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회사의 연구소장님과 일부 인원들과 함께 점심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연구소장님은 개발자들이 자신의 캐리어 패스를 적을 때 매니저 트랙을 선택하지 않는지 궁금해하셨다. 그렇다. 대부분 개발자들은 매니저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대답은 이러했다. 매니저를 보면 이슈와 보고를 대응하느라 너무 바쁘다. 하루 종일 회의다. 얼굴 보기도 힘들다. 어려운 이슈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자료만 만들고 윗분들에게 보고만 한다. 개발에서 손 놓은지도 오래다. 힘들기만 하고 얻는 게 없어 보인다. 개발자 트랙을 유지하고 싶은 이유는 개발하는 것은 어려운 기술적인 문제를 풀어가면서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느끼는 것에서 희열과 개발자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여차 저차 한 이유로 개발자에서 매니저로 승진한다면 그동안 욕했던 매니저의 모습을 내가 하고 있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는 경우가 있을 거다. 


<<개발 7년 차, 매니저 1일 차>> 는 개발자에서 매니저가 막 되어서 이런저런 고민들이 많은 사람들, 혹은 앞으로 매니저가 되고 싶은 사람들, 혹은 매니저가 되지 않더라도 내 매니저는 어떨까 생각해볼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내용은 궁금한 점을 찾아 읽기는 좋지만 큰 흐름이 있지는 않다. 작가는 장별로 읽는 법과 매니저의 경력에 따라 어떤 챕터를 먼저 읽으면 좋을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는 카미유 푸르니에로 패션계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의류 대여 회사인 Rent the Runway의 전 CTO다. 미국 회사라 우리와는 다른 회사 문화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읽어보면 글로벌 시대고, 사람 사는 곳의 문제는 다 비슷하다는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좋은 테크 리드 또는 좋은 매니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은 그 이상적인 모습이 무엇인가 생각할 기회를 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테크 리드는 두 명에서 열 명 규모의 개발 팀을 책임지는 팀장으로 관리와 개발 업무를 병행한다.)


뛰어난 기술 매니저란? 


작가가 말하는 좋은 리더는 의사소통에 능숙하고, 문서 작성도 깔끔하며, 발표도 잘한다. 다른 팀이나 다른 역할의 사람과 소통하기 즐기며, 업무 진행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설명한다. 우선순위를 정하는데도 능숙하며, 업무를 추진하며 다음 할 일을 결정하는 것을 좋아하고 추진력이 강하다. 또한 사내 정치도 잘해서 자신의 팀원을 돋보이게 하고 키우는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RTR(Record to Report) 기술에 따라 팀 멤버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기적인 원온원 미팅 (주 1회) 


-경력 성장, 목표 진행, 개선된 영역 및 명시적인 칭찬 등에 대한 정기적 피드백


-프로젝트 업무, 외부 교육 등 멘토링 등을 통해서 팀원의 성장을 돕는 교육과 지원 보고서 작업



프로젝트 관리를 위해서는 



대부분 매니저들이 잘 알 것 같지만 저자가 말하는 방법을 나열해 본다. 저자가 말하는 프로젝트 관리란 "복잡한 최종 목표를 작은 일로 나누고, 이 일을 끝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순서로 배치하고, 병행 처리할 일과 순차 처리할 일을 찾아내고, 프로젝트 진척 속도를 늦추거나 실패하도록 하는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1) 작업을 잘게 나눈다.


2) 일을 어렵게 만드는 세부 사황과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끝까지 신경 쓴다. 


3)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진행하며 계획을 수정한다.


4) 계획 프로세스에서 얻은 통찰로 변경된 요구사항을 관리한다. 


5) 프로젝트 완료 시점이 가까워지면 세부사항을 다시 검토한다. 



후배들을 위해서는 



좋은 매니저가 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사람들을 돕는 일이 매니저로서 성공하는 데 훨씬 중요하다. '현대의 소프트웨어 개발은 팀 스포츠'이다. 매니저는 '코치'이자 '지지자'가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 중간에 기고자의 글도 있는데, 임백준 저자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좋은 매니저는 착한 사람도 능력 있는 사람도, 정치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다. 좋은 매니저는 후배를 성장시키는 사람이다. 후배들의 앞길을 있는 힘을 다해 열어주고, 이끌어주고, 밀어주는 사람이다. 그게 좋은 매니저다."



