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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꽃쓰레기 (총2권/완결)
황곰 / 더클북컴퍼니 / 2020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실과 과거가 교차되면서 공과 수의 심리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그 과정이 흥미로워서 일단 완독은 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 수록,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될 수록 이해가 안가게 됐다. 불가사의해...
스포 표시해놓고 순서대로 다 나열하자면, 미신을 믿는 재벌집 아이들인 정한과 인하는 사주를 바꿔야한다는 할머니의 말에 따라 미국으로 간다. 하지만 일찍부터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인지한 정한은 남자와 사고를 치고, 그게 소문이 날까 두려워 한국으로 돌아간다. 모범적인 유학생활을 하고 대학까지 진학한 인하는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가서 정한의 친구이자 짝사랑 상대인 영효를 만난다. 장난기 심한 영효에게 같이 짓궂은 장난으로 응수하며 정을 쌓던 두 사람.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뭔가 이상함을 느낀 인하는 미국으로 돌아가 여자친구도 만들면서 학기를 잘 보낸다. 그리고 다시 방학이 되어 한국에 가서는 완전히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다. 영효를 관찰하며 스스로는 모르지만 영효가 먼저 자신을 좋아했다는 걸 알게 되고 둘은 감정이 이어진다. 미국으로 돌아간 인하는, 다음에 다시 한국에 가면 우리 정식으로 사귀는 거다? 라며 달달한 일상생활을 담은 사진이나 편지 따위를 보낸다.
그 사이, 미국에서도 인하에게 인간적인 열등감을 느끼던 정한은 영효에 대한 마음을 접으라는 인하의 선전포고에 다시 한 번 열등감을 느끼게 되고, 영효에게 고백한다. 하지만 정한을 친구로만 생각한 영효는 더럽다며 거칠게 거부하고 모든 연락을 차단해버린다. 그리고 우울증이 있던 정한은 그대로 자살한다.
정한의 수면제를 빼앗으며 술 마시면 잠 잘 온다던 영효. 정한의 죽음 후 충동적으로 수면제를 털어먹고 하숙집 주인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그리고 인하는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집안일을 하겠다며 한국으로 돌아와 영효와 같이 살기 시작한다. 원래부터 술을 좋아했던 영효는 알콜 중독이 돼버리고 술에 취하면 정한을 닮은 남자들을 꼬셔서 자려하고 그런 영효를 인하는 때리기도 하고 강간하기도 하며 10년을 같이 산다.
장난기 많고 뻔뻔한 영효를 인하는 농담반으로 쓰레기라고 부르곤 했는데, 정한의 죽음이후 정말로 쓰레기가 되어 버린 영효, 하지만 그 쓰레기가 예쁜 꽃쓰레기라 결국 놓을 수 없는 인하의 이야기다.
사실 큰 줄거리만 보면 이해가 안 갈 건 없다. 그런데 자잘하게 과한 느낌이 계속 듬.
정한을 거절했을 때도 그렇게까지 더러워할 필요가 있었나? 이미 불면증이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는데도, 자신도 인하를 좋아하면서 그렇게 모욕을 줄 필요가 있었나 싶다. 본인도 과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렇게 오래 죄책감에 몸부림쳤겠지만...
인하에 대한 것도 그렇다. 정한의 일을 계기로 큰 파열음이 난 건 사실이지만, 좋아하고 설레여놓고, 인하의 감정은 책임지지도 않은 채 술에 취해 다른 남자를 붙잡고 키스하는 장면을 인하가 봐버렸으니 인하도 좀 이해해줄만 하지 않을까. 물론 그 대가로 강간을 당하고 정신병원에 갖히고 집안에서 절연당했으니 인하를 원망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여기도 서로 과함.
아니 그냥, 정한이 죽었을 때 둘이 서로를 탓하며 싸우고 감정 정리를 하던가 아님 앙금을 털고 사귀던가 정리를 말끔하게 했어야했는데, 멀쩡하게 사회생활 잘 하던 영효는 극도로 인간 관계를 부정하는 사람이 돼버렸고, 리더쉽 있고 철두철미하게 인생을 설계하던 인하는 우리 서로 좋아했잖아 제대로 시작하자, 라는 말 한 마디를 못하는 등신이 되어 10년 동안 감시만 한다. 집밖에도 혼자 못 나가게 감시를 시키지만 제대로 감시도 못해서 술은 맨날 쳐먹게 하고 알콜 중독에 섹스 중독에 빠뜨린다. 사랑은 하지만 방치하는 부모같달까. 평중에 인하가 헌신공이라는 평이 있던데, 헌신공 맞음. 헌신하는 부모.
차라리 둘이 과거에 마음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정한을 잔인하게 끊어내버린 후 뒤늦게 인하를 좋아했던 자신을 깨달았다면 절대로 스스로를 용서 못하고 인하도 받아들일 수 없는 영효가 100% 이해됐을 거다.
삽질도 정도가 있지 10년은 너무 과해... 인하가 자기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 다른 날은 몰라도 서로의 생일만큼은 챙기는 10년을 뻔히 알면서... 1-2년이었으면 이 모든 스토리도 다 납득했을 듯.
그래도 어설프게 화해하고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것보다 오늘보다 반보 나은 내일을 생각하는 결말은 좋았다. 10년이나 걸릴 일은 아니었는데, 뭐 그건 현실의 인간인 내 생각인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