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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아닌 길 말 없는 말
정병조 지음 / 정우사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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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유마경에 대한 정병조 교수의 강의를 엮은 것이다. 다만 이 책은 다른 경전강의들과는 약간 다르게 자유로운 수상집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원전에 대한 해석 등은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유마경 원전을 읽고 원문을 직접 해석하면서 강의를 읽고 싶으신 분은 이 책 말고 故 이기영 교수의 두 권짜리 유마경 강의를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유마경은 반야부 경전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약간 후대에 성립된 경전으로서 본격적인 대승불교의 지평을 여는 중요한 경전이다. 특히 이 경전은 뛰어난 상상력과 반어법 등 문학적으로 유려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만큼 대승불교의 향기가 물씬 나는 경전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유마경의 문제의식은 空을 체득한 대승보살의 바른 삶의 자세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이다. 이를 위해 경전 앞부분에 유마라는 탈속적인 居士를 등장시켜 10대제자를 비롯한 이른바 '권위'를 신랄히 비판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3. 사실 양이 많고 따분하게 느껴지기 쉬운 이 유마경을 한국불교연구원의 정병조 교수는 무리없이, 그리고 때로는 감동적으로 찬찬히 읽어준다. 그것도 원문 그대로가 아니라 당신께서 잘 소화시킨 당신의 언어로 잘 읽어준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이유이다. 반야부 경전을 잘 읽으신 분이라면 이 유마경 강의를 읽는 것에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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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법정 스님 전집 8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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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법정 스님의 책을 처음 대한 것은 지난 89년이었다. 무소유라는 제목의 범우문고에서 나온 자그마한 수필집에는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용어들이 많았고 그저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좋았었다.

다시 법정 스님의 맑고 영롱한 글을 본 건, 진리의 말씀이라는 제목의 역시나 자그마한 책이었다. 유명한 법구경 번역이다. 그 이전에 읽었던 김달진 번역 법구경이 다소 난삽하고 장황하게 느껴졌던 반면 스님의 번역은 담박한 맛이 일품이었는지라, 그 이후 기회있을 때마다 법정 스님의 책들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숫타니파타 앞부분에 대한 스님의 강의를 모은 것이다. 숫타니파타는 가장 이른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전으로서 소니카야에 포함되어 있다.

초기 경전의 특징은, 후대 대승경전에 비해 표현이나 묘사가 훨씬 담박하고 인간적이라는 점이다. 다만, 숫타니파타와 같은 경전에는 출세간에 대한 가치판단이 명확히 드러나있어 다소 은둔적인 지향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마도 불타 생존시 인도의 사상지형 내에서 불타의 상대적 위치 때문인 것 같다.

'조금은 외로울지라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외로움은 자기 자신을 맑히는 길이기도 하다.'(p. 68)
-- 홀로 깊은 산에 암자를 지어 침묵 속에 살아가는 스님의 깨끗한 영혼이 느껴지는 책이다. 떠나가는 한 해, 다가오는 또다른 한 해, 먼 길을 달려온 우리들에게 전해지는 또 하나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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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나침반 1
숭산스님 지음, 현각 엮음, 허문명 옮김 / 열림원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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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가는 길이란 게 있을까? 이 책 <선의 나침반 1>은 정확히 말하면 또하나의 불교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숭산큰스님의 구수한 입담과 간간히 쏟아지는 '탕!' 소리가 다른 개론서와 다소 차이가 나는 점이라고나 할까?

흔히 개론서들은 중요한 교리들을 중심으로 도식적인 설명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역시나 도식적인 설명이 없지 않고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도식적인 설명을 하면서도 굳이 탕! 탕! 하고 禪의 느낌을 전달하려는 것은 다소 언짢은 부분이다.