자신을 위해서는



기술 역량을 유지하자. 사실 지금 세계 최고 회사를 보더라도 CEO는 모두 다 엔지니어 출신이다. 개발자가 매니저가 되는 것이 꼭 개발 커리어를 멈추는 일만은 아니다. 매니저가 되었다고 개발자 무덤에 갔다 생각하지 말고 기술 역량을 유지하자.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기술 관리는 단순히 사람을 관리하는 방법을 모은 것과는 다른 기술적인 분야다. 경력 개발 과정에서 코딩은 하지 않더라도 기술적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중략) 



팀 매니저로서 아키텍트나 시니어 기술 담당자가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도록 하고, 기술적인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팀과 비즈니스라는 맥락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기술 매니저의 업무다. 몇 년에 걸쳐 쌓인 숙련된 기술적 감각은 이런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정말 일반 매니저가 되는 것도 어려운데 기술 매니저는 그 어려운 것을 다 해내야 한다. 그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분들의 앞길이 꽃길만 가득하길. 



*이 책은 한빛 미디어의 <나는 리뷰어다>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나 내용은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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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외부 세계는 영하 41도인, 스노볼은 따뜻한 일상을 보내는 곳이다. 스노볼에 사는 사람들은 다 엑터 또는 디렉터다. 엑터의 삶은 리얼리티 드라마로 편집돼 만천하에 방송된다. 엑터는 자신의 모든 삶을 영상으로 송출해야 한다.




엑터의 삶을 어떤 부분을 편집해서 내보낼지는 모두 디렉터의 권한이다. 엑터가 보여주는 삶을 자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살인을 하는 것을 방송하기도 한다. 바이애슬론 경기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사형 판결을 받은 인간 표적을 쏴 죽이는 것이다. 인기는 스노볼에서 살기 위한 필수 요소다.




스노볼은 이본 미디어 그룹 사람들이 후원해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스노볼 밖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말 그대로 쳇바퀴를 돌리는 삶을 산다.




"쳇바퀴를 돌리는 우리의 운동 에너지는 에너지 증폭기를 거쳐 발전소의 중앙 모터를 움직인다. 지금 사회의 제일 중요한 전기를 우리의 팔다리로 직접 생산해 내는 것이다."




쳇바퀴에서 일하는 동안 사람들은 스노볼 드라마를 마음껏 시청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노볼의 리얼리티 드라마와 엑터, 디렉터는 중요한 사람들이다.




"바깥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텔레비전 속 액터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따뜻하고 부유한 삶을 누리는 그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온갖 극적인 상황에 휘말려 고통받는 그들의 드라마로부터 오히려 평온한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스노볼 밖 사람들은 외부 사람들은 스노볼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동경한다. 액터나 디렉터가 되어 영구 스노볼에 살 기회를 얻길 바란다.





고해리는 액터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액터만 할 수 있다는 기상 캐스터로 최연소로 낙점된 인기 최정상의 엑터다.




기상 캐스터가 인기 있는 이유는 스노볼의 날씨는 모두 인공 날씨다. 기상 캐스터가 복권 뽑듯이 뽑은 날씨는 내일 날씨가 된다. 모두가 관심 갖고 바라보기 때문에 엑터로서 최고의 자리다.




하지만 고해리는 그 자리에 올라가자마자 자살한다.



고해리를 최고 인기 액터로 만든 차설 디렉터가 어느 날 초밤을 찾아온다.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고해리를 닮은 초밤에게 고해리로 살 것을 제안한다. 고해리의 죽음을 은폐하기 위함이다. 인기와 편안한 삶을 누릴 기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초밤의 꿈은 디렉터다. 고해리로 살면 디렉터가 될 기회도 가족을 다시 만날 기회도 없어진다. 고해리의 가족과 고해리의 일을 하며 고해리로 살아야 한다.




꽃길만 열릴 것 같아 보이는 초밤. 그러나 초밤은 고뇌한다. 생각해보자. 내가 초밤이라면 그냥 마냥 행복할 수 있을까? (물론, 처음엔 덥석 좋기만 할 거다) 이 질문이 이 책을 관통하는 키다.




