘리자벳이나 「그의 여자」의 클레르보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자아가 훨씬 잘 자리잡아 있다. 그 자아를 발견해 준 인물이 그녀의 마지막 히어로인 실베스타 스텔론인 것은 별개로 치고 말이다. 그녀의 마지막이 어떻든 그녀는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과거는 깨끗이 정리하고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히어로가 다시 복귀 할 때를 위해 돈을 저축하기도 한다. 이전의 작품 속의 여주인공들 보여주었던 광기 같아 보이는 집착이라든가 탈선 따위는 리즈에게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녀의 죽음 조차도 나에게는 해피 엔딩처럼 느껴졌다.

 

「잭 나이프」의 엘리자벳이나 「그의 여자」의 클레르가 자신의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의 기쁨은 아주 찰나에 가깝다. 그녀들은 사랑을 되돌리기 위해서 혹은 또 다른 희열을 찾아서 본연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리즈는 자신의 삶을 리셋시킬 수도 없는 평온으로 찾아 들었으니 그보다 더 행복한 엔딩이 어디 있겠는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 그것을 언제 잃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삶을 마감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작가 엠마뉘엘이 자신의 소설 속 모든 주인공들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평온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엠마뉘엘 스스로도 이 소설을 쓰는 동안은 그녀가 가졌던 모든 번뇌를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맛보고 있던 때는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엠마뉘엘 베르네임이라는 작가의 세계를 알기 위해 「나의 마지막 히어로」만은 부족하다. 아직도 그녀를 알기엔 내가 읽을 책이 몇 권 더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녀가 남긴 책들을 더 들여다보면 여 주인공들의 기이한 행동들, 집착들 속에서 우리의 본성과 일그러진 삶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하기만 한 것 같은, 사회적 통념 속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은 균열 속에서 우리의 내면과 마주칠 확률이 더 높다. 오히려 판타지같이 느껴지는 나의 히어로는 그녀의 히어로가 되어 줄 뿐 우리의 히어로로서는 다가오기가 더 버거운 것 같다.

세 가지 소설에 대한 한 줄 평:

잭 나이프: 한 마리의 숫사자를 길들이는데 잭 나이프 한 번과연 충분할까?

그의 여자: 상상 속 그의 여자가 아닐 때만 충족되는 그녀의 욕망에 대하여

나의 마지막 히어로: 록키, 그는 과연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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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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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타계 8주기를 맞이하여 작가정신은 "나의 아름다운 이웃" 재출간과 함께 "멜랑콜리/해피엔딩"이라는 책을 함께 출간했다. 이 책을 통해 박완서 작가를 추모하는 뜻으로 모인 29인의 한국 작가들이 박완서의 콩트를 오마주 하여 적어내려간 29편의 짧은 소설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박완서 작가가 한국 현대 작가들에게 어떤 존재이고 한국 문학에 그가 내린 영향력이 얼마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들뿐만 아니라 박완서 작가가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미쳤을 영향력과 그가 받았을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는 한 권의 소설집이 아닌가 싶다.

(멜랑콜리/해피엔딩에 대한 나의 서평은 마음에 들었던 소설 10편에 대한 나의 메모를 통해 대신하고자 한다.)

1. 꿈엔들 - 잊힐 - 리야 _강화길

가 어찌 그녀를 잊겠소. 그녀는 나의 두 번째 엄마였고, 나의 추억 속에는 이리도 깊이 박혀 빠져나갈 줄 모르는데.

이 글을 읽고 나는 그날 밤에도 슬픔을 훔치며 잠들 수밖에 없었네.

그녀가 어루만지던 그 손길이 아직도 생생해서...

그녀의 마지막 길이 하염없이 서러워서... 그녀는 죽어도 죽지 않았네.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한, 내가 살아있는 한, 그녀는 죽지 않으리...


2. 안아줘_ 권지예

어느 한때, 내 인생이 미치도록 서럽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서러울 땐 나를 잘 안다고 믿었던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내게 와닿지를 않았다.

그들에게 내 서러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도 죄스러워서...

그리고 그들로부터 내가 돌려받을 그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다가와서...

어쩌면 완벽한 타인이야말로 인간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나를 아무 이유 없이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아닐까?

어떠한 잣대, 편견 없이... 울고 있는 나란 존재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포용해 줄 존재.


3. 등신, 안심_김성중

"결혼"_ 낭만적 요소가 하염없이 부럽기만 한 나이에 다다른 우리는 흔히 말한다.

결혼은 철이 없을 때 하는 거지. 그냥 그 사람이 마냥 좋아서 모든 것을 포기해도 '넹넹'하면서

행복해할 수 있을 때 해야 하는 거라고...

