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읽은 '생일 파티'라는 희곡이 있다. 피티라는 집주인과 수다스러운 안주인, 게으른 하숙생 이렇게 셋이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두 남자가 찾아오고 그들은 하숙생을 고문한다.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고문.
그들이 누군 지, 무슨 이유인 지는 나오지 않는다. 어두운 폭력만이 남을 뿐.
뭐 대충 현대인이 가지는 막연한 불안감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흔히 빙의물의 거의 대부분은 몸의 원래 주인이 죽거나 원래 주인의 인도로 다른 사람이 그 몸에 들어간다. 이 작품은 그와 반대로 자의가 아닌 상태로 몸을 빼앗겼다가 다시 몸을 되찾고 불안해 하는 인물이 나온다. 흥미가 없을 수가 없다.
이 빙의 피해자 칼릭스는 두 번이나 몸을 빼앗겼다가 다시 몸을 되찾았는데도 이유를 모른다. 그리고 끝까지 독자들도 모른다. 어떻게 몸을 되찾게 된 건 지도 안 나온다.
대충 칼릭스와 알렉산더의 대화 내용을 보면 미연시 비슷한 장르에 떨어진 누군가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건드리고 자고 다녔던 거 같다. 그게 성공을 했으니 돌아갔겠지. 그런데 왜 그게 두 번이었을까? 그것도 안 나온다. 그럼 왜 두 번만 오고 세번 째로 오진 않을까? 그것도 안 나온다.
또 마음에 안 드는 건, 둘만의 애칭이겠다만 칼릭스를 씨씨, 알렉산더를 사샤라고 부르는데, 아니 애칭을 지으실 거면 아예 다르게 지으시던가, 발음도 ㅅㅅ으로 비슷하니 3권 끝마칠 때까지 헷갈렸음. 거기다 통일을 좀 하시지 지문은 무조건 알렉산더와 칼릭스고 둘이 대화할 때만 사샤와 씨씨다. 그러니 두 배로 헷갈림.
불안증에 시달리는 내용이 아니고선 누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둘이 말투가 똑같아. 아무리 비슷한 나이대 남자애들이 서로 반말을 한다쳐도 이렇게까지 구별이 안 가는 건 진짜 드물다.
둘의 대화가 너무 짧아서 더 구별이 안 가기도 한다. 대화를 하면서 둘이 소통을 할 의지가 별로 없나? 싶을 정도로 말을 짧게 하는데, 그 외의 자세한 설명은 전부 지문으로 설명한다. 독자들이야 글을 읽으면서 이런 맥락으로 이런 짧은 말을 건내는구나, 하면서 알지만 쟤들은 뇌파가 이어지지 않고서야 이걸 어떻게 알아듣지? 싶다. 무슨 내용이 있다면 거짓말 안 하고 90%는 지문이다. 대화는 5%, 행동이 5% 정도다.
예를 들어 마음 속으로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 팔, 이구...까지 생각하고 "십팔"이라고 대화를 한다. 어쩌다보니 예시가 욕처럼 보이지만 욕은 아니다. 예시일 뿐.
남들은 벤츠수라는 수가 난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오그라들어도 세기의 사랑을 하는 내용을 좋아하지, 한 쪽은 매달리는데 한 쪽은 난 쿨해ㅋ 하는 글은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 다시 몸을 빼앗길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칼릭스는 천년만년 불안해할거고 알렉산더는 그를 다정하게 다독이겠지. 정작 속으로는 칼릭스를 보석따위와, 있으면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만 없어도 죽지는 않을 존재 취급하면서. 난 로미오와 줄리엣을 원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