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자전거> 동요를 통해 본 것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힘사람들에게 ‘알아서 기는‘ 삶에 어느 정도 길들여지고 익숙해져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는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철저하게 위계와 서열에 따른 상하수직 관계가 너무나 흔하고 당연하게 여겨지기에 이런 현상에도 무감각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강자의 횡포가 정의의 실현을 방해하는 아주 큰 요소라는 걸 못 느껴요. 그걸 느끼지 못하니 정의가 망가져도 잘 모르거나 비판하고 저항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그러니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가 필요하다하겠습니다. 하나는 강자에게 알아서 기는 비겁함을 버려야 하고,또 다른 하나는 부당하고 일방적인 상하 수직 관계에서 빚어지는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정의는 약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요구되는 것일 수 없으며 강자가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정의의 본질은강자가 약자를 보호하며 함께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 P27
아리스토텔레스가 망신 주기 자체가 덕은 아니라면서도 실제로 한 말이다.지나치게 쉽게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모든 일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이는 과도하다. 수치심이 부족하거나 수치심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은명예를 모르는 사람이다.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온화함을 설명한 방식을 다시 떠올려보자. 화를 내야 할 상대를 향한 알맞은 양의 분노, 이것이 온화함이다. - P204
실용주의는 우리에게 스스로 도덕적 심판관이 되라고 한다. 행동을 직접 살펴보고 결과에 차이가 있는지 판단해 논쟁이 헛된 것인지의미 있는 것인지 결정하라고 조언한다. - P188
한 개념이 다른 것보다 더 맞는다고 할 때 실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두 개념 사이에서 실제적 차이를 조금도 찾을 수 없다면 결국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그 모든 논쟁은 헛되다. 서로 다른 개념을 심각하게 논쟁 중이라면 그들 사이에서 확실하고 실제적인 차이점을 보여줄 수 있어야한다.제임스의 실용주의는 "처음의 것, 원칙, 범주, 원래 그런 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마지막에 남은 것. 열매 • 결과 사실을 바라보고자 한다 - P183
킹스칼리지 런던의 고전학 교수 에디스 홀 Edith Hall은 이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을 멋지게 설명한다.스스로 생각하는 내 단점은 인내심이 없고 무모하며 지나치게 퉁명스럽고 감정적으로 극단적이며 앙심을 품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에 따르면 적당한 선만 지키면 이 모든 것은 괜찮다. 인내심을 잃어본적 없는 사람은 무언가를 이룰 수 없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은 제한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진실을 회피하고 고통과 기쁨을 표현하지 않으면 정신적, 감정적으로 정체되고 결핍이 생긴다. 또한 자신에게 해를 가한 상대에게조차 아무런 앙심을 품지 않으면 그 역시 스스로를 착각하고있거나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것이다. -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