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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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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함정임 소설가의 신간 에세이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 했어도」를 읽으며 이 두 가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가슴 한편을 어루만져 주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문장들을 만날 때 우리는 그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지에 대한 궁금함을 품게 된다. 글이란 한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를 담는 그릇이라 생각한다. 글의 무게감이 그 사람의 삶을 유추하는데 도움을 주듯이 글이란 매개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란 기억 또는 추억을 파먹고 사는 족속들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소설의 팔 할, 아니 그 이상이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기억을 좇는 추억의 추적자, 기억을 찾고 있는 추억의 탐험가로 살아간다. 작가들이야말로 기억의 전문가들인 셈이다. 그렇게 된 연유는, 유년기에 정상적으로 누리지 못한 것들, 잃어버린 것들, 예외적으로 겪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함정임 작가의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 했어도」를 읽어가는 동안 함정임 작가의 삶이란, 그리고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쉬이 극복하기 힘들었을 상처, 그리고 버텨낸 삶. 그녀는 글로써 치유를 받았을 것이고, 그녀의 글은 이제 누군가에게 또다시 치유의 글이 되어 주고 있을 것이다.

"소설 쓰는 일이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소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황홀한 순간이 있다."

이 한 권의 에세이를 통해 어떤 이는 여행 에세이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한 사람의 독서 일기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가 읽은 책은 어떤 것일까? 작가들은 어떤 글에서 영감을 받았을까? 평소에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궁금해했을 그 질문들을 함정임 작가는 자신의 기행과 함께 이 에세이 속에 풀어 놓았다.

함정임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나와 글의 첫 만남은 어떠했는지, 나는 왜 글을 읽어야만 했고, 어떻게 글을 쓰는 일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는지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철이 들기 전에는 책은 읽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읽었었다. 그리고 철이 들자 내가 가진 시야를 넓혀주는 책들이 있어 감사했다. 굴곡진 인생살이에서 도저히 삼킬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쓰디쓴 맛을 버틸 수 있게 도와준 것도 책이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어제보다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책과 함께 인생의 벼랑 끝에서 나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글이었다. 내가 왜 힘들어야 하는지, 나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던 시간에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디딜 수 있도록 도와준 건 글쓰기였다. 책과 글. 이 두 가지가 이 세상에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그 책이 왜 좋은지 몰랐다. 한 페이지를 읽는 데도 몇 시간씩 고투해야 했고... 인생을 알기도 전에 만나서, 벅찬 감동은커녕 부담만 느끼다 멀어지는 작품들이 있다...."
"살다 보면 뜻밖의 선물이 주어지는 일이 있는데 이때 선물이란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는 책이나 꽃 같은 물질 형태가 아닌, 어떤 영혼과의 만남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책을 만난다는 것은 이 에세이가 나에게 전달해 준 메시지처럼 순간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순간과의 만남이란 것은 독자의 마음 상태와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통하는 순간이 맞아떨어지는 것이라고 다시 바꿔 말해볼 수 있겠다. 나에게 어떤 책들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높은 산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 책들이 인생에 들어온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고, 그것은 나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었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 했어도」를 읽으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하여 다시 한번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에세이를 통해 혼란스러웠던 마음, 상처받았던 마음들을 들여다보며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볼 수 있길 바란다. 작가의 여행길에 동행해도 좋고, 작가가 말하고 있는 작품들을 읽어보거나 작품 세계에 빠져봐도 좋고 어떤 방법으로든 책을 읽는 그 순간 그리고 그 후에 당신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질 수 있길 바란다.