대체 이 책에 무슨 방편이 담겨 있을까... 방편이 아니되고서 어찌 지혜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가 하면, 도대체 이 책의 독자와 관련된 근기를 책 만드신 분이 어떻게 보고 계신지 도저히 모르겠기 때문이다. 혹은 책 한 권에 모든 것을 담아보고자, 쓸 수 없는 공간 자체를 탕! 탕! 하면서 확장하신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확장되는 공간의 느낌 자체가 근기 정도에 따라 아예 신비한 그 무언가 실체가 있는 것처럼 철저히 오해되기 마련이라는 데 있다.

더 좋은 개론서들이 있다. 적어도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막 불교에 입문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이 책은 너무 난해한 책이다. 이 책은 개론서만 읽고서 돈오! 하시려는 분들에게는 어찌보면 그럴듯해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고 慧와 定이 함께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맞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석지현 스님의 '불교로 가는길'이나 전재성 님이 번역한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같은 책들이 개론서로서는 더 적절하다고 본다. 개론서는 개론서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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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에세이 - 우리는 전생에 거대한 숲이었다
석진오 지음 / 시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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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강경은 너무도 유명한 대승경전으로서, 오늘날 수많은 신도들에 의해 수지독송, 서사되고 있다. 금강경 그 자체에도 이 경전을 읽고 암송하는 이에게 큰 복이 있을 것이라는 구절이 여러번 반복되고 있어, 우리 신앙의 祈福的인 측면을 더욱 강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저자 석진오 스님은 이와 같이 경전의 수지독송을 강조하는 금강경을 어떻게 읽어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해 너무나도 정직한 의견을 피력한다.

2. 卽非 是名. 이것은 금강경에 담긴 지혜를 음미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크나큰 물음을 던지는 금강경의 고유한 논리이다. 이 즉비시명은 경전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반복되고 있는데, 저자는 이 즉비시명을 因緣起滅이라고 해석한다.

因緣起滅. 그것은 어떤 그 무엇에도 절대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즉 인연에 따라 생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연에 따라 생멸하는 것이므로 xx가 아니며, xx라고 이름부른다는 것이다.

3. 절대적이고 영원불멸하는 어떤 초월자 신(혹은 어떤 신비로운 경지 - 아뇩다라삼막삼보리 등)이 있어 그것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그것을 至誠으로 숭배하는 것에 의해 인간은 구원받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보는 불교는 분명 무수하게 다양한 모습을 띄고 있어 이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 앞에 너무도 다양한 답변이 떠오르게 된다.

가령 미륵하생경이나, 아미타경, 지장경 혹은 관음경을 열심히 암송하고 있는 신도라면? 관음보살, 아미타불, 미륵보살 등의 대자대비한 濟渡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염불을 외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4. 적어도 원시불교는 박띠의 길이 아닌 쁘라즈나의 길이라고들 한다. 이런 점에서 금강경은 사실 부분적으로는 후대 대승경전의 색채가 강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초기 경전들의 연기사상이 잘 드러나있는 경전인 것으로 보인다. 반야부 경전의 空 사상은 원시불교의 연기사상이 발전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구게를 음미해 보면,

ⓐ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사구게의 가르침들은 하나같이 즉비시명의 논리 자체이며, 이러한 즉비시명의 가르침은 이 금강경 자신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 석진오 스님의 강조점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수반되는 어찌보면 당연한 듯한 결론은 우리의 금강경은 대승불교운동 초기의 정황을 반영하여 마치 부처님의 말씀인 것처럼 위장되어 경전 속으로 새로운 '분별심'과 '우상'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5. 인간은 어떻게 구원되는 것인가? ...... 우리가 경전을 읽는 의미는 무엇인가? ......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석진오 스님은 禪僧으로서 이와 같은 물음을 우리들 앞에 직접 내던진다. 그리고 그 물음의 실마리가 바로 금강경인 것이다. 분명,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식을 위해 오늘도 정성들여 불공을 올리는 주름살 깊게 패인 우리 어머님들의 그 믿음을 헛되고 망상에 사로잡힌 것이라 매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정한 반야의 가르침은 그와 같은 믿음에 대한 분별심 자체를 여의는 데에 있다. 그런 점들을 생각하면서 석진오 스님의 이 책을 감사히 읽었다.

