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직업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를 택할 것인가? 가르치는, 달리는, 청소하는, 배달하는, 만드는, 고치는, 정리하는 등등 다양한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편집자인 이은혜 씨는 자신의 일을 '읽는 직업'이라고 소개한다.



<편집하다 edit>의 어원인 라틴어 <에데레 edere>는 <꺼내다>나 <내놓다>는 뜻으로 편집가는 <저자로부터 꺼낸 작품을 독자에게 내놓는 사람>이라고 한다. 편집자는 출판사를 상대로 저자를 대변하고, 저자를 상대로 출판사를 대변하고, 저자를 상대로 독자를 대변하고, 독자를 상대로 저자를 대변한다. (<<편집가가 하는일>> 피터 지나 저, 박중서 옮김, 열린책들).


편집자가 하는 활동은 출판 기획부터, 교정, 마케팅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는데 '읽다'라는 행위를 선택했다. 왜일까?


(이은혜 씨는 <<읽는 직업>>의 작가지만 직업은 편집자다. 그녀의 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작가라고 쓰면 헷갈리므로 아래부터는 편의상 이은혜 편집자로 통일한다)


저자 읽기


<<편집가가 하는 일>>에서는 '편집가는 저자의 아이디어와 표현에 관여하면서 가장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은혜 편집자는 이를 다르게 (좀 더 겸손하고 따뜻하게) 표현했다.


“‘편집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남의 글을 읽고 다듬어 세상에 내놓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카피와 보도자료를 많이 써도 편집자는 작가는 아니며,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학자가 아니다. 다만, 글을 읽는 눈과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누군가 물을 대주면 한 방울도 남김없이 피와 살이 되게 하려고 애쓴다.”


그녀가 기대하고 좋아하는 작가는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앙상한 우리의 삶 속에서 풍부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지만 보편성을 띄는 글로 격려해주는 작가다.


“저자의 경험이 글이 되면 그것을 읽는 편집자는 이를 다시 경험으로 구현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작가를 '읽기'위해 노력한다. 작가가 추천해 주는 책도 읽고, 작가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심지어 여행이나 탐사도 하면서 그 본질에 다가선다. 목숨을 잃을 뻔 한적도 있다고 하니 그 노력이 과하다 싶을 정도다. 이 정도 애정이 있기에 편집자들은 "1000권밖에 안 팔리는 책을 줄줄이 생산해" 내는지도 모른다.


"지칠 줄 모르고 누군가를 또다시 좋아하게 되는 것이 편집자의 특성이다. 왜냐하면 글로 사람을 먼저 접하는 우리는 서로의 신상부터 파악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곧바로 정체성의 핵심(글)으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


출판도 팀워크이다. 작가도 혼자 글을 쓰는 것 같지만 그 책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나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팀워크가 나쁠 리가 없다. 생산성은 향상되고 창의성도 올라간다.


책 이야기


무대 뒤 이야기, 영화 제작 이야기 등 뒷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다. 이은혜 씨는 인문출판사 글항아리 편집장이다. 글항아리 출판사는 "(주)문학동네에서 역사, 철학, 한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을 중심으로 하여 과학, 사회과학, 예술 등의 교양서를 펴내는 계열사"다. <<읽는 직업>>에는 글항아리에서 이 편집장이 책을 펴내면서 있었던 일화들이 가득하다.


수정할 필요 없이 완벽한 글을 쓰는 <<네 번째 원고>>의 존 맥피와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게티 이야기, 편집하는데 1년 6개월이 걸렸다는 류쩌하의 <<중국정치사상사>> 책 이야기, 다양한 삶의 궤적과 책을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글항아리에서 기획한 외서가 최근 글항아리에 입사한 30대 젊은 편집자의 취향이었다는 사실도 재미있었다. (내가 아는 그분인가?)


글항아리에서는 벽돌 책을 많이 낸다. 벽돌 책들은 멋진데 가장 큰 불만은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거다. 최근 읽은 벽돌 책은 <<인간 본성의 법칙>>이다. 실용성이 중요한 나는 들고 다니면서 읽으려니 너무 무거워서 중간 부분을 과감히 잘랐다. 책을 고이 모셔두는 걸 좋아하는 남편은 잘린 책을 보며 마치 자신 일부가 잘린 듯 안타까워했다. 이후 11장부터 분절한 개정판이 나왔다. 휴대성은 좋아졌는데, 폼은 좀 안 난다. 독자야 이런 불평을 하면 그만이지만 벽돌 책을 만드는 저자와 편집자의 노력은 얼마나 클 것인가?


"기존의 것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성을 쌓기 위해서는 해체와 보존, 재구축에 들어가는 작가의 의지가 책의 두께와 중량감으로 이어진다. (중략) 연구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은 이런 책을 책장의 오브제로 간주하며, 은퇴 후에 꼭 읽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시력과 기억력이 쇠퇴할 뿐 아니라 많은 경우 지적 호기심도 줄어, 젊었을 적 자신이 한 결심을 마치 옆집 사람이 한 것인 양 생소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무 많이 미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찔린다.


마치며


이 책의 제목을 <<읽는 직업>>이라 짓고, 자신의 일을 '읽는 직업'이라 명명한 이유. 다 읽고 나니 알겠다. 저자의 생각을 읽고, 글의 의도를 읽고, 작가의 글을 읽고, 출판 시장을 읽고, 독자의 마음을 읽고, 출판사에 투고한 글을 읽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읽는 직업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앞으로도 그녀가 만든 좋은 책을 기대해본다.


* 위 글에서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인용문은 모두 <<읽는 직업>>에 있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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