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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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서 무섭고 두려운 건 건강 문제도 있지만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그저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사회적 무쓸모의 카테고리로 분류된다는 두려움이다.

콜로니 운영사 측은 공식적 직업이 없는 노인들의 무쓸모를 이유로 이주 처리 비용 조차 청구하며, 오필리아를 콜로니에 두고 가든 데리고 가든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쓸모 없어? 지금 나를 쓸모없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공식적인 직업 없이 정원과 집을 가꾸고 요리를 거의 도맡아 한다는 이유로?(34p)

70대 할머니 오필리아는 콜로니가 소개될 때 혼자 남아 남은 인생을 눈치 보지 않고 실컷 죽겠다 다짐하며,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나, 혼자 만의 시간을 누리던 그녀에게 스콜이 지나간 어느 날, 괴동물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괴동물이 흔히 SF에서 보던 무섭고 기괴한 괴물들이 아니다. 사람과 다르게 생겼을 뿐, 그들도 나름의 공동체 운영 방식이 있고 의사소통과 감정의 교류는 인간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필리아가 괴동물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며 언어를 가르치는 방식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마치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아이를 키우듯 하나하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오필리아는 영락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내 이름은 자가주'라는 그림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모습의 아들을 대하는 부모처럼 오필리아에게 괴동물들은 그저 겉모습만 다르다 뿐 천방지축 아이들이다.

책의 중간 중간에 괴동물(종족)편에서 서술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들의 시선과 오필리아의 시선을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괴동물들은 인간과 달리 🔖오필리아에 대해 지켜볼 가치가, 배울 가치가 있다. (190p) 판단을 내린다.

🔖지금은 내 괴동물들이 내가 정한 한계를 존중해, 나를 존중해 (1231p)

괴동물은 오필리아의 모든 행동과 경험을 존중해 그녀에게 임신한 괴동물의 출산과 육아를 돕는 둥지수호자 역할을 부탁한다. 우여곡절 끝에 출산 과정에 동참하며 오필리아가 느꼈던 감정은 종을 뛰어넘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들과 느낌들이 소환된다. (304p)

지식은 뛰어나지만 지혜가 없는 사람들 (탐사선의 학자들), 그들은 지식의 우월함을 앞세워 못 배우고 늙어 생각이 느린 사람들을 폄하하고 무시하지만, 인생의 문제들이 늘 지식으로만 풀리던가. 괴동물과의 순조로운 상생과 협약은 오필리아라는 한 늙은 여인이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으리라.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지식으로 괴동물을 판단하고 폄하할 뿐.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시도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지식의 결과물에 대한 집착만 가득하다.

늙었지만 당당한 오필리아, 가끔 툭툭 내뱉는 그녀만의 유머 스타일도 좋고 시니컬한 말투도 좋다. 무엇보다도 괴동물에게 따뜻하게 내미는 그녀의 앙상한 손이 좋다. 나는 그녀가 그녀의 바람대로 인생을 마무리하게 돼 넘 기쁘다. 🥲

🔖좋은 둥지수호자는, 파란 망토는 설명했다, 새끼들이 모든 것에 관해 최대한 많이 배우기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기를, ㅡ열광하기를 ㅡ바란다. 나쁜 둥지수호자는 새끼들이 계속 같은 것에 만족하게 만들어 그들이 안온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368p)

*푸른숲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개인적 감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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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집
황선미 지음, 전지나 그림 / 시공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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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잠만 자는 하숙집 같은 곳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는 스위트 홈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영혼의 무덤 같은 곳이기도 할 것이다. 나에게 집이란.

과거에는 제일 크고 멋졌지만, 모진 세월을 겪으면서 쓰레기장 수준의 악취를 풍기며 폐가가 돼버려 동네에서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마당에 큰 감나무가 있는 오래된 집이 있다. 동네가 개발되면서 아파트와 큰 건물들이 들어섰고 이 집과 방앗간만이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남은 과거의 흔적이다.

고집스럽게 집을 떠나지 않았던 집주인인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방치된 감나무집은 동네 문제아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고, 어린 자매가 엄마에 의해 몰래 버려지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집주인의 아들이 돌아와 집을 정리하고 고치기 시작하면서 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던 집은 동네 문제아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아들과 손자의 상처난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주고, 무관심했던 동네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열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황선미 작가는 이 책에서 집이란,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또는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내도록 기다리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 긴 세월 사람들의 들락거림과 집의 모진 변화 과정을 다 지켜보았을 감나무는 화재에도 끄떡없었던 걸 보니, 다시 돌아올 이들을 위한 노란 손수건이었나 싶기도 하다.

낭독하기 좋은 문장들이어서 청소년뿐만 아니라 초등 아이들에게 소리내 읽어주어도 참 좋을 책같다.

🔖가지마요
.....여기 있어요, 나랑. 집에는 아버지가 있어야 되잖아.

*시공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

#기다리는집 #황선미 #시공사
#서평 #독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한달한권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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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아이
안녕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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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과, 나를 울려버린 그림책

역시 안녕달님이다.
순수하고 맑은 감정을, 표정을, 느낌을 단순한 선으로 이토록 잘 살리는 그림작가가 있을까.

아이는 커서
매년 눈이 오는 겨울이 찾아오면,
온 마음 다해서 사랑했던 눈아이를,
달콤한 귓속말에 귀가 녹아도 자지러지게 웃고,
아이의 따뜻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던,
자신이 사라지는 걸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눈아이의 마음을 다시 한번 품으며,
따뜻한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마음을 마음으로 대할 줄 아는,
눈아이 같은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가슴 찡한 몇몇 장면들은 이 겨우내 내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 왜 울어?
.....⛄ 따뜻해서.

