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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후작님은 밤마다 약초밭을 구른다
트랑코 / ㈜조은세상 / 2021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이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해놓은 설정을 지키기는 커녕 앞 내용과 계속 달라지고 개연성이 없으면 그냥 화가 난다. 이 작품도 여태껏 보아온 장르소설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게 설정이 엉망이다.
요정이었던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약초를 기르고 약제사 역할을 하는 여주 에이브릴.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엄마를 마녀로 몰아 죽인 거지같은 영주놈과 에이브릴을 이용해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꺼리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술 먹고 때리는 거밖에 할 줄 모르는 쓰레기 아버지 때문에 에이브릴은 왜 사는 지도 모르게 살아만 가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이 마을 영주의 부정부패를 조사하려고 몰래 잠입한 남주 아드리안. 아드리안은 몰래 조사를 다니다 최음 효과가 강한 '로즈벤더 유라립'밭에 버려지고, 성욕을 제 때 해소하지 못하면 죽을 위기에 처한다.
로즈벤더 유라립는 잘 쓰면 효과 좋은 약이라 약초밭에서 에이브릴이 키우고 있었는데,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죽기 일보직전인 남주를 발견하고는 약초밭의 주인의 책임감을 느끼고는 남주를 살리기 위해 몸을 겹친다.
여기까진 아주 멀쩡한 전개였다.
다음날, 왕의 동생 자격으로 요란하게 영주의 성에 들이닥친 검은머리의 '변견' 에클레인 전하. 색에 미친 난봉꾼으로 소문난 에클레인은 대뜸 로즈벤더 유라립부터 찾고 여자들을 콜렉션으로 모으고 있던 영주는 약초와 여자들을 상납한다.
뭐, 번견이 아닌 '변견'이라고 나오긴 하지만 이 정도 오타쯤이야... 남주를 똥개라고 부르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여기까지도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남주가 은밀히 조사하러 다닐 땐 원래의 은발로 다녀서 여주는 남주의 은발만 본 상태고, 에클레인 전하일 땐 검은 머리로 다닌다. 그런데 검은 머리 상태로 여주를 만나러 가서 두 번째 밤을 보내는데 검은 머리일 남주와 마주쳐도 여주는 그것에 대해 전혀 의문을 품지 않는다. 처음엔 검은 머리로 만나러간 줄 몰랐는데, 다음 날 아침에 검게 염색된 머리를 감고 용병일에 나오느라 지각했다는 장면이 있어서 이상해서 앞으로 돌려봤다. 머리색을 아무도 신경을 안씀. 이럴 거면 염색 왜 했다 뺐다 하는 거였는데. 작가님이 설정을 해놓고도 본인도 잊어버린 듯.
거기다 더 문제는, 늑대로 변신이 되는 반인반수 남주가, 사실은 여기가 남주의 고향이란다. 어릴 때 아직 인간으로 변신하지 못하던 시절에 여주랑 이미 잘 알고 지내던 사이란다. 여주야 늑대 모습밖에 못 봤으니 은발의 미남자인 남주를 못 알아보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에이브릴은 특이한 붉은 머리에 한두 번 마주친 것도 아니고 어릴 때 같이 놀면서 남주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여주를 좋아하게 돼서 어서 성인이 돼서 인간으로 변신할 날을 손꼽아 기다려놓고도 여주를 알아봤다는 얘기 자체가 없다. 주위 늑대들도 붉은 머리 첫사랑에 대해 다 알고 있는데!
그리고 진주 목걸이 장면... 딱 봐도 여주가 남주를 위해 사랑하지 않는다고 거짓말하는건데 거기다 분노표출, 독점욕 드러내는 장면이 찐따같다. 멀쩡하게 잘 생긴 젊은 남자가 나를 좋아해서 결혼하자는데, 자기 엄마를 죽인 변태색광 성주의 권력이 좋아서 성주에게 간다는 말이 상식적으로 믿어지나? 누가봐도 일개 용병인 남주를 위해서 거짓말하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을텐데 그걸 모르고 여주에게 "더러운 년"이라고 말하는 남주가 진심으로 한심스럽게 보인다. 이래놓고 조금 지나서 사실 거짓말이었다니까 사실 알고 있었단다.
그러다 서로 과거의 소녀와 늑대였었구나 하는 자각도 없이 여주는 갑자기 남주더러 어릴 때 늑대를 불렀던 별명인 '멍멍이'를 말하고 남주도 갑자기 어릴 적을 회상한다. 감정의 전개도 없이 그냥 막 바뀐다.
리뷰 쓰려고 다시 둘러보니, 책 초반에 변견이라고 하다 한 번 번견이라고 잘 나오다 마지막에 또 변견, 변견 하는구나. 진짜 출판사들 반성해야 한다. 작가들이 글 가져오면 최소한의 오타 교정과 최소한의 개연성 지적 정도는 하고 책을 팔아먹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