6. 그 누구도 달을 가리킬뿐이듯이 우리의 깨달음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모두 각자 자기 자신의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고독은 몸뚱아리가 시리도록 이 추워지는 가을밤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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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세계의 사상 21
노자 지음, 김학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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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자도덕경은 판단하기에 마음이 편치 않은 책이다. 노자도덕경에 이르면 감히 입을 열기 곤란하다. 지금 이 방 한 쪽 켠에는 10여권이 넘는 다양한 번역본들이 있고 그 대부분을 읽었지만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는 그 번역본들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그냥 한번 적어본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평가다. 의견은 다를 수 있다.

2. 내가 읽은 가장 황당한 번역은 '함허'라는 道士의 번역을 우리말로 소개한 '仙家本經'이라는 책에 담겨 있다. 국문법을 완전 무시한 것도 그렇지만 한마디로 구름 속을 신선되어 떠도는 번역이다.

3. 그리고 내가 읽은 가장 어설프고 수준낮은 번역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양방웅 님의 '초간노자'이다. 초보적인 실수들이 많은 것 같다.

4. 또 하나의 특이한 번역은 아무래도 라즈니쉬의 '道 영원한 대하'(전 5권)와 석지현 스님의 '언덕의 노래'이다. 둘 다 신비주의적이지만 번역자 나름의 주관이 깊이 아주 깊이 잘 표현된 번역이다. 그래서 이 두 번역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5. 김용옥 님의 번역 - '길과 얻음' 그리고 '노자와 21세기'(전 3권) - 은 잘 소화된 대중적인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6. 오진탁 님이 옮긴 '감산의 老子 풀이'는 또 하나의 조사어록을 읽는 느낌이었다. 감산의 도덕경 풀이는 禪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 맛을 깊이 음미해볼만한 책이다.

7. 가장 스탠더드한 번역은 역시 김학주 님의 번역과 임채우 님의 '왕필의 노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김학주 님의 번역은 그야말로 한문 공부하면서 읽기에 편한 책이다. 한편 임채우 님의 번역은 간결하면서도 정확하다. 특히 왕필주가 완역되어 있어 다른 번역을 읽으면서도 수시로 참고할 수 있어 추천할 만하다.

8.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하상공본 노자도덕경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상공본의 경우 무슨 道士들이나 읽는 것처럼 되고 있다. 현전 왕필본보다도 고본인 하상공본에 대한 고증을 시도한 우리말 번역이 없고, 괜한 오리지널리티 추구로 제대로 글자도 판독하기 어려운 초간본이나 붙잡고 늘어진다. 동아시아 문화 형성에 있어 근본바탕이 된 종교로서의 도교를 이해하기 위해 하상공본 노자도덕경에 대해 문헌비평을 해볼 생각은 안 하는가?

9. 역사적인 도가 사상과 종교로서의 도교를 이해하는 과정은 엄연히 과거 문헌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수반하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출판번역 현실에서는 도덕경을 이해함에 있어 포스트모던한 이야기로 도덕경 위에 전혀 새로운 집을 지어올리면서 구름잡는 신선 안 되면 다라는 식이거나, 아니면 무병장수하기 위해 도덕경을 주문처럼 외우는 식 둘 중 하나로 전락하기 쉽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니 의사 전달이 잘 안되는 것도 같지만 어쨌든 우리 출판번역 문화에서 노자가 갖는 현재의 '상품성'과 대조적으로 그 컨텐츠는 많이 빈약한 듯 하다.

10. 제발 쓸데없는 또 한권의 번역이라면... 이젠 집어치우고, 과거 문헌 자체를 충실히 번역하고 과학적인 문헌비평을 대중들에게 소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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