🔖⛄내가 더러운 물이 되어도 우리는 친구야?
.....🥲 응

*가제본을 창비(@changbi_insta )로부터 제공 받았습니다.

#추천그림책 #아름다운그림책 #인생그림책
#눈아이 ⛄ #안녕달 #창비 #창비그림책
#그림책 #독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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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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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행성이 죽어가자 지구로 피신해 온 외계인 누브족 무리. 그들은 식물을 매개로 태어나고 인간처럼 살아간다. 누브족은 외양으로는 인간과 구분되기 힘들지만, 그들에겐 식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선연산 아래 브로멜리아드 화원은 인간이 죽여 놓은 땅 위에 외계인 지모에 의해 재건된 생명의 땅이다. 이곳에서 나인이 태어났다.

이 책은 외계인인 누브족이지만 인간 사회에 스며들어 살던 나인이라는 17세 소녀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고, 때마침 박원우라는 학교 선배가 실종된 사건의 실마리를 선연산 식물들과 금옥의 영혼이 스며든 나무의 도움으로 찾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누브족은 공상과학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외계인처럼 무섭게 생기지도 않았고, 지구를 위협하지도 않았다. 몰래 들어온 지구에서 인간들이 정해 둔 규칙에 따라 느긋하게 질서를 지키며 산다. 땅과 식물의 기운을 받아 살게 된 것의 보답으로 다시 식물들에게 에너지로 돌려준다.

그러나, 인간의 법칙에 관여하지 않는 원칙을 깨고 나인과 승택은 지구인 친구들과 박원우 사건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인간이 만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누브족 중에서 가장 힘이 센 나인의 기운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방향으로 향해 있다. 그런 기운에 승택도 승복한다.

박원우의 실종에 관계된 권도현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특히, 나인이 식물들과 나무들과 접신하면서 펼쳐지는 장면들과 권도현의 방을 묘사하는 장면들은 정말 압권이다. 시각적 묘사가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실감 났다.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버리는 것'은 지킨다는 것 자체를 전복시키는 무서운 행동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 가을 늦은 밤, 조용한 시간에 책 첫장을 펼치면 새벽 푸른빛과 함께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장을 만나게 될 것이다. 🥲

🔖우연. 핑계로 쓰기는 좋지만 실상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 치사한 단어 (132p)

🔖피가 극도로 식으면 어는점에서 굳는다. 끓는점의 폭발은 분노와 모멸이고 어는점의 폭발은 상처와 서글픔같다. (171p)

🔖사랑을 지속하려면 ..그 말에 담긴 온도와 흐름까지 같아야 한다. 관계를 망치는 건 사랑과 외로움. 그 두 가지다.(196p)

🔖유지한다는 건 지킨다는 것이고 동시에 버린다는 것이다. (216p)

🔖그래서 네 이름이 나인이야. 내게서 난 싹 아홉 개 중 가장 마지막에 핀 아홉 번째. 제일 강했어 (361p)

🔖점이 지대는 죗값을 무를 수 있는 유효 기간 같은 거야...그 영역을 넘어 가면 벌을 받아도 그걸 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388p)

🔖그러니까 나인은, 기적이라는 뜻이야. (477p)

*창비로부터 가제본을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나인 #천선란 #창비
#k영어덜트 #소설y #판타지소설추천
#서평 #독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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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정치적 동물의 길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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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실망을 반복하며, 정치는 혐오스럽고 누가 되든 다 마찬가지라는 무논리로 자위하며, 정치로부터 나 자신이 멀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긴다.

내년엔 대선이 있고, 그 파이널을 1등으로 통과하기 위해 선수로 나온 사람들은 매일 서로를 헐뜯고, 자신의 무지와 잘못을 모르는 척 오리발을 내밀고, 도대체가 국민들을 개똥으로도 안 보는 것인가 싶어 격앙돼 있으면서도 역시 정치 섹션, 정치뉴스는 무시가 답이다 결론을 내린 요즘, 김영민 교수님의 이 책은 내 뒤통수를 후려치며 '진짜 그렇게 사는 게 마음이 편해?'라며 묻는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 인생은 참 쉽지 않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절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란 말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삶 속에 '정치'라는 것이 숙명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 세상에 혼자 그냥 잘 되는 일은 없다. 잘되고 있다면, 누군가 정념과 에너지와 인생을 갈아 넣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갈아 넣을까 고민하는 데 정치가 있다. 

저자는, 인간은 다 착하지 않고, 답이 없는 세상에서 뜨지 않고 버티며, 타인과 더불어 살고, 세상일의 복잡성을 인정하며, 유능한 사람이라도 초심은 영원하지 않고, 청렴한 사람이라도 무능력자가 될 수 있고, 당연해 보이는 것이 더 이상 당연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들을 인정하는 데 정치가 있다고 말한다.
 
🔖미래를 고려하지 않으며,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장기적인 삶을 꿈꿀 수 있는 안전망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한다. 보다 나은 선택지를 남겨두고자 고민하는데 정치가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걸 인정하는가, 그럼 지금의 나는 과연 정치적 동물로서 살아가고 있나?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다. 결국, 우리를 한없이 침잠하게 만드는 귀찮음(인류를 멸종시킬 수도 있는!)과 무관심을 벗어던지고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바다에 뛰어들어 변신을 꿈꿔야 한다. 그 변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투표라는 것.  인간다운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보다 더 참단한 것은 없다.

🔖민심이 설문을 만든 게 아니라, 설문지가 민심을 만들었다고, 민심의 창조자는 단순하게 民이 아니다.

이 책은, 아주 시의적절한 책이었다.

*가제본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인간으로사는일은하나의문제입니다 #김영민 #어크로스 #가제본서평단 #독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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