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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에세이 - 우리는 전생에 거대한 숲이었다
석진오 지음 / 시학사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1. 금강경은 너무도 유명한 대승경전으로서, 오늘날 수많은 신도들에 의해 수지독송, 서사되고 있다. 금강경 그 자체에도 이 경전을 읽고 암송하는 이에게 큰 복이 있을 것이라는 구절이 여러번 반복되고 있어, 우리 신앙의 祈福的인 측면을 더욱 강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저자 석진오 스님은 이와 같이 경전의 수지독송을 강조하는 금강경을 어떻게 읽어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해 너무나도 정직한 의견을 피력한다.
2. 卽非 是名. 이것은 금강경에 담긴 지혜를 음미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크나큰 물음을 던지는 금강경의 고유한 논리이다. 이 즉비시명은 경전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반복되고 있는데, 저자는 이 즉비시명을 因緣起滅이라고 해석한다.
因緣起滅. 그것은 어떤 그 무엇에도 절대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즉 인연에 따라 생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연에 따라 생멸하는 것이므로 xx가 아니며, xx라고 이름부른다는 것이다.
3. 절대적이고 영원불멸하는 어떤 초월자 신(혹은 어떤 신비로운 경지 - 아뇩다라삼막삼보리 등)이 있어 그것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그것을 至誠으로 숭배하는 것에 의해 인간은 구원받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보는 불교는 분명 무수하게 다양한 모습을 띄고 있어 이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 앞에 너무도 다양한 답변이 떠오르게 된다.
가령 미륵하생경이나, 아미타경, 지장경 혹은 관음경을 열심히 암송하고 있는 신도라면? 관음보살, 아미타불, 미륵보살 등의 대자대비한 濟渡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염불을 외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4. 적어도 원시불교는 박띠의 길이 아닌 쁘라즈나의 길이라고들 한다. 이런 점에서 금강경은 사실 부분적으로는 후대 대승경전의 색채가 강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초기 경전들의 연기사상이 잘 드러나있는 경전인 것으로 보인다. 반야부 경전의 空 사상은 원시불교의 연기사상이 발전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구게를 음미해 보면,
ⓐ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사구게의 가르침들은 하나같이 즉비시명의 논리 자체이며, 이러한 즉비시명의 가르침은 이 금강경 자신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 석진오 스님의 강조점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수반되는 어찌보면 당연한 듯한 결론은 우리의 금강경은 대승불교운동 초기의 정황을 반영하여 마치 부처님의 말씀인 것처럼 위장되어 경전 속으로 새로운 '분별심'과 '우상'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5. 인간은 어떻게 구원되는 것인가? ...... 우리가 경전을 읽는 의미는 무엇인가? ......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석진오 스님은 禪僧으로서 이와 같은 물음을 우리들 앞에 직접 내던진다. 그리고 그 물음의 실마리가 바로 금강경인 것이다. 분명,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식을 위해 오늘도 정성들여 불공을 올리는 주름살 깊게 패인 우리 어머님들의 그 믿음을 헛되고 망상에 사로잡힌 것이라 매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정한 반야의 가르침은 그와 같은 믿음에 대한 분별심 자체를 여의는 데에 있다. 그런 점들을 생각하면서 석진오 스님의 이 책을 감사히 읽었다.
6. 그 누구도 달을 가리킬뿐이듯이 우리의 깨달음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모두 각자 자기 자신의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고독은 몸뚱아리가 시리도록 이 추워지는 가을밤을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