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념이 다른 것보다 더 맞는다고 할 때 실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두 개념 사이에서 실제적 차이를 조금도 찾을 수 없다면 결국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그 모든 논쟁은 헛되다. 서로 다른 개념을 심각하게 논쟁 중이라면 그들 사이에서 확실하고 실제적인 차이점을 보여줄 수 있어야한다.

제임스의 실용주의는 "처음의 것, 원칙, 범주, 원래 그런 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마지막에 남은 것. 열매 • 결과 사실을 바라보고자 한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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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칼리지 런던의 고전학 교수 에디스 홀 Edith Hall은 이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을 멋지게 설명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내 단점은 인내심이 없고 무모하며 지나치게 퉁명스럽고 감정적으로 극단적이며 앙심을 품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에 따르면 적당한 선만 지키면 이 모든 것은 괜찮다. 인내심을 잃어본적 없는 사람은 무언가를 이룰 수 없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은 제한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진실을 회피하고 고통과 기쁨을 표현하지 않으면 정신적, 감정적으로 정체되고 결핍이 생긴다. 또한 자신에게 해를 가한 상대에게조차 아무런 앙심을 품지 않으면 그 역시 스스로를 착각하고있거나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것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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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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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가 지닌 진정한 가치다. 매우 오래전에 저술한 것임에도 인간이 지닌 어떤 면에 관해 여전히정곡을 찌른다. 사람의 성격과 습관은 조심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러나 불가피하게 굳어간다.

행동은 성격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끊임없는 학습, 끊임없는 사고, 끊임없는 탐색의 가장 좋은 점은 그것이 안겨주는 결과다
성숙한 동시에 유연한 사람, 옛것과 새것 모두를 경험할 줄 아는 사람, 반복에 따른 익숙함이나 한물간 세상 정보에만 기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덕을 계속해서 반복 연습하면 덕에 능수능란해지고 그 덕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이전의 반복 행동으로 고착된 관습에 빠져 지내지 않는다
아무리 이상한 상황에서도 좋은 결정을 내리도록 싸워볼 기회를 얻는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도 훌륭한 생각인가 - P53

다른 사람의 삶을 배우고 이해하려 할수록, 다시 말해 공감의 중용을 찾으려 할수록 그들을 잔인하게 대하기는 어려워진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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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온화함‘이라고 부른 분노의 중용이란 옳은 일을 위한 적절한 양의 분노를 의미하며 그 분노는 합당한 대상을 향해야 한다. 가령 파시스트나 부패한 정치인 또는 뉴욕 양키스와 관련된 사람 등이 있다. 즉, ‘분노‘는 자질이고 ‘온화함‘은 우리가 찾던 바로 그 완전한중간 지점의 덕이라 할 수 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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