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외부 세계는 영하 41도인, 스노볼은 따뜻한 일상을 보내는 곳이다. 스노볼에 사는 사람들은 다 엑터 또는 디렉터다. 엑터의 삶은 리얼리티 드라마로 편집돼 만천하에 방송된다. 엑터는 자신의 모든 삶을 영상으로 송출해야 한다.




엑터의 삶을 어떤 부분을 편집해서 내보낼지는 모두 디렉터의 권한이다. 엑터가 보여주는 삶을 자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살인을 하는 것을 방송하기도 한다. 바이애슬론 경기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사형 판결을 받은 인간 표적을 쏴 죽이는 것이다. 인기는 스노볼에서 살기 위한 필수 요소다.




스노볼은 이본 미디어 그룹 사람들이 후원해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스노볼 밖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말 그대로 쳇바퀴를 돌리는 삶을 산다.




"쳇바퀴를 돌리는 우리의 운동 에너지는 에너지 증폭기를 거쳐 발전소의 중앙 모터를 움직인다. 지금 사회의 제일 중요한 전기를 우리의 팔다리로 직접 생산해 내는 것이다."




쳇바퀴에서 일하는 동안 사람들은 스노볼 드라마를 마음껏 시청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노볼의 리얼리티 드라마와 엑터, 디렉터는 중요한 사람들이다.




"바깥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텔레비전 속 액터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따뜻하고 부유한 삶을 누리는 그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온갖 극적인 상황에 휘말려 고통받는 그들의 드라마로부터 오히려 평온한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스노볼 밖 사람들은 외부 사람들은 스노볼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동경한다. 액터나 디렉터가 되어 영구 스노볼에 살 기회를 얻길 바란다.





고해리는 액터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액터만 할 수 있다는 기상 캐스터로 최연소로 낙점된 인기 최정상의 엑터다.




기상 캐스터가 인기 있는 이유는 스노볼의 날씨는 모두 인공 날씨다. 기상 캐스터가 복권 뽑듯이 뽑은 날씨는 내일 날씨가 된다. 모두가 관심 갖고 바라보기 때문에 엑터로서 최고의 자리다.




하지만 고해리는 그 자리에 올라가자마자 자살한다.



고해리를 최고 인기 액터로 만든 차설 디렉터가 어느 날 초밤을 찾아온다.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고해리를 닮은 초밤에게 고해리로 살 것을 제안한다. 고해리의 죽음을 은폐하기 위함이다. 인기와 편안한 삶을 누릴 기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초밤의 꿈은 디렉터다. 고해리로 살면 디렉터가 될 기회도 가족을 다시 만날 기회도 없어진다. 고해리의 가족과 고해리의 일을 하며 고해리로 살아야 한다.




꽃길만 열릴 것 같아 보이는 초밤. 그러나 초밤은 고뇌한다. 생각해보자. 내가 초밤이라면 그냥 마냥 행복할 수 있을까? (물론, 처음엔 덥석 좋기만 할 거다) 이 질문이 이 책을 관통하는 키다.




이후 내용은 초밤이 고해리 인척 하면서 위기를 얻게 되는 내용도, 이본 가의 아들인 이본희와의 로맨스도 아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다. 초반 설정과 궁금증은 뒤로 갈수록 실타래가 풀려 마침내 모든 전말이 드러난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설정으로 이야기에 빠져 든다.




이 책은 제1회 창비 X카카오페이지 영 어덜트 장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영 어덜트는 영(Young)과 어덜트(Adult) 두 단어가 결합한 단어로, 보통 이제 막 성년이 된 사람, 혹은 청소년을 뜻한다. 문학계에서 영 어덜트는 청년과 청소년이 주요 소비층인 작품을 이르는 단어가 됐다. <해리포터>, <헝거 게임>, <다이버전트>, <뷰티플 크리처스>, <안녕, 헤이즐> 등이 있다." (출처: https://blog.naver.com/cine_play/221633709319)




혹한기라는 설정이 <<설국열차>>를 생각나게 하고, 스노볼의 삶은 <<트루먼 쇼>>를 생각나게 한다. 인간 표적을 죽이는 설정은 <<헝거 게임>>이 떠오르기도, 미디어에 자신의 삶을 노출하고 이로써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은 <<블랙 미러>>가 생각난다.




영화뿐만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삶은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상황과 고민에 더 몰입할 수 있다. 주인공은 고뇌한다. 자신임을 버리고 타인으로 사는 삶. 꽃길로만 보이는 삶 속에서.




"내가 힘든 건 나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의 밝은 면만 보고 싶어 한다. 이 일의 어두운 이면 따위는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거다. 그래야만, 꿈을 이룬 뒤에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정체성으로 힘들어하는 초밤을 차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애도 자꾸만 불행을 찾아다녔어.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지.”




최근 종영한 박보검 주연 드라마 <<청춘 기록>>에서 사해준의 아버지는 자신의 꿈을 찾는 아들에게 현실을 깨달으라고 한다. 분수에 맞게 일해서 돈이나 벌고 헛된 꿈은 꾸지도 말라고 한다.




원해요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네가 아무리 애써도 너의 성공은 내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스스로 성공을 만들어 가려는 아들의 뜻은 무시한다. 자신이 만든 틀 안에서 성공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 엄마는 아들이 곧 자신이다.




안정하의 어머니도 꿈을 찾는 화가 남편과 이혼하고, 악착같이 살면서(하지만 가난하게) 딸에게도 그렇게 악착같이 살라고 한다. 꿈을 좇던 아빠는 그림으로 부자가 되고, 현실적으로 살던 엄마는 가난하다.




젊은 이들에게 기성세대는 네가 찾는 것은 불행이다.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헛된 꿈을 꾸지 말고 취직하고 돈 벌고 일하고 집 사고 결혼하고 애 낳으라고 한다. 하지만 <<청춘 기록>>과 <<스노볼>>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되라고 한다. 나를 찾으라고 한다. 정체성이야 말로 삶의 핵심이다. 내가 누군지 알고 나로 살아야 내 삶이다. 내 죽음 앞에서 회고할 내 인생이다.




조카가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찍었단다. 미래 직업을 표현할 물건을 갖고 와 컨셉 사진을 찍는데 돈을 갖고 갔단다.




“꿈이 뭔데?”


“돈 많은 백수요. 대부분 친구들이 다 돈 가져올걸요.”


“돈 많은 백수가 되면 뭐하게?”


“그냥 놀게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슴이 내려앉는다. 초등학생들에게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게 만든, 꿈을 심어주지 못해서 가슴이 아리다. 조카에게 이 책을 주고 싶다. 그리고 무엇이든


되라고, 너다운 것을, 네가 할 수 있고 잘하는 것을 찾길 바란다. 그 재능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영하 41도보다 차갑거나, 전쟁터다. 지금 영 어덜트 들은 쳇바퀴를 돌려야 하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내' 삶으로 '내'가 살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이어야 한다. 나를 찾아가는 쉽지 않은 여정을 시작한 영 어덜트들을 응원한다.






* 이 책은 창비로부터 제공받았으나 내용은 제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그 애도 자꾸만 불행을 찾아다녔어.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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