"몸에 밴 오랜 습관처럼 조약돌을 하나 주워 손에 쥐어보았다. 체온처럼 따뜻한 기운이 마음을 온화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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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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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찾게 되는 것은 바로 플라톤이며 공자라는 한 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흐른다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 자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플라톤, 공자 등 사상가들이 우리에게 남긴 한 줄기의 말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남긴 말들이나 한 사회와 인간의 본성을 바탕으로 한 많은 책들이 고전으로 남아있으며 이들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은 인간의 본성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언변을 늘어놓았다면 역사는 우리 인간이 만든 체제 혹은 이데올로기의 변화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인간들이 만들고 유지해 온 체제나 이데올로기도 크게 변화할 수 없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기술의 진보에 비해 인간이 운영하고 있는 체제나 사상의 변화가 너무나도 더딘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가 만들어 온 사회가 더디게 변화한다고 해서 그 작은 변화가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변화는 보통의 사람들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그 시작을 통해 지금 우리가 새로운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고, 희망 또한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현재의 우리들은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민중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했고, 새로운 헌법 개정에 대한 투표가 목전에 있다. 또한 미투 운동으로 성차별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기존의 질서가 달라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사회는 삐거덕 거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잡음이 사회의 악이라 판단하고 있지만 다른 이들은 이 잡음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진보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고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맞부딪치는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확한 해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해답을 유추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역사라 생각한다.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과 싸워왔고, 그 투쟁을 통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이 조금 더 확연하게 보이고 보다 나은 해결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현재를 살아가는 내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준 책이 바로 서해문집에서 출간된 신간  「유럽 민중사」이다. 

 

이 책은 중세의 붕괴부터 냉전 붕괴 이후까지의 유럽 민중들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흔히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술된 것이라 말한다. 우리가 정규 학습과정을 통해 배워 온  세계사에서 다루는 역사적 이벤트들은 민중들에 의해 쓰인 역사가 아니라 민중들 위에서 거대한 권력을 휘둘렀던 지배계급에 의해 만들어진 기록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현재의 우리를 둘러보자. 지금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와중에 변화를 만들어 내고 그 변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사회가 발전하는 것처럼 우리가 역사 속에서 꺼내들고 봐야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일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삶을 꾸려나갔는지, 그들이 자신들의 생계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어떤 투쟁을 전개시켰는지가 우리가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하는 진실이며 그 사실들 속에서 우리에게 전달될만한 가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하나의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18세기 중엽 영국에 찾아온 기술의 혁신은 사회, 경제 등 모든 체제들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물질적 풍요를 갖게 된 부르주아들이나 새로운 경제적 현상을 맞닥뜨린 경제학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이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술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보통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졌을까? 물론 그들에게도 이전보다 나은 부분이 있었겠지만 그들은 이제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쉴 새 없이 일할 수 있는 기계와 자신의 노동을 비교당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자유를 박탈당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역사를 어떤 시점에서 서술하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우리가 역사를 배우거나 다루면서 놓칠 수 있었던 두 가지 시점에의 서술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수 있었다.

흩어져 있던 개개인들의 움직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응집되었고 하나의 집단을 이루기 시작했다. 민중들의 봉기로만 여겨졌던 움직임들이 점차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정치적 색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집단은 더욱 성장해갔다. 하지만 이런 성장은 국가 혹은 지배적 이데올로기 앞에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민중들의 운동 외에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또 한 부분인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은 보통 사람들의 권리를 찾아내는 속도보다 훨씬 뒤처졌다.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은 수많은 장벽들에 막혀 그녀들이 내쳤던 강렬한 외침보다 미비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들은 결코 멈춰 선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 움직임은 계속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즉, 이 책에 담겨있는 보통 사람들의 움직임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보통 사람들은 패배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 보면 그랬다.
일단 민중이 투쟁하면 거대 한 진보를 이룰 가능성이 열린다. 반면 그들이 무관심이나 절망에 빠져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 

 

 「유럽 민중사」를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에 젖어들어 자신의 삶에 무감각해지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두려움에 휩싸였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보통 사람들이 깨어있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통 사람들을 교육하려 한다. 게다가 지배 이데올로기는 비단 지배 계급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을 대변하던 집단에서도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며 나의 신경들은 곤두서졌다. 보통 사람들이 깨어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지 않고, 문제점을 인식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를 이야기해보겠다. 한 여인이 전통적 사고에 깊이 젖어있는 모친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사회주의의 저명한 인사인 엥겔스와 베벨을 그녀의 집에 초대했다. 엥겔스와 베벨은 그 여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돌아간 후 그녀에게 돌아온 말은 "그들은 너의 결혼 상대자로서 어울리지 않아."였다. 즉, 그녀의 어머니는 그 두 신사를 이 여인의 신랑감으로만 바라보며 그들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일화에서 보이듯이 전통적 사고를 가진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깨달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자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다. 그 닫힌 눈으로는 그 어떠한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닫힌 눈을 열려고 하는 의지가 필요하며 보통 사람들이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기 위해 뜨는 눈만큼 부당한 사회 세력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없을 것이다.