어렸을 때는 스치기만 해도 씌던 콩깍지가 이제 백 명? 아니 몇 백 명을 앞에 놓아도 씌지 않고.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현실을 직시해야지라고 독촉하는 이성을 마주하고,

이런 게 철이 드는 거지라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자괴감에 빠져든다.

우리는 이런 우리 자신을 "많이 컸네"라고 말하지만 가끔은 그래도... "낭만"을 알던 그 시절의 우리가 부럽다.

그이가 나의 백마 탄 왕자님이라고 우리의 사랑은 happily ever after라고 꿈꾸던 그 시절


4. 쌀- 배달_ 김종광

우리의 현실은 척박하다. 피곤하고 가련하기 그지없다.

타인은 곧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여유가 있어야 타인도 챙기는 거지.

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내가 왜 무엇을 위해 봉사(?)를... 여유로운 소리지.

소시민들에게 봉사란 그런 것이다. 길에서 많은 이들이 붙잡고 이야기한다. 월 3만 원 정기적 후원...

월 3만 원 밖에 안 한다고? 커피값 아끼시면... (살려고 먹는 커피... 이들은 날 죽일 셈이다.)

그것도 버거운 일이다. 그 3만 원 그들 또한 앞으로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는 판국에...

그 돈 어떻게 쓰이는지 투명하게 알 수나 있으면.. 그래도 가진 자들이 부리는 돈의 봉사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눈이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들이 진정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꿰뚫어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시선이다.


5. 저는 - 오마르입니다_백가흠

내가 20대 초반 즈음 일 때, 한 오빠가 말했다.

"난 어떻게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연애할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안 돼."

나는 그 오빠를 꼰대라 여기며 대답했다. " 언어가 아니라 사랑의 언어는 눈빛이지"

그 사람이 날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무언의 신호. 그 눈빛만 있으면 그게 백 마디 말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여겼다.

지금의 나라면 그때의 나에게 충고하겠지. "그냥 오빠 말 들어! 이 지지배야"

눈빛? 그거 좋지. 얼마나 달콤한가! 근데 그것도 유통기한이란 게 있더란 말이다.

짧은 몇 마디의 말로는 내 마음을,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모든 감정을 전달하지 못하면 그건 이해한 게 아니라 그냥 곪고 있는 거라고!

언어는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감정의 장벽 해소랄까?

(P.S. 눈빛의 유통기한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 언어의 벽을 넘을 것!)


6. 언제나 해피 엔딩 _ 백수린

언제나 푸릇푸릇, 파릇파릇할 것만 같던 시기가 있었다.

한 번 넘어졌다고 우쭈쭈 달래 주시던 부모님이 계셨고, 모두가 내 편일 것만 같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내 마음 같지는 않더라. 두 번 넘어지고, 세 번 넘어지고...

인생의 난관을 수없이 부딪칠 때마다 언제나 그럴 것이라 믿었던 푸릇함은 사라지고...

소중한 이들도 그렇게 그들의 삶 속으로 사라져 버리더라고...

푸릇함을 대신해 쉬이 밟히지 않으려고 갈대 같은 누릇누릇함이 그 자리를 채우고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기대 대신에 나만 믿고 가자는 심지가 생기더라.

누릇함과 독기 같은 게 삶을 채우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이 순간만 끝나면... 이 시기만 잘 보내면 된다."라고...

근거 없는 주문을 외우며 해피엔딩 같지 않은 엔딩을 꿈꾸고 있더라고.


7. 대기실 _ 이장욱

현대인들은 제 각자 제각기의 정신병을 갖고 살고 있어.

너무나도 바쁜 일상에 쫓기듯 살아가기 때문인지. 각박한 인간관계에 지쳐 살아가기 때문인지.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은데... 어쩌면 복합적일 수도 있고...

가슴속에 쉬이 말하지 못하는 마음의 병이 하나씩인 있기 마련이고.

그 병은 누구도 쉬이 치료하지 못하는 불치병이라는데... 휴우~

이 병을 치료해준다는 이들이 분명 있는데 그이라고 별 수 있나! 그들도 같은 병을 앓고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한다고 하긴 하는데 어차피 고쳐봤자...

재발률이 거의 99.9% 라지? 아마?

그냥 입닥고 묵묵히 그냥 아무 일 없는 척 살아갈 수밖에 없다더라.


8. 아라의 소설_정세랑

현대인들은 수많은 결핍을 지닌다. 그 결핍은 내가 가지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들이 나보다 더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한 부러움에서 비롯되는 결핍이다.

우리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으라는 독촉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 전쟁터야말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매김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어느 시대보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빈곤은 끝이 없다.