이후 내용은 초밤이 고해리 인척 하면서 위기를 얻게 되는 내용도, 이본 가의 아들인 이본희와의 로맨스도 아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다. 초반 설정과 궁금증은 뒤로 갈수록 실타래가 풀려 마침내 모든 전말이 드러난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설정으로 이야기에 빠져 든다.




이 책은 제1회 창비 X카카오페이지 영 어덜트 장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영 어덜트는 영(Young)과 어덜트(Adult) 두 단어가 결합한 단어로, 보통 이제 막 성년이 된 사람, 혹은 청소년을 뜻한다. 문학계에서 영 어덜트는 청년과 청소년이 주요 소비층인 작품을 이르는 단어가 됐다. <해리포터>, <헝거 게임>, <다이버전트>, <뷰티플 크리처스>, <안녕, 헤이즐> 등이 있다." (출처: https://blog.naver.com/cine_play/221633709319)




혹한기라는 설정이 <<설국열차>>를 생각나게 하고, 스노볼의 삶은 <<트루먼 쇼>>를 생각나게 한다. 인간 표적을 죽이는 설정은 <<헝거 게임>>이 떠오르기도, 미디어에 자신의 삶을 노출하고 이로써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은 <<블랙 미러>>가 생각난다.




영화뿐만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삶은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상황과 고민에 더 몰입할 수 있다. 주인공은 고뇌한다. 자신임을 버리고 타인으로 사는 삶. 꽃길로만 보이는 삶 속에서.




"내가 힘든 건 나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의 밝은 면만 보고 싶어 한다. 이 일의 어두운 이면 따위는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거다. 그래야만, 꿈을 이룬 뒤에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정체성으로 힘들어하는 초밤을 차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애도 자꾸만 불행을 찾아다녔어.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지.”




최근 종영한 박보검 주연 드라마 <<청춘 기록>>에서 사해준의 아버지는 자신의 꿈을 찾는 아들에게 현실을 깨달으라고 한다. 분수에 맞게 일해서 돈이나 벌고 헛된 꿈은 꾸지도 말라고 한다.




원해요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네가 아무리 애써도 너의 성공은 내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스스로 성공을 만들어 가려는 아들의 뜻은 무시한다. 자신이 만든 틀 안에서 성공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 엄마는 아들이 곧 자신이다.




안정하의 어머니도 꿈을 찾는 화가 남편과 이혼하고, 악착같이 살면서(하지만 가난하게) 딸에게도 그렇게 악착같이 살라고 한다. 꿈을 좇던 아빠는 그림으로 부자가 되고, 현실적으로 살던 엄마는 가난하다.




젊은 이들에게 기성세대는 네가 찾는 것은 불행이다.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헛된 꿈을 꾸지 말고 취직하고 돈 벌고 일하고 집 사고 결혼하고 애 낳으라고 한다. 하지만 <<청춘 기록>>과 <<스노볼>>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되라고 한다. 나를 찾으라고 한다. 정체성이야 말로 삶의 핵심이다. 내가 누군지 알고 나로 살아야 내 삶이다. 내 죽음 앞에서 회고할 내 인생이다.




조카가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찍었단다. 미래 직업을 표현할 물건을 갖고 와 컨셉 사진을 찍는데 돈을 갖고 갔단다.




“꿈이 뭔데?”


“돈 많은 백수요. 대부분 친구들이 다 돈 가져올걸요.”


“돈 많은 백수가 되면 뭐하게?”


“그냥 놀게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슴이 내려앉는다. 초등학생들에게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게 만든, 꿈을 심어주지 못해서 가슴이 아리다. 조카에게 이 책을 주고 싶다. 그리고 무엇이든


되라고, 너다운 것을, 네가 할 수 있고 잘하는 것을 찾길 바란다. 그 재능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영하 41도보다 차갑거나, 전쟁터다. 지금 영 어덜트 들은 쳇바퀴를 돌려야 하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내' 삶으로 '내'가 살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이어야 한다. 나를 찾아가는 쉽지 않은 여정을 시작한 영 어덜트들을 응원한다.






* 이 책은 창비로부터 제공받았으나 내용은 제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그 애도 자꾸만 불행을 찾아다녔어.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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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직업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를 택할 것인가? 가르치는, 달리는, 청소하는, 배달하는, 만드는, 고치는, 정리하는 등등 다양한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편집자인 이은혜 씨는 자신의 일을 '읽는 직업'이라고 소개한다.



