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974년 로버트 레드포드, 2013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당대 최고의 배우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위대한 개츠비’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F.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이다. 그가 쓴 소설이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품인 <위대한 개츠비>이다. 국내에 번역본이 무려 590권에 달할 정도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책이 나와서 ‘어떤 책을 고를까?’하는 ‘결정장애’가 생길 지경이다. 그런데도 또 번역자 이정서의 번역판이 나와서 한권 더 늘었다. 이미 6백여권의 번역판이 나온 상태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번역판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번역판의 번역자 이정서는 그동안 번역이 잘못되어서 원작이 초라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작가의 문체를 임의로 해체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문의 쉼표 하나까지 살려야만 하는 것인데, 나는 그 원칙을 지켰다. 여기서 내가 ‘원칙’이라고 한 것은 부사나 형용사, 접속사 등 원문에 없는 의미를 임의로 넣거나 빼지 않은 것은 물론 대명사는 있는 그대로 옮겼다는 것을 뜻한다.” 

 

  그 시대의 시대상을 잘 묘사한 작품을 우리는 고전 문학작품이라고 한다. 특히 문학작품은 인간의 본성이라든가, 사람 사이의 갈등문제, 경제 문제 등 세대를 초월해서 일어나는 문제를 작가들이 예리하게 분석해 놓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작품이며, 오늘날 독자에게도 영감을 준다는 점에서 인류의 문화유산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늘 독서권장목록에는 올라가 있다. 그런데 직접 읽어보려면 잘 읽히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고전은 지나간 과거의 작품인데, 그 책이 쓰여진 시기의 시대적 배경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고, 따라서 오늘날 현실과 안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로 쓰인 작품의 그러한 간극을 메꾸는 작업이 번역이다. 번역을 통해 과거의 저자와 현재의 독자가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사람이 번역가인 셈이다. 특히 번역본이 많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다양한 번역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문학에 대한 소양이 부족한 탓인지,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을 때 큰 감흥을 느낄 수는 없었다. 자수성가한 주인공 개츠비가 자기를 버리고 떠나간 첫사랑 데이지를 다시 만나서 불륜을 저지르고 결국 살해당하는 비극인데, 무엇이 위대하다는 것일까? 사랑에 대한 집념이 위대하다는 것일까? 비참한 말년을 위대하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새로운 번역판을 보면서도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생각들이다.

 

역자는 그에 대한 대답을 그의 번역판에서 말한다. 그는 이미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의 몇가지 번역본의 오역을 권말에서 소개하며, 문제가 있는 번역을 수십 곳 지적했다. 번역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 부분도 있고,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오역을 과대포장해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새로 번역을 한 역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유야 어쨌건 다양한 해석, 정확한 번역을 위한 역자의 노력이 독자들에게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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