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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평점 :

책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 충격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너무 궁금해졌다. ‘미친년의 역사’라니. 책이 도착한 날, 한 챕터만 읽고 자려고 펼쳤다가 절반 이상을 읽고 가까스로 책을 덮었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토하듯 눈물이 났다.
폭력이 난무하는 집구석에서 속이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결국 미쳐버려야만 버틸 수 있었던, 가족이라는 지옥을 온몸으로 견뎌내느라 자신을 다 갉아먹었던. 이랑 작가가 꺼내놓은 이야기는 그녀만의 고유한 비극이 아니라, 비슷한 지옥을 통과해 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알아챌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징글징글한 역사였다.
2021년 세상을 떠난 언니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소진사’라 명명했을 때, 나는 한참 동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했다. 타인을 돌보고 가족을 건사하느라 제 몫의 에너지를 바닥까지 박박 긁어 쓰고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핏기 없는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밤을 고통 속에서 뒤척였을지 감히 짐작해 본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를 직시하고 활자로 끄집어내는 일은, 겨우 아물어가는 딱지를 억지로 뜯어내 맨살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과거를 파헤쳐 이야기를 복원해낸 것은 누군가를 원망하기 위한 값싼 책망이 아니라, 왜 대를 이어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는지에 대한 치열한 증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흔해 빠진 동정이나 얄팍한 위로 따위는 얹고 싶지 않다. 그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 기어코 살아남아, 밥을 씹어 삼키고 기어이 노래를 부르며 이 글을 세상에 던져준 이랑 작가에게 그저 맹렬한 연대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20년을 함께한 반려묘 준이치의 마지막 말을 빌려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밥을 잘 먹어야 해. 밥을 먹으면 힘이 생길 거야."
징그럽게 아팠지만 끝내 살아남았으니 앞으로도 씩씩하게 밥 잘 챙겨 먹으며 하루 더 살아내자고. 그렇게 질기게 버텨보자고. 그것이 미쳐버린 세상과 가족이라는 굴레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