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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 - 대전환의 시대를 건너는 진화론적 생존 법칙
대니얼 R. 브룩스.살바토레 J. 에이고스타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평점 :

이 책은 처음부터 내가 알고 있던 ‘진화’의 이미지를 흔들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써 온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사실은 다윈 진화론의 핵심이 아니라는 주장부터가 그렇다. 저자들은 30억 년의 자연사를 통해, 진화는 늘 1등을 뽑는 과정이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들을 남겨두는 헐거운 실험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생존의 핵심은 완벽한 적응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여지였다고.
이 관점은 곧바로 인류의 현재로 이어진다. 인류세의 위기는 단순히 산업화의 부작용이 아니라, 최적화에 중독된 문명의 구조적 한계라는 지적이 날카롭다. 정착 농업 이후 우리는 이동성과 유연성을 버리는 대신, 효율과 통제를 선택했다. 그 결과 인구는 늘었지만, 문명은 기후 변화나 팬데믹 같은 충격 앞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취약해졌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이 어쩌면 무너지는 시스템을 붙들기 위한 희망 섞인 진통제일지도 모른다는 저자들의 주장이 놀라웠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생물권의 4법칙’이다. 특히 제0법칙, 생물권의 진화 능력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는다. 자연을 보호한다는 말 뒤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연의 회복 가능성을 무시해 왔는지 알게 됐다. 인간의 제도와 경제가 자연법칙 위에 설 수 없다는 이 단순한 전제는, 지금까지 너무 쉽게 잊혀 온 것 같다.
저자들은 거대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려 애쓰기보다, 분산과 재전원화, 실패를 허용하는 ‘진화적 땜질’을 받아들이고, 완벽한 재탄생이 아니라, 조금씩 회복해 가는 과정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불완전함을 인정할 용기를 요구한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더 나은 해답을 찾겠다는 다짐보다,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움직이겠다는 태도를 얻게 되었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진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