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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능 우울증 -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고장 나 버린 사람들
주디스 조셉 지음, 문선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자주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내가 '우울증'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왜냐하면 '우울하긴 한데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야.'하는 상태로 힘들지만 일상에서 해야 할 일들은 해 왔기 때문이다. 무기력해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만이 우울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직장에 나가고, 해야 할 일은 꼬박꼬박 해내며, 겉보기엔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깊은 우울의 한가운데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무쾌감증’에 대한 설명이었다. 슬퍼서 힘든 게 아니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더 위험하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예전에는 힘들어도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사실은 그게 감정을 눌러 담는 방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 없어지는 건 강해지는 게 아니라, 경고음을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우울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지금까지 버텨온 방식이 과연 나에게 건강했는지를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를 혹사시키는 완벽주의, 늘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했던 태도, 감정 표현을 사치라고 생각하며 미루는 습관들을 하나씩 돌아보게 했다.
예전엔 피곤해도 ‘이 정도는 괜찮다’라고 넘겼고, 마음이 무거워도 ‘다들 이렇게 산다’며 스스로를 설득했다면, 지금부터는 그런 순간마다 잠깐 멈춰 서서 나를 돌봐야 할 시점은 아닐지 스스로에게 묻을 것이다. 이제는 무감각해지는 순간을 그냥 넘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를 바꿔야 한다며 다그치지 않고, 내가 나를 덜 몰아붙이도록 도와준 조용한 안내서였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점점 비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책은 분명히 조용하지만 깊은 흔적을 남길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