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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ㅣ 세계의 사상 21
노자 지음, 김학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1. 노자도덕경은 판단하기에 마음이 편치 않은 책이다. 노자도덕경에 이르면 감히 입을 열기 곤란하다. 지금 이 방 한 쪽 켠에는 10여권이 넘는 다양한 번역본들이 있고 그 대부분을 읽었지만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는 그 번역본들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그냥 한번 적어본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평가다. 의견은 다를 수 있다.
2. 내가 읽은 가장 황당한 번역은 '함허'라는 道士의 번역을 우리말로 소개한 '仙家本經'이라는 책에 담겨 있다. 국문법을 완전 무시한 것도 그렇지만 한마디로 구름 속을 신선되어 떠도는 번역이다.
3. 그리고 내가 읽은 가장 어설프고 수준낮은 번역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양방웅 님의 '초간노자'이다. 초보적인 실수들이 많은 것 같다.
4. 또 하나의 특이한 번역은 아무래도 라즈니쉬의 '道 영원한 대하'(전 5권)와 석지현 스님의 '언덕의 노래'이다. 둘 다 신비주의적이지만 번역자 나름의 주관이 깊이 아주 깊이 잘 표현된 번역이다. 그래서 이 두 번역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5. 김용옥 님의 번역 - '길과 얻음' 그리고 '노자와 21세기'(전 3권) - 은 잘 소화된 대중적인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6. 오진탁 님이 옮긴 '감산의 老子 풀이'는 또 하나의 조사어록을 읽는 느낌이었다. 감산의 도덕경 풀이는 禪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 맛을 깊이 음미해볼만한 책이다.
7. 가장 스탠더드한 번역은 역시 김학주 님의 번역과 임채우 님의 '왕필의 노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김학주 님의 번역은 그야말로 한문 공부하면서 읽기에 편한 책이다. 한편 임채우 님의 번역은 간결하면서도 정확하다. 특히 왕필주가 완역되어 있어 다른 번역을 읽으면서도 수시로 참고할 수 있어 추천할 만하다.
8.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하상공본 노자도덕경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상공본의 경우 무슨 道士들이나 읽는 것처럼 되고 있다. 현전 왕필본보다도 고본인 하상공본에 대한 고증을 시도한 우리말 번역이 없고, 괜한 오리지널리티 추구로 제대로 글자도 판독하기 어려운 초간본이나 붙잡고 늘어진다. 동아시아 문화 형성에 있어 근본바탕이 된 종교로서의 도교를 이해하기 위해 하상공본 노자도덕경에 대해 문헌비평을 해볼 생각은 안 하는가?
9. 역사적인 도가 사상과 종교로서의 도교를 이해하는 과정은 엄연히 과거 문헌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수반하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출판번역 현실에서는 도덕경을 이해함에 있어 포스트모던한 이야기로 도덕경 위에 전혀 새로운 집을 지어올리면서 구름잡는 신선 안 되면 다라는 식이거나, 아니면 무병장수하기 위해 도덕경을 주문처럼 외우는 식 둘 중 하나로 전락하기 쉽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니 의사 전달이 잘 안되는 것도 같지만 어쨌든 우리 출판번역 문화에서 노자가 갖는 현재의 '상품성'과 대조적으로 그 컨텐츠는 많이 빈약한 듯 하다.
10. 제발 쓸데없는 또 한권의 번역이라면... 이젠 집어치우고, 과거 문헌 자체를 충실히 번역하고 과학적인 문헌비평을 대중들에게 소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