역사만큼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좋은 대안은 없다. 나와 다른 그들의 생각을 읽기 위해 우리가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바로 역사이다. 이미 우리가 지나온 길을 살아온 이들이 어떤 생각을 했고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추적하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유럽 민중사」라는 책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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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 2,000년 유럽의 모든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존 허스트 지음, 김종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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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목도 국어와 국사였고, 선택과목도 세계사였다. 역사가 주는 교훈 이런 것 따위는 사실 안중에도 없다. 그저 오래전 이 땅 위에서 살았던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고 들여다보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었다. (이런 증상도 관음증인 것일까? 두둥!) 현재까지도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들을 자주는 아니어도 꾸준히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팟캐스트나 방송은 웬만하면 챙겨보려고 신경을 쓰기도 한다. 역사에 대한 지식도 휘발성이 강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해주지 않으면 망각의 강을 쉽게 넘어가버린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의 이목을 끄는 한 권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이 얼마나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지 북 카트에서 구매 버튼만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모든 책들을 꺾고 당당하게 배송의 길에 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만나게 된 책 한 권.
호주의 역사학자 존 허스트가 세계사를 어려워하는 자신의 학생들을 위해 쓴 한 권의 책,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이다.

 

요즘 듣고 있는 팟캐스트 덕분에 서양사에 많은 관심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도 이 책은 서양사에 포커스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출판된 이 책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이지만 원제는 The Shortest History of Europe」이다. 이 책은 오로지 유럽의 역사만을 나열하고 있기에 중국, 이슬람, 동남아 등 유럽을 제외한 국가들의 역사를 함께 통찰하기에는 역부족인 책이다. 하지만 서양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책만큼 간략하게 하지만 모든 인과관계를 확실하게 설명해주는 책은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께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한국에 나온 대다수의 역사 책들은 인류가 만들어 온 방대한 역사적 기록 앞에 중요 사건들을 나열하고 이를 서술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이 책은 중요한 사건 이전에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심 뼈대를 세워준다. 중심 뼈대를 유럽인들이 어떻게 연결해나가고 왜 그 상황에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역사가 왜 단순 암기과목이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학습되어야 하는지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역사적 지식들을 연결할 수 있었다. 나열된 사실들 간에 나있었던 빈 공간들을 가득 채워주면서 역사라는 산재된 지식들을 굉장히 짜임새 있고 척척 들어맞는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명작으로 재탄생 시켜주었다. 즉,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배우며 가졌던 왜?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책이 왜 이제서야 나온 거야?라며 책 출간 시기를 찾아보니 해외에서는 2009년도에 출판되었다고...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존 허스트 교수도 2016년에 작고하셨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왠지 모를 씁쓸함이 찾아왔다. 이렇게 좋은 책이 이제서야 번역되어 한국 출판 시장에 나왔다는 아쉬움도 컸고, 얼마나 많은 책들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라는 걱정도 생겼다. 이제서라도 이 책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읽는 도중 생각했다.
앞으로도 이 책을 자주 보게 될 것 같다는. 아마 몇 번을 다시 읽고 또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는.

이 책을 옮긴 김종원 교수님이 이 책의 약점을 현대사라고 말씀하셨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책장을 넘기던 독자들은 그 이후의 역사를 3페이지로 요약해버린 이 책에 대해 큰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아쉬움이 남았긴 했지만 이 아쉬움이 3페이지밖에 안되는 유럽의 현재 모습이기 때문인지 이 책의 마지막을 생각보다 빨리 보게 되어서 인지 헷갈렸다. 그리고 지금의 세계사는 과거의 사건을 나열하듯 지역을 나누어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역사는 너무나 복합적으로 쌍방향적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존 허스트 교수가 역사학자로서 왜 이런 마무리 방식을 채택했는지에 관하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서양사를 조금 더 촘촘하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아니 사실은 유럽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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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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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허전하게 느껴진다.
날씨가 싸늘해진 탓일까?
아니면 곧 한 해가 이렇게 지나간다는 안타까움 때문일까?
낙엽이 지는 이맘때쯤에는 모두가 쓸쓸해지고
가슴 한편에 찬 바람이 들어 가슴이 시린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만 이런 것도 아닌데 라는 마음으로 쓸쓸함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찰나
내 마음속에 가슴 깊이 들어 와 위안을 주는 시를 만났다.