<편집하다 edit>의 어원인 라틴어 <에데레 edere>는 <꺼내다>나 <내놓다>는 뜻으로 편집가는 <저자로부터 꺼낸 작품을 독자에게 내놓는 사람>이라고 한다. 편집자는 출판사를 상대로 저자를 대변하고, 저자를 상대로 출판사를 대변하고, 저자를 상대로 독자를 대변하고, 독자를 상대로 저자를 대변한다. (<<편집가가 하는일>> 피터 지나 저, 박중서 옮김, 열린책들).


편집자가 하는 활동은 출판 기획부터, 교정, 마케팅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는데 '읽다'라는 행위를 선택했다. 왜일까?


(이은혜 씨는 <<읽는 직업>>의 작가지만 직업은 편집자다. 그녀의 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작가라고 쓰면 헷갈리므로 아래부터는 편의상 이은혜 편집자로 통일한다)


저자 읽기


<<편집가가 하는 일>>에서는 '편집가는 저자의 아이디어와 표현에 관여하면서 가장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은혜 편집자는 이를 다르게 (좀 더 겸손하고 따뜻하게) 표현했다.


“‘편집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남의 글을 읽고 다듬어 세상에 내놓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카피와 보도자료를 많이 써도 편집자는 작가는 아니며,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학자가 아니다. 다만, 글을 읽는 눈과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누군가 물을 대주면 한 방울도 남김없이 피와 살이 되게 하려고 애쓴다.”


그녀가 기대하고 좋아하는 작가는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앙상한 우리의 삶 속에서 풍부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지만 보편성을 띄는 글로 격려해주는 작가다.


“저자의 경험이 글이 되면 그것을 읽는 편집자는 이를 다시 경험으로 구현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작가를 '읽기'위해 노력한다. 작가가 추천해 주는 책도 읽고, 작가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심지어 여행이나 탐사도 하면서 그 본질에 다가선다. 목숨을 잃을 뻔 한적도 있다고 하니 그 노력이 과하다 싶을 정도다. 이 정도 애정이 있기에 편집자들은 "1000권밖에 안 팔리는 책을 줄줄이 생산해" 내는지도 모른다.


"지칠 줄 모르고 누군가를 또다시 좋아하게 되는 것이 편집자의 특성이다. 왜냐하면 글로 사람을 먼저 접하는 우리는 서로의 신상부터 파악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곧바로 정체성의 핵심(글)으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


출판도 팀워크이다. 작가도 혼자 글을 쓰는 것 같지만 그 책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나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팀워크가 나쁠 리가 없다. 생산성은 향상되고 창의성도 올라간다.


책 이야기


무대 뒤 이야기, 영화 제작 이야기 등 뒷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다. 이은혜 씨는 인문출판사 글항아리 편집장이다. 글항아리 출판사는 "(주)문학동네에서 역사, 철학, 한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을 중심으로 하여 과학, 사회과학, 예술 등의 교양서를 펴내는 계열사"다. <<읽는 직업>>에는 글항아리에서 이 편집장이 책을 펴내면서 있었던 일화들이 가득하다.


수정할 필요 없이 완벽한 글을 쓰는 <<네 번째 원고>>의 존 맥피와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게티 이야기, 편집하는데 1년 6개월이 걸렸다는 류쩌하의 <<중국정치사상사>> 책 이야기, 다양한 삶의 궤적과 책을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글항아리에서 기획한 외서가 최근 글항아리에 입사한 30대 젊은 편집자의 취향이었다는 사실도 재미있었다. (내가 아는 그분인가?)


글항아리에서는 벽돌 책을 많이 낸다. 벽돌 책들은 멋진데 가장 큰 불만은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거다. 최근 읽은 벽돌 책은 <<인간 본성의 법칙>>이다. 실용성이 중요한 나는 들고 다니면서 읽으려니 너무 무거워서 중간 부분을 과감히 잘랐다. 책을 고이 모셔두는 걸 좋아하는 남편은 잘린 책을 보며 마치 자신 일부가 잘린 듯 안타까워했다. 이후 11장부터 분절한 개정판이 나왔다. 휴대성은 좋아졌는데, 폼은 좀 안 난다. 독자야 이런 불평을 하면 그만이지만 벽돌 책을 만드는 저자와 편집자의 노력은 얼마나 클 것인가?


