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평점 :
🌟 이 책은 #비채 @drviche 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 혐오의 언어를 지나,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
💡잊히는 이들의 무대는 언제나 조용했다
무대가 꺼지고 난 뒤에도 배우는 존재한다.
관객의 박수가 멈춘 자리에서 그녀는 삶을 연기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장면들, 식물에 물을 주는 일, 집에 들어와 불을 켜는 손길, 그런 자잘한 일상 속에서 여전히 자신을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대사조차 줄어드는 현실.
그녀는 그걸 잃어버린다기보다 빼앗긴다고 느꼈다.
여성의 나이듦은 생존의 무대에서 퇴장 신호가 된다.
주어진 역할조차 불투명해질 때, 그녀는 묻는다.
왜 나는 이제 이 자리에 설 수 없는지, 그리고 왜 이 세상은 여성을 나이와 동시에 퇴장시키는지를.
💡말할 수 없는 밤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그녀는 누구보다 말이 많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밤부터인가, 말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에게 소리를 지르면 히스테릭한 여자가 되었고, 싫은 표정을 지으면 직업의식이 없다는 공격을 받았다.
그 모든 위협은 직설적으로 폭력적이지 않았다.
대신 은근하고 조용했다. 폭력은 그렇게 온다.
마치 습기처럼, 공기 속에 섞여 스며든다.
말할 수 없는 공포가 가장 무섭다.
누구도 듣지 않으리란 확신 속에서, 그녀는 침묵을 택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그녀를 잠재우지 않았다.
오히려 고요함은 가슴을 죄었고, 수면 위로 진실이 올라올 때마다, 그녀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되었다.
침묵은 끝나야만 했다.
💡당신의 관심이 만든 혐오
누군가는 대중의 관심을 기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관심이 특정한 방식으로 소비될 때, 그것은 혐오가 된다.
한 문장, 한 장면, 한 인터뷰의 일부만 떼어내어 ‘여성’ 이라는 이유로 공격하는 사회.
그녀는 미투의 얼굴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가 아닌, 그녀만을 응시했다.
그녀의 말은 곧 도발로 읽혔고, 대화는 이내 편 가르기로 변질됐다.
연대는 조롱이 되었고, 진실은 파묻혔다.
그녀는 한순간 악인이 되었고, 다음 순간 피해자로 재현됐다.
그리고 이제는 조용히 지워지고 있다.
그 모든 구조 속에서, 그녀는 말한다.
우리를 지우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그 자체라고.
💡우리는 끝내 함께 살아야 하니까
혐오로 가득 찬 시대에 연대가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그래서 더 필요하다” 고 답할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연대는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고통이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단단한 장치, 바로 ‘인정’ 이다.
당신이 당신이듯, 나 역시 나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분열된 채 살아왔고, 자신의 매력이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지 않도록 버텨 왔다.
그녀의 삶은 불완전했고, 그 안에는 분노와 슬픔, 유머와 절망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끝내 그 모든 것을 안고 살아야 할 이 세상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혐오의 언어를 넘어,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은 서로를 ‘인정하는’ 자리라고.
📖서평 요약
어떤 말은 분노보다 슬픔에 가까웠다.
침묵과 고립, 분열과 삭제의 경험이 쌓이고 쌓여 드디어 하나의 목소리가 되었다.
낡은 시선과 혐오의 말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자기답게 존재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었다.
비틀리더라도 꺾이지 않는 말.
그 말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