SNS바다에서 허우적대다보면 어느새 공허해진 우리를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빈곤은 이제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9. 어떤 전형 _ 조남주

우리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바람이 있다. 그 존재가 나의 불행을 가져가고, 나에게 복된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때때로 아니... 종종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의 빛을 그 존재에서 찾는다.

"그분이 내게 오셨다."

나 또한 종교를 가진 사람이고 그 존재 앞에 서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해한다. 내게 종교란. 그 신이란 나에게 평안을 가져다주시는 분이라고.

불행과 행운과는 상관없이... 그저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해 도와주시는 그분. 내 안의 버팀목.

그 절대적 존재는 먼저 고통을 가져가 주지도. 이름 모를 행운을 남겨놓고 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존재를 통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에 대해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면.

큰 죄가 아닌 이상 그 존재는 너그러이 눈감아 주시지 않을까?


10.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 _ 최수철

우리는 순간을 살아간다. 특히 지금과 같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해나가는 시대에서는 순간이라는 단어보다도 더 짧은 어떤 단어를 끌어다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은 빠르게 움직여간다. 한 가지 일을 결정하기 위해 고민을 한다고 치더라도 결국 그것은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의 마음 상태, 그 순간의 기운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빠른 시대에 발맞춰 변화해 온 사람들... 그들은 나의 결정과 선택을 기다린다. 그리고 빨리 결정 내리지 못하겠냐는 듯이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감시하듯 내려다본다. 순간의 선택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내 선택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주위의 시선과 주변인들의 마음까지도 내 선택에 달려있다. 그러한 선택에 대한 머뭇거림은 게으름이 되어 버린다. 너 지금 빨리 결정 안 하고 도대체 뭐 하는 거야!

 


29편의 짧은 소설들 중 내가 머뭇머뭇 거렸던... 조금은 글을 남기고 싶었던 10편의 글에 감상을 남겨보았다.

내가 읽은 글과 조금은 주제나 내용과 빗나간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나의 감상일 뿐이니 너무 개의치 마시고 즐겁게 멜랑콜리/해피엔딩을 즐겨주시면 좋을 것 같다.

멜랑콜리한 삶을 살면서도 해피엔딩을 꿈꾸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니. 오늘은 해피엔딩을 꿈꾸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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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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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이 타계하신지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벌써 8년이나 흘렀다고 하니 시간의 흐름이 더욱 칼날 갈이 매섭게 느껴진다. 나에게 박완서 작가님은 "싱아"로 대표된다. 내가 어렸을 적 처음으로 접했던 작가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작품에 눈이 가고 애착이 간다. 그리고 한국어 교육이라는 나의 전공 때문인지 박완서 작가님이 쓰신 「옥상의 민들레 꽃」이라는 단편 동화 또한 매우 사랑스럽다. 그러고 보면 박완서 작가님은 단편, 장편, 동화, 콩트에 이르기까지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많은 장르를 아울러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작가가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우리였기에 작가님의 작품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아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박완서 작가님을 보내고 난 뒤 8년 후에 작가정신에서는 작가님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라는 콩트 작품집을 재출간하였다. 오랜만에 작가님의 이름을 새 표지와 함께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는 새로운 작품으로는 만날 수 없는 작가님이시지만 이렇게라도 그분의 성함 3글자를 반질반질하고 감각적인 표지 위에서 발견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오래전 샀었던 "싱아"의 하얗고 매끈매끈했던 표지가 다시금 떠올라 옛 추억에 잠시 동안 빠져들기도 했다. 오히려 오랜 세월 동안 읽히고 읽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을 읽을 때는 이런 감흥이 없었는데 나의 세월과 함께한 작가님의 작품이라 그런지 더욱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고 마음 한편이 아련해지는 그런 멜랑꼴리한 감정이 느껴졌다.

"사람 사는 집은 다 비슷하단 사실이 놀랍고 유쾌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영원한 이웃, 박완서-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실려있는 콩트들은 재미있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며 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작가님이 다룬 1970년대의 한국인.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은 지금과 매우 다르기도 하지만 또 어느 면에서는 매우 똑같이 닮아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은 어찌 이리도 변화가 없는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고민들은 어쩜 하나같이 일맥상통한 지... 시간이 흘러도 변화하지 않는 그 어떠한 것에 마음이 헛헛하기도 하고 쓸쓸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 변화 없음이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안도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 살아가고 있다고, 나만 이렇게 이 삶이 힘든 것이 아니라고.'

