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때리는 부동산
이희재 지음 / 크레파스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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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부동산 공부법을 알려 주는 것도, 저자의 투자 노하우를 알려 주는 책도 아니었다. 이 부분에서 내심 안심이 되었다. 그동안의 책에서 나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투자자들의 무용담을 보며 조금 피로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와 내 식구들이 어떻게 하면 부침 없이 평범하고 사납지 않게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일상의 이야기, 화려하지만 결국은 남의 집 빌려 쓰는 그런 빛 좋은 개살구보단 남루할지언정 어디든 내 집 장만하고 사는 편이 낫다는, 그간 스스로 질문했던 고민의 편린 같은 거 말이다.

P. 12~13 - 프롤로그 中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왜 수많은 고민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나와 다른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고민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저자는 자동차는 20년 후 폐차하면 고철값만 남지만 집은 터가 남고, 내가 전세로 살고 있는 집값도 오르고 내가 안 산 저 집값도 오를 때, 내가 깔고 앉은 전셋값도 같이 오르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내 집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내 집 하나 필요한데 집값 안정이라는 이유로 제도적인 브레이크를 걸어서도, 되지도 않을 청약에 목 매달아 허송세월 보내게 희망 고문할 것이 아닌 청년 시절 자신의 소관(솔직하게 2억이라는 돈을 쉽게 모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대로 종잣돈을 모으고 레버리지를 일으켜 '살고 싶은 집'을 살 수 있게 해줄 '살 수 있는 집'을 사서 기다리면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살 수 있게 되는 그런 나라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 정권이 들어섰던 2016년 난 둘째를 임신한 채로 LH 공공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전에 살던 집보다 평수도 커졌고 신축이었고 가까운 곳에 장남이 다닐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있었다. 다른 변수가 생겨 이사를 가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10년 후에 분양받을 생각이었으니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부동산 매매나 전세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4년 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살 때도 전혀 제도적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 사이 부동산 정책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던 건 알고 있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도 없었고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고 살아왔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지난 5년간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아주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투기지역, 투기과역지구, 조정대상지역, 비규제지역으로 나라를 4등분 해 대놓고 급지 서열을 정리하고, 대출과 세금 규제로 꼭 집을 사야 하는 사람들까지 못 사게 만들고, 공공재 개발· 현물 선납이라는 이상한 공급 정책에 3기 신도시, GTX, 재초환, 분상제, 종부세 등등.

저자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정책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도,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러한 글을 봐도 내 의견을 낼 수 없을 만큼 무지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의견에 일정 부분 이해가 가기도 하고 다른 어떤 부분은 너무 비약이 심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의 불행과 아귀다툼은 진정 '살 수 있는 집'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살고 싶은 집'이 부족한 데서 비롯됐다는, 그 명징한 사실 말이다.

P. 132 - 믿기 시작하는 순간, 속기 시작하다 : 3기 신도시 中


하지만 하나 동의하는 건, 사람은 더 좋은 집, 더 더 좋은 집을 원할 수밖에 없다는 진실이다. 큰 평수에 살다가 작은 평수에 가고 싶어 할, 직장 10분 거리에 살다가 1시간 거리에 가서 살기 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 너 말 다 알겠고, 그래서 넌 정부가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냐?'하는 물음이 생길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실질적인 의견도 제시해 주고 있다. 다주택자들을 부동산 시장의 공급자로 인정하고 대우하는 것, 1기 신도시 용적률을 상향하는 것, 대출 한도 규제 완화, 지하철 노선 보완 등 그것이 실현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고민하고 나서서 쓴소리를 한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주변에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서 투덜거리기만 하는 사람을 보면 피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조목 조목 따져들고 대체할 의견을 제시함으로 그 불만이 정당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 평범한 직장인이 이런 거시적인 안목과 지식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중간에 들어간 영화와 드라마의 대사를 인용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능력에 또 한 번 놀랐다.




여느 부동산 책에서와 같이 서울·수도권에 집을 사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서운함을 느꼈지만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 안에서 겪은 바를 말할 수밖에 없으니 이해한다. 그동안의 내가 부동산 책에서 느낀 갈증은 서울·수도권에 집중된 입지 설명과 투자 결과물들밖에 볼 수 없고 투자를 재촉하는 통에 마음만 급한 것에서 오는 것이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나의 갈증을 완전히 해소하진 못했지만 다른 결의 부동산 책을 읽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5년간의 부동산 정책으로 분노하고, 억울하고, 체념했던 이들에게는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한 속에 청량함을 더해주는 사이다 같은 책이 될 것이고 나처럼 전혀 무지했던 이들에게는 정책 하나하나에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내가 살고 싶은 번듯한 내 집 하나 마련해야 하는 게 왜 중요한지도 알 수 있게 될 것 같다.


난 정치 성향이 짙은 사람이 아니라서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정치 성향이 다르신 분들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 나온 부동산 관련 책 중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될 것 같은 책이다.


📖 책키라웃과 크레파스북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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