 

 

 

나무는 흔들린다.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사람의 이기심에 흔들리기도 한다.
잘려나가는 가지를 지켜보는 나무는 자신의 몸통을 흔들며 중심을 잡는다.
자신의 몸 일부분이 사라져간다.
그 모습을 지켜봐야하는 나무는 고통스러워 흔들린다.

하지만 나무는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는다.
시인은 이 흔들리고 있는 나무를 보며 무언가를 깨달았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린 나무.
흔들리면서도 꿋꿋이 버텨내고 있는 나무의 강인함을.

 

 

결국 우리도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으려 버티는 것이고,
그 중심에는 내가 서있다는 것이다.
타의에 의해 혹은 자의에 의해 시도 때도 없이 고난이 닥쳐오는 우리의 삶에서
방황하고 쓸쓸해하는 것들도
결국 우리네가 잘 살아가기 위해,
중심을 잡기 위해 겪게 되는 잠시 잠깐의 흔들림일 뿐...

지금 내가 쓸쓸한 것도, 내가 가진 불확실함과 불안함도,
결국 나란 사람의 중심에서 흔들리는 하나의 가지에 불과한 것.
나란 사람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버텨만 간다면
그깟 바람에 일렁이는 잔가지들쯤이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시를 읽어 내려가던 어느 순간,
눈물이 맺히며 울컥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를 울지 않게 만든 것은
이 시가 주는 흔들림이 나에게는 나약함이 아니라
고난을 버텨내는 뿌리 깊은 나무의 단단한 힘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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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2 중국 인문 기행 2
송재소 지음 / 창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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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창비에서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의 두 번째 이야기가 오랜만에 독자들을 찾아왔다. 책머리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중국 인문 기행」 2편에서는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절강성(浙江省)의 소흥(紹興)과 강소성(江蘇省)의 의흥(宜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의 기행(紀行)을 통하여 우리는 소흥과 의흥의 역사는 물론 여러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그 인물들의 행적과 그들이 쓴 한시(漢詩)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곳곳에는 다양한 사진들이 실려 있어서 가독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지역에 대한 이해 또한 쉽게 할 수 있었다. 

 

 이 두 도시는 다른 어느 곳보다 인문학적 유산이 풍부한 곳이다.
이 책이 '풍경 기행'이 아닌 '인문 기행'이기 때문에 두 곳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소흥의 인문학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렇게 작은 도시에 그토록 많은 역사적 유적을 보유한 곳은 아마 유례가 없을 것이다.

 

 

 

 

특히 작가가 이 두 지역을 선정한 것은 중국의 술과 차를 대표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매 챕터가 끝나는 곳에서 저자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판매되는 술과 차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그래서 이 책은 한적한 시간에 맛있는 차 한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여유를 부리며 읽으면 지적 충족과 함께 마음의 풍요로움 또한 얻어 갈 수 있게 도와준다.

마음이 허전해만 가는 가을날. 중국의 한시를 읽으며  중국의 술과 차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면, 이보다 쓸쓸한 가을을 잘 보낼 방법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든다.

 

 

<절강성(浙江省)의 소흥(紹興)>

 

한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절강성의 소흥,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인물들이 대거 배출된 곳이자 그들과 관련된 유적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와신상담>의 고사가 유래된 곳이자 <광인일기>, <아 Q 정전> 등으로 유명한 노신, 중국의 4대 미인 중 하나인 서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며.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추구하는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의 묘소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저자가 발걸음을 옮기는 곳곳마다 중국의 역사와 인물들을 만날 수 있으니 저자에게도, 나에게도 여행하는데 이만한 장소가 또 있을까 싶은 여행지였다. 아마 나였다면 한시도 가만히 못 있고 이곳저곳을 구경 다니느라 몸이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중국의 근대를 살았던 채원배, 노신, 추근, 서석린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한국의 근대를 묵묵히 버티며 살아가야 했던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서구 열강들이 중국을 먹기 위해 눈독 들이던 시점, 그들의 위협 앞에 무너져 가는 나라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들의 고뇌는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울타리 앞 국화는 아직 피지 않았는데 / 적막하게 술잔 드니 회포가 싸늘하네.
籬前黃菊未開花 / 寂寞淸橂冷懷抱