"기존의 것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성을 쌓기 위해서는 해체와 보존, 재구축에 들어가는 작가의 의지가 책의 두께와 중량감으로 이어진다. (중략) 연구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은 이런 책을 책장의 오브제로 간주하며, 은퇴 후에 꼭 읽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시력과 기억력이 쇠퇴할 뿐 아니라 많은 경우 지적 호기심도 줄어, 젊었을 적 자신이 한 결심을 마치 옆집 사람이 한 것인 양 생소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무 많이 미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찔린다.


마치며


이 책의 제목을 <<읽는 직업>>이라 짓고, 자신의 일을 '읽는 직업'이라 명명한 이유. 다 읽고 나니 알겠다. 저자의 생각을 읽고, 글의 의도를 읽고, 작가의 글을 읽고, 출판 시장을 읽고, 독자의 마음을 읽고, 출판사에 투고한 글을 읽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읽는 직업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앞으로도 그녀가 만든 좋은 책을 기대해본다.


* 위 글에서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인용문은 모두 <<읽는 직업>>에 있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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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브로의 3분 딥러닝, 파이토치맛 - PyTorch 코드로 맛보는 CNN, GAN, RNN, DQN, Autoencoder, ResNet, Seq2Seq, Adversarial Attack
김건우.염상준 지음 / 한빛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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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다



1. 음식의 맛을 알기 위해 먹어보다


2. 몸소 겪어보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맛보기를 통해 빠르고 간편하게 접해보라는 기획의도로 한빛미디어에서 3분 시리즈를 냈다. 쉽지 않은 분야의 지식을 3분에 맛볼 수 있다니 궁금했다. 처음 택한 맛은 '딥러닝 파이토치 맛'.


토치라는 단어 때문에 숯불 맛일 거라 상상하면서 골랐다.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대부분 책들은 툴과 소스 받는 법을 설명하고, 새로운 개념 및 용어에 대한 설명을 하고, 동작 방식을 설명하고, 이를 구현한 소스를 소개하는 순서로 내용을 전개한다(주관적인 경험이므로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 방식은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일 경우 진도를 나가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내가 경험한) 강의는 대부분 간략하게 이론을 설명하고 이를 구현한 코딩을 하나씩 따라 하게 한다. 강의를 듣기만 할 때는 집중하기 어려운 내용도 하나씩 따라 하면 집중력도 높아지고 입력한 코드들을 보며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의 차이는 크다. 자꾸 해야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게 느끼게 된다. 어렵지 않다고 느껴야 자꾸 해본다. 단점은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고 산만하다.


딥러닝은 어려운 분야다. 수학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하고, 알고리즘도 이해해야 한다. 낯선 용어들이 난무한다. 신경망을 따라 했다고 하지만 내 생각이 신경망처럼 동작하지는 않는다. 내용을 읽다 보면 조사만 아는 용어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후자 방식을 택한다.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나 라이브러리를 학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3분> 시리즈는 긴 설명을 읽기보다는 직접 코드를 입력해가면서 익히게 해 쉽고 재미있습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 자세한 이론을 알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이 책에서는 자세한 설명이 있는 책이나 영상을 추천한다.


이 책은 기본적인 인공 신경망(ANN)부터 패션 아이템을 구분하는 DNN, 이미지 처리하는 CNN, 사람의 지도 없이 학습하는 오토 인코더, 문자열, 음성, 시계열을 분석하는 RNN, 딥러닝을 해킹하는 적대적 공격, 두 모델이 경쟁을 통해 최적화하는 GAN, 주어진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DQN 등 많이 소개되는 일반적인 알고리즘부터 핫한 알고리즘까지 다 다룬다.


그런데 두께가 얇다!!! 유명한 딥러닝 책들을 사놓고 조사만 읽다 말았는데, 이 책은 끝까지 읽었다. 또 읽어볼 생각이 든다. 나 같은 딥러닝 초보를 잘 겨냥한 책이다.


