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 숲으로 걸어간 할머니, 엠마 게이트우드의 놀라운 여정
벤 몽고메리 지음, 우진하 옮김 / 수오서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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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좀 다녀올게."

1955년, 67세의 엠마 게이트우드가 가족들에게 남긴 이 짧은 인사는 무려 3,500km에 달하는 험난한 애팔래치아 트레일 단독 완주로 이어졌다.

벤 몽고메리의 이 논픽션은 낡은 케즈 운동화를 신고 자루 하나만 짊어진 채 홀로 그 길을 완주한 최초의 여성,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실제 여정을 담담하게 쫓아간다.

책장을 넘기며 마주한 할머니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11명의 자녀를 키워내며 30년 넘게 남편의 끔찍한 폭력을 견뎌야 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트레일 위에서의 험난한 발걸음과 교차된다.

40대 중반,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일상에서 주어지는 크고 작은 책임감에 종종 지치곤 하는 내게, 67세의 나이에 변변한 장비조차 없이 그 거친 숲길로 뛰어든 할머니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할머니가 왜 그토록 무모해 보이는 길을 나섰는지, 책은 함부로 짐작하거나 감상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저 독사, 굶주림, 거친 비바람과 싸우며 앞으로 나아가는 할머니의 여정을 묵묵히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그 고된 걷기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길 위에서 맞닥뜨리는 변덕스러운 날씨나 당장 오늘 밤 잘 곳에 대한 현실적인 걱정은 그녀가 스스로 통제하고 해결할 수 있는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평생을 닫힌 문안에서 매일같이 느껴야 했던 막연하고 끔찍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폭력에 부서졌던 마음을 다독이고 온전한 영혼을 회복해 나가는 가장 치열하고 거룩한 자기 돌봄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 비하면, 이 정도 트레일은 별거 아니더군요."

이 무심하고도 단단한 한마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67세의 나이에도 "그냥, 하고 싶으니까요"라며 망설임 없이 숲으로 걸어 들어간 그녀 앞에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체력도 열정도 예전 같지 않다며 핑계를 찾던 내 모습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나이듦을 두려워하기보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일단 한 발짝을 내디뎌보는 용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숨이 막히거나 일상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이 책을 펼쳐보시길. 엠마 할머니가 뚜벅뚜벅 걸어간 그 숲길이, 우리에게도 명쾌한 이정표가 되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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