가을바람 가을비가 나를 몹시 수심케 해 / 찬 밤, 홀로 앉으니 마음은 짓찧는 듯
秋風秋雨愁煞人/寒宵獨坐心如搗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다가 이슬처럼 사라진 여성 혁명가 추근의 절명시인 추풍추우수쇄인(秋風秋雨愁煞人)은 그 당시의 그녀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많은 이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절명시는 사실 추근이 지은 것이 아니다. 그녀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고 그녀가 판단하여 청나라 도담인의 작품에서 인용한 것이나 현재 많은 이들은 그녀를 대표하는 시구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의 마음이 하나의 시에 담겨 지금까지 전해진다고 하니 한시의 멋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인 나도 그 시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소흥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중 하나인 소흥주(酒). 저자가 쓴 소흥주 음주기를 읽어가다 보면 인문학적 지식으로 다소 무거워졌던 마음들이 서서히 풀려나간다. 소흥을 한 바퀴 주~욱 둘러보고 소흥주 한 잔을 곁들인 후에 느끼는 안락함이야말로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진정한 묘미인 것 같았다.

 

 

<강소성(江蘇省)의 의흥(宜興)>

 

 

 

저자가 소흥 다음으로 찾은 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난 강소성의 의흥이다. 이곳 또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여행지가 아니기에 이렇게 책으로 만나지 않는 이상 그곳에 대하여 속속들이 알기는 어려운 곳인 것같다. 의흥 지역은 지형상 특성으로 90여 개의 석회암 종유굴을 보유하고 있는 동굴을 가지고 있다. 또한 동파 서원, 서비홍기념관 등 인문학적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불리는 양산백과 축영대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져 오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의 이목을 잡아 이끌었던 의흥 지역이지만 나에게 큰 인상을 남긴 것은 대나무의 바다, 죽해(竹海)와 이곳에서 생산된다는 다호(茶壺, 찻 주전자)였다.

 

 

 

대나무로 가득 찬 길을 걷는 느낌은 어떠할까? 나는 그 길을 걷는다면 어린 시절 보았던 무협 영화처럼 무림의 고수가 되어 그 위를 날아다니고 싶어질 것만 같다. 울창한 대나무 숲에서 맡는 공기의 향은 그 어느 곳에서 맡는 공기의 향보다 더욱 잔잔하고 시원할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의흥지역을 간다면 나는 이곳을 꼭 한번 다녀와보고 싶다. 비록 날수는 없어도 대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날아다닐 때 느낄 수 있는 상쾌함은 충분히 느낄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대나무로 만든 길인 현공잔도를 걷다 보면 청도(聽濤)라는 글씨가 보인다고 한다. 들을 청(聽)과 물결 도(濤), 대나무로 만들어진 바다에서 바람이 만들어 낸 물결 소리를 들으라는 뜻일 텐데, 이 표현이 얼마나 시적(詩的)이고 아름답게 들렸는지 마치 내 귀로 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요즘 다도(茶道)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아침에 차 한 잔을 마시더라도 예의와 순서에 맞추어 마시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나에게 구미가 당기는 곳이 바로 의흥이었다. 중국 내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차들이 생산되는 곳이자 으뜸으로 치는 자사기가 제작되는 곳이라니 차(茶)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방문하고 싶은 곳일 것이라 짐작된다. 차에 관련된 물품들을 한 곳에서 구경하면서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정말 나에게는 너무나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되어버렸다. 


의흥에서 유려한 경관을 보면서 한 잔의 차를 마시는 풍류를 즐길 생각을 하니 이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가 한껏 생긴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소흥과 의흥,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을 통해 두 곳과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이곳에 관심을 두는 관광객들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 또한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지 않을까라는 이기적인 바람이 섞여있기는 하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여행을 한 것 같기도 하고 두툼한 인문학 서적을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술과 차에 흠뻑 빠졌다가 나온 느낌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떠한 것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가지게 된 것은 풍요로운 마음과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인문기행의 대표작인 만큼 이 서평의 마무리도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소동파의 대표시 중 하나인 <해당>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봄바람 산들 부니 고결한 빛 떠도는데

향기로운 안개 자욱한 속에 달은 회랑으로 돌아드네
東風嫋嫋泛崇光 / 香霧空蒙月轉廊

밤 깊어 해당화가 잠들까 두려워

높은 촛불 태워서 미인을 비추네
只恐夜深花睡去 / 故燒高燭照紅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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