CHAPTER 3 ANN에서 머신러닝 핵심 개념과 파이토치 필수 기능, 머신러닝에서 사용되는 기술까지 다루어서 내용이 좀 어렵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이후 장부터는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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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공부하는 첫 프로그래밍 with 파이썬 - 1:1 과외하듯 배우는 왕초보 코딩 입문서 혼자 공부하는 시리즈
문현일 지음 / 한빛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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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할까?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을 만났을까? 핸드폰, 이 안의 수많은 앱들, 텔레비전, 세탁기, 냉장고, 자동차, 편의점 등 상점의 포스, 엘리베이터, 지하철, 광고판, 인터넷, SNS 등 프로그램 없는 삶은 거의 불가능하다. 


"4차 산업 혁명의 등장과 더불어 우리는 프로그래밍 기술이 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프로그래머가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프로그래밍의 개념이 우리의 일 혹은 일상과 어떻게 융합되는지를 알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죠."  <<혼자 공부하는 첫 프로그래밍 with 파이썬>>(문현일 지음, 한빛 미디어)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쉽지 않은 이유


어떤 분야든 낯선 분야에 입문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과 대화하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컴퓨터와 대화하는 건 더 쉽지 않다. 프로그램 언어뿐만 아니라 그 외 컴퓨터 작동 원리, 적용된 기술 등 알아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래밍은 왜 하는지, 어떻게 동작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고 구현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과 함께 작업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 


생각하는 패턴도 바꾸어야 한다. 컴퓨터에게 일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가 아닌 모든 상황에 대해 다 고려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다.(머신 러닝은 제외하고...). 이런 이유로 ‘프알못(프로그래밍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쉽지 않다. 


이 어려운 진입 장벽을 그나마 조금 낮춰주는 책과 유튜브들이 많이 나왔다. 한빛 미디어에서 '혼자 공부하는' 시리즈를 내고 있는데, <<혼자 공부하는 첫 프로그래밍 with 파이썬>>(문현일 지음, 한빛미디어)가 그중 하나다.


왜 파이썬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하나?


프로그래밍 시작할 때 처음 접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도 중요하다. 보통 처음 C 언어나 자바로 프로그래밍을 많이 시작한다. 이 언어들은 초보자에게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의 저자는 혼자 프로그래밍을 시작한다면 파이썬을 추천한다. 파이썬은 "어차피 배워야 하는 프로그래밍이라면 쉽고 빠르게 배워 잘 활용하기 좋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장 오래된 언어인 C도 아니고 취업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바도 아닌 파이썬을 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장 사라질 언어가 아니고 많은 사람이 쓰고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됩니다.

문법이 쉽고, 가독성이 뛰어납니다.

빠르고 느림을 고려할 때 프로그램 실행 속도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개발 속도도 고려해야 하며 최근 후자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습니다. 

다른 언어의 장점과 파이썬의 장점을 섞어 쓰기 좋습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학습 로드맵을 보면 개발 환경, 데이터, 연산식, 변수, 조건식, 데이터 세트, 반복 등 프로그래밍에 필요한 내용들이 다 들어있다.


이론을 실 생활 예제를 통해 설명하고 눈 코딩으로 프로그램을 눈으로 보고 내용을 익히게 하고, 그다음 직접 손 코딩하게 한다.


각 장별로 '키워드로 정리하는 핵심 포인트'로 앞의 내용을 정리해주고 확인 문제를 통해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게 한다.


상황을 분석해서 명확한 논리적 조건으로 분리하고 각 조건에 대한 결과마다 어떤 action을 해야 하는지 결정할 줄 아는 능력이 바로 문제 해결 능력이다. 쉬운 설명을 보며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아무리 잘 쓰인 책이고 설명이 쉬워도 낯선 분야는 쉽지 않다. 그래도 지루하고 어려운 내용보다는 쉽게 이해하고 따라 해 볼 수 있다면 그다음 단계를 시도해볼 수도 있고, 그런 시간이 축적되면 일단 뇌 회로가 강화되고, 기억을 되살려 작업을 하다 보면 그게 실력이 아닐까 한다. 


프로그래밍도 글쓰기와 다르지 않다. 무엇을 쓸지 정하고, 논리에 맞게 구성을 하고, 이에 따라 써내려 가는 것이다. 논리의 허점이 없는지 리뷰하고, 의도한 바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잘 쓴 글을 따라 필사하듯이 소스 코드를 따라 치다 보면 실력이 는다. 세상 어떤 일이든 배우고 실력을 키우는 일은 다 비슷한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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