작가님의 소설, 특히나 이 콩트에서 보이는 작가님의 글은 매우 투명하고 깔끔하다. 지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들과의 글 색채와는 다름이 매우 잘 느껴진다. 현대 한국 작가들의 글들이 탁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어 재해석하고 다시 그 해석들을 하나로 이어 붙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짧은 소설들은 그렇지가 않아 오히려 편안하게 마음을 놓고 글을 곁에 둘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1970년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어떤 삶을 사셨을지에 대해 볼 수 있는 타임머신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며, 박완서 작가님의 무한했던 글의 세계를 탐험해보는 지도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나에게 이 책은 읽는 동안 내내 박완서 작가님의 마음의 이웃이 되게 해 준 하나의 집과 같은 존재였다. 이 책을 접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하나의 집이 되길... 혹은 이 책이 다양한 존재로 다가가 이 책을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박완서 작가님의 성함 세 글자가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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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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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추운 겨울날, 당신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선물하고 싶은가?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은 덜 춥게 추위를 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목도리와 장갑을 짜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선물들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손으로 뜬 목도리와 장갑을 자신의 연인에게 선물할 때 손재주가 없어 그런 선물을 전달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시대의 변화가 그다지 나쁜 것 같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한때는 가장 쉽다는 목도리를 짜기 위해 며칠 동안 실 꾸러미와 전쟁을 벌이던 날들도 있었다. 한 코, 한 코 잘 뜨고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인내심이 바닥나고 그다음엔 머리가 지끈지끈 거려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기던 내가 있던 과거도 있었다. 지금 같은 세상에. 손으로 뜬 목도리가 무슨 의미가 있냐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손뜨개와는 작별 인사를 나눴고 그다음부터는 다시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아름다운 장갑을 끼는 풍습이 있는 나라. 축제 때는 장갑을 끼고 아름다움을 뽐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위해 장갑을 선물하는 그런 나라가 있다고 한다. 그곳은 라트비아. 라트비아의 아름다운 마음과 풍습을 바탕으로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추운 겨울. 당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줄 한 편의 선물 같은 소설.

오가와 이토의 「마리카의 장갑」이 당신의 손안에 도착했다.

 

장갑은 마음을 전하는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

 

「마리카의 장갑」은 마리카가 태어나고 성장하며 사랑을 하고 생을 마감하는 그녀의 인생 전반을 다룬다. 그녀는 자연으로부터 수호를 받고 가족들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는다. 마리카를 향한 사랑은 엄지 장갑(=벙어리장갑)으로 전달되고, 마리카의 사랑 또한 엄지 장갑으로 태어나 많은 이들에게 전달된다. 「마리카의 장갑」을 통해 우리는 마리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배우고 그 세상에서 그 어떠한 것에서도 얻을 수 없는 마음의 온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리카의 마음이 담긴 한 권의 책이라면

손으로 짠 엄지 장갑을 대체할 하나의 소중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마리카는 낚시용 장갑을 뜨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엄지 장갑을 떠준다는 것은 온기를 선물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직접 손을 잡아 줄 수 없어 엄지 장갑을 떠서 선물하는 것입니다. 엄지 장갑은 손의 온기를 대신 전해주는 마리카의 분신입니다.   

 

약 200여 페이지 분량의 소설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에 담긴 그 의미를 되새기다 보면 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을 것 같다. 마리카의 인생의 한 페이지씩을 같이 거닐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마음을 나누는 엄지 장갑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따뜻한 장갑 하나라면 날카롭게 살을 에는 추위 따위는 문제가 없을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삶과 사랑에 대한 마리카의 답은?

'하나뿐인 호두를 사이좋게 나눠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마리카의 답변이 아닐까?

 

지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그네도 반짝입니다.

아름다운 꽃밭이 보이고, 그 너머로 숲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무지개가 아름다운 빛으로 감싸고 있습니다.

마리카는 자신이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변화했을 뿐입니다. 야니스도 그렇습니다.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 슬픔의 눈물은 흐르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상쾌한 바람이 불 뿐입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고 삶에서 주어지는 아픔도 희망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생각하게 되는 책. 「마리카의 장갑」은 하나의 소설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동화와 같은 책이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거나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마침표는 없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남겨지는 여운이라거나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그것들은 어릴 적 우리가 동화를 읽으며 행복을 느끼던 그것과 매우 같다. 오디오북으로 나와도 너무나 좋을 것 같은 마음을 치유하는 동화책이었다.

 

민속 의상을 입은 마리카의 손에는 야니스의 장갑으로 다시 뜬

엄지 장갑이 끼워져 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Paldies!(고마워!)"

마리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입니다.

 

 

마리카가 짜는 장갑에는 여러 문양들이 새기게 된다. 사랑하는 이들이 행복해지고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장갑에 담게 되는 것이다. 이 겨울, 비록 나는 마리카처럼 엄지 장갑을 뜨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사랑과 바람을 전할 수는 없지만 대신 「마리카의 장갑」을 선물한다면 내가 느낀 마음의 온기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리카의 인생에 전하고 싶다.

당신의 삶에 대하여 "Pal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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