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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근심
마리아나 레키 지음, 장혜경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2월
평점 :

소설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웃들과의 일상이 너무도 현실 같아서 '어? 에세이잖아~'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불안 장애가 있는 이웃 폴 씨, 갈등과 결정 공포증이 있는 비제 여사, 꼭지광(확인 강박) 친구 토비아스, 부모님과 삼촌, 사촌까지 심리상담사이지만 비행 공포증이 있는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보며 '아~~ 소설 맞구나!'하고 피식 웃음이 났다.
저자가 심리학 잡지에 연재했던 서른아홉 편의 문학 칼럼을 엮은 책인데 불면, 공포, 인간관계의 갈등 같은 보편적인 고민들을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다루고 있다. 거창한 비극 대신, 매일 우리의 일상을 맴도는 작고 끈질긴 불안들을 특유의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보듬어주는 따뜻한 책이다.
인생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깨닫는 것은, 삶을 힘들게 하는 건 거대한 불행이 아니라 매일매일 자잘하게 피어오르는 '온갖 근심'들이라는 사실이다.
불쑥 찾아오는 건강에 대한 염려, 인간관계에서의 피로감, 그리고 이유 없이 눈이 떠져 뒤척이게 되는 불면의 밤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의연해질 줄 알았지만, 마음속 근심의 종류만 다양해졌을 뿐 나는 여전히 서툴고 불안하다. 내 안을 무시로 드나드는 이 불청객들을 어찌할 바 몰라 지쳐가던 참에, 이 책을 만나 반가웠다.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그 어떤 에피소드에서도 작가가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다 잘될 거다"라는 식의 값싼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불안, 분노, 상실감을 애써 지워야 할 흠집으로 보지 않는 대신 그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도 기어이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응원을 보낸다. 그 한 발짝 물러선 특유의 경쾌하고 다정한 시선이, 그 어떤 뜨거운 위로보다 더 깊게 마음을 어루만졌다.
책을 덮고 나니,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었지만 늘 실패했던 내 안의 근심들이 조금은 만만하고 심지어 짠하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불면의 밤은 주기적으로 찾아올 것이고, 타인과의 갈등 앞에서는 또다시 심장이 뛰겠지만, 이제는 무작정 내 안의 불안을 미워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상한 근심들을 품고도 꽤 훌륭하게 서로를 의지하며 삶의 바다를 헤쳐 나가고 있으니까.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문득 이유 모를 우울과 불안에 휩싸이는 친구가 있다면,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이 다정한 책을 건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