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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평점 :

이 소설은 25년 전, 한 바닷가 마을의 낡은 잔교에서 시작된다. 가정폭력과 방임, 부모님의 죽음과 이혼, 학교 폭력 등 잔인한 현실에 내몰린 14살 아이들에게 아무도 찾지 않는 그곳은 불안을 잠재울 유일한 안식처였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맘껏 헤엄치고, 실없는 농담과 비밀을 나누며 서로가 내일을 살아갈 용기이자 굳건한 방패가 되어준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전부였던 친구들은 그 뜨거운 여름에 화가가 그린 기적처럼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을 남기고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흘러, 훗날 '바다의 초상'이라 불리게 된 이 그림은 부모를 잃고 위탁 시설을 전전하던 18살 소녀 루이사에게 닿게 된다. 그 그림이 인쇄된 작은 엽서 한 장에 기대어 상처를 치유하던 소녀가 원본 그림에 얽힌 사연과 그림 속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 나서면서, 시공간을 건너뛰는 묵직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웃고, 울고, 조마조마했다가 화가 났다가. 오만가지 감정을 다 느끼게 하는 이 책을 읽고 나면 필연적으로 옛 생각이 난다.
나에게도 세상에 전부였던 친구들과 찬란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어른이 된 후, 누군가 돌아가셔야 몇 년 만에 장례식장에서 얼굴 한 번 겨우 보는 사이가 되면서, 우정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저 흐릿해지고 바스러져 버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안의 가장 찬란하고 푸르렀던 시절을 단숨에 소환해 낸 이 소설은 내게 우정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시간은 결국 지나가고 우리는 각자의 길로 흩어졌지만, 그때 나누었던 진심만큼은 형태를 바꿔가며 끝내 우리 삶을 지탱해 주었다는 것을. 세상의 크고 작은 생채기들로부터 서로를 지켜주며 온 마음을 다해 맹목적인 편이 되어주었던 그 시절,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온전하게 행복했던 그 시간만으로도 우정은 이미 영원하다는 것을 말이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이유 모를 불안감에 지쳐있거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한 친구들이 문득 그리워진다면 마음을 온기로 채워줄 이 다정한 소설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