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사랑 나쁜 사랑 3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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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사랑」, 엘레나 페란테

휘몰아치는 감정을 너무나도 잘 그려낸 작품.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을 떠나며, 아이 둘과 반려견과 남는다.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끊임없이 그가 왜 떠났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원망하고, 집착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자책하고, 간절하게 매달려본다.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생각은 남편이 누구와 눈이 맞은 것인지로 흘러가고, 괜찮은가 싶다가도 순식간에 날카로워진다. 이를 겪는 작중 인물의 사고의 흐름과 일련의 행동들을 끝까지, 끈질기게 묘사하는 것이 이 작품의 진수라고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나름의 사건 전개를 통해 주인공이 이러한 상태를 - 오랜 시간 끝에지만 - 나름대로 받아들이며 천천히 자신의 생활을 견고하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 서술자를 내세운다는 점과 작가가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겪는 세계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하는 것 같다만, 그것보다도 나는 '버려짐'을 겪은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바탕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맨 앞에서 했던 말이지만, 정말 휘몰아친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사고의 흐름이 압권.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ㅡ 100p.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 나를 떠나버린 것이다. 지금껏 그에게 바친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와 노고를 몽땅 가져가 버린 것이다. 내 모든 노력의 결실을 다른 계집과 즐기기 위해서 가져가 버렸다. 내가 남편을 낳고 길러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는 동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랑 말이다. 이보다 더 부당한 일이 어디있단 말인가. 그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게 이런 모욕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총기가 흐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 둘만의 추억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어디선가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더욱 강렬히 느껴졌다. 열정이라기보다는 불안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남편에게 지금 당장 내 도움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ㅡ 116-7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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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8일 - 생각할수록 애련한 조성기 오디세이 1
조성기 지음 / 한길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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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8일, 조성기, 한길사.


비극적인 죽음으로 널리 알려진 사도세자를 그의 시점으로 재구성한 소설. 일단 그 시도 자체가 굉장히 참신하긴 했다. 불운한 삶의 대명사가 된 그가 뒤주에서 맞이했던 며칠 동안은 어땠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러한 시도에서 시작된 글이라고 보인다. 그 참신성이 높고, 꽤 재밌게 잘 읽히는 책이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애매하게 과거 역사적 사실의 비중이 꽤 높아 완전히 주관이나 생각이 많이 들어간 느낌도 아니었고 이것이 은근 몰입을 해친다는 점. 개인적으로는 적당히 잘 읽히는 참신한 역사소설 정도에 지나지 않긴 했으나 대중적으로는 꽤 괜찮은 평을 들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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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리처드 J. 번스타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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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왜 현대에 아렌트를 읽어야하는지 그 의의를 다루며 그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정말 잘 읽히고, 아주 괜찮았던 책. 

사회학과의 전필 이론수업인 사회학사 강의에서는 오귀스트 콩트에서부터 시작해 주요한 사회학자들을 다루는데, 그들의 주요한 아이디어와 생각들 뿐만 아니라 생애에도 많은 시간을 들여 설명을 한다. 그렇게 하면 그 사상을 왜,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했는지를 훨씬 더 심도깊게 이해할 수 있어서이다. 이 책도 비슷하게 아렌트의 삶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자신이 무국적 독일계 유대인이 되어 이리저리 몸을 피하고, 우연의 연속으로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배경을 알게 되자 그의 저작들이 어떠한 맥락에서 기원했는지를 좀 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의 또다른 특징이자 훌륭한 점은 아렌트의 삶과 생각을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한계와 의의를 명확히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렌트는 흑인문제, 그리고 여성문제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고, 저자는 다른 문제에서는 차별과 억압을 당하는 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그가 어떻게 이러한 이슈에 대해서는 둔감했는지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렇지만 아렌트를 읽어야하는 이유도 명확한데, 이를 풀어내는 저자의 통찰력이 꽤 좋다. 아렌트의 논의는 공동체를 잃어버린 난민들이 주 이슈가 된 현 세계에 던지는 의의가 분명 존재하며, 무사유가 곧 악이라는 핵심 아이디어는 어떻게 현대사회에서 이를 극복해야 하고 토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저자가 아렌트의 핵심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게 잘 소개하면서도 그에 대한 비판과 중요한 지점, 생각해볼만한 거리들을 풀어놓은 잘 쓴 책이었다. 아렌트가 궁금한 사람들이 제대로 읽기 전에 이 책을 일독할 것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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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섬 : 나의 투쟁 4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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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버전의 <아홉살 인생>. 유년 시절을 소재로 삼아 일종의 자전적 소설을 쓰는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주인공이 처음 학교를 입학해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러모로 위기철 작가의 <아홉살 인생>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둘 다 유년시절을 소재로 해서 느낌이 비슷했다. 두 책 모두 어린 시절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세심하게 묘사했고, "그때 그 시절"의 풍경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유사하다. 차이도 존재한다. <아홉 살 인생>이 보다 구체적이고 향토적이라면, <유년의 섬>은 비교적 아련한 느낌이다. 사실 일종의 구체적인 사건들을 담아내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소설책이라기보다는 어떤 회고적 성격이 짙은 영화의 단편, 혹은 유년시절 기억의 조각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또한 <아홉살 인생>같은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이 아홉 살의 꼬마아이의 시점에서 전개되고 그가 보고 듣고 겪은 사건들인 데에 비해 <유년의 섬>은 사건들과 생각,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어머니에 대해 서술하다 현재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부모에 관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어쩌면 이것이 더 이 소설을 영화처럼 보이게 하는 지도. 읽다보면 극본이 아닌데도 일종의 장면 전환들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한 효과를 준다.
 개인적으로는 구체적인 사건들을 다루는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완전히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류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몽환적인 느낌과 사유가 곁들여진 소설을 좋아한다면 매력적일 책이다. 그리고 노르웨이에서 겪는 유년기란 무엇인가를 바라보기에도 한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우리들이 읽기에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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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나가 씨는 시미즈 씨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혀에단맛을 느꼈다고 합니다. 천재는 틀림없나 보군요. 확실히 고대 일본의 나라삼채에 쓰인 색은 녹색이었습니다. 연유에 구리를 약간 섞으면 초록빛이 나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녹색‘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실은 아주뒷시대의 감각입니다. 당시에는 청색‘이라고 부르는 것이 압도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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