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친화력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제공
.
'괴테의 작품 중에 가장 난해하고 다의적인 작품'이며 '괴테 자신이 최고의 책이라고 말한', <선택적 친화력>은 네 남녀 사이의 비극을 다룬 소설이다.

선택적 친화력이라는 화학 용어를 인간관계에 적용시켜 제도를 넘나드는 사랑의 본능과 관계의 생성과 소멸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불륜으로 야기된 파국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들의 행동을 도덕적 잣대로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본능에 끌려 행동하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샤를로테와 에두아르트는 한때 서로 진심으로 사랑을 했으나 부모의 사정으로 헤어지게 되고 각자 결혼을 하게 된다.  세월이 흐른 후 홀로된 이들은 다시 만나 재혼을 하지만 결혼 생활은 생각보다 단조롭다.  이들은 사를로테의 양녀 오틸리에와 에두아르트의 친구 대위를 불러 함께 지내며 일상에 찾아올 변화를 기대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  당신에 대한 나의 느낌이 별로이고,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요."(18p) 샤를로테의 이 불길한 예감은 이들 네 명이 파국으로 가는 열차에 올라탔음을 암시한다.  오틸리에를 보자 한눈에 사랑에 빠진 에두아르트는 샤를로테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다.  유부남인 그의 뻔뻔하고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불륜 행각은 한때 유행했던 <부부의 세계>의 명대사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를 외쳤던 배우를 떠올리게 한다. 샤를로테 또한 대위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에두아르트처럼 사랑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자신이 유부녀라는 신분을 환기하며 서서히 감정을 절제하려고 한다.  

오틸리에는 고아인 자신을 거둬준 엄마 친구인 샤를로테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으면서도 에두아르트에 대한 사랑도 뿌리치지 못한다.  가난한 오틸리에와 철없이 부유하게 자란 에두아르트는 서로 대립되는 특성들을 가졌으나 이러한 특성들이 사랑을 매개로 더 단단한 내밀한 결합을 만든다.  오틸리에를 남에게 보내느니 차라리 자신이 집을 나가거나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에두아르트는 즉흥적이고 본능에만 충실한 인간이다. 오틸리에와의 사랑을 운명이라며 상황을 자신에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모습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번개를 맞은 것처럼 한눈에 반한 사랑을 위해 자신을 그냥 내던져버리는 에두아르트, 그가 법적인 부인 샤를로테에게 하는 행동들은 도대체 이해불가다.  결혼한 유부남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거? 그거 죄 맞지. 그러고 싶으면 부인과 합의를 하고 제대로 이혼하던가. 샤를로테도 마찬가지다. 에두아르트보단 짧았지만 그녀 역시 불륜을 저지른 건 마찬가지다. 

에두아르트가 집을 나간 후 샤를로테는 출산을 하는데 아이의 얼굴이 오틸리에와 대위를 빼다 박았다.  이는 샤를로테가 에두아르트와 잠자리를 함께 했을 때 각자의 머릿속으론 서로 다른 사람을 떠올렸던 것이다. 아이의 얼굴은 신의 벌인 듯 악마의 선물인 듯 기괴하게 느껴진다.  소설 후반으로 가면서 연달아 이어지는 끔찍한 사건과 세 명의 죽음을 통해 파국은 끝을 보게 된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사회적인 약속이다. 인류가 진화하면서 제도화하지 않으면 파국이 될 수밖에 없을 걸 알았기에 만든 것이 아닌가.  사랑이라는 것은 이성으로 제어가 잘되지 않은 본능에 가장 충실한 감정이니 말이다.

괴테는 봉건적 사회 관습 안에서 지독한 도덕주의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러나 불륜에서 지나친 도덕이라는 게 있을 수 있나.  당대든 지금이든 논란이 되는 설정임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인간은 소설을 통해서 우리가 겪지 못하는, 또는 해서는 안 될 금기에 도전해 보는 것이 아닌가. 그럼으로써 현실을 성찰해 보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인간 삶을 꿰뚫는 문장들을 많이 발견했다. 괴테의 인간, 삶에 대한 성찰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필사를 하며 읽으니 곱씹게 돼서 좋았다.

🔖삶이라는 건 자의적이야....삶에는 종종 비논리적인 모순이 필요하며, 바로 그것이 삶이 사랑스럽고 또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거지. (48p)

🔖우리는 이처럼 죽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언제나 작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들을 관심을 가지고 눈앞에 떠올려 보아야 합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서로를 찾고, 서로를 끌어당기고, 붙잡고, 파괴하고, 삼키고, 먹어 치우며, 그러고 나서는 가장 내밀한 결합으로부터 어떻게 다시 예상치 못한 새롭고 갱신된 형태로 등장하는지를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공도서
.
모녀관계는 자극적이다.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날카롭게 건드리다가도 서로 껴안고 사랑한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비비언 고닉은 '사나운 애착'이라고도 했다. 딸이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나이가 되면 모녀관계에는 폭풍이 일어나기도 한다.

남편은 대학교수이고 자신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 파리 유학을 다녀와 대학 강사로 일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중산층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는 미스키. 그런 그녀는 언제부터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녀는 이 행복하지 않은 느낌의 원기억을 떠올린다. 엄마가 외간 남자에 눈이 팔리고 아픈 아빠가 친정집에 내버려지게 된 무렵부터다.

보바리즘에 빠진 듯 평생 사치한 생활을 하며 남자를 밝히고 딸들을 마치 겉치장의 일부로 여기며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듯한 엄마는 큰딸의 성공적인 결혼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꿈을 투영시키며 대리만족한다. 이 와중에 둘째 딸은 불공평의 희생양이 되고 엄마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사실, 큰 딸도 작은 딸도 엄마의 욕심으로 행복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언니는 언니대로 '축복받은 주부'를 연기하는 인생을 사는듯 하다. 엄마가 다 늙어 골절상을 입으면서 큰딸보다 작은 딸 미스키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은 기억이 없는 미스키가 힘겹게 엄마 병수발을 들면서 아빠의 죽음과 엄마의 뻔뻔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빨리 엄마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고 장례를 치른 후, 그녀는 엄마의 인생과 자신의 억눌렸던 인생을 되돌아본다. 미스키는 엄마와 남편에게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엄마 장례 후, 여행을 떠난 곳에 머물며 서서히 각성하게 된다. 남편 데스오의 외도를 받아들이고 혼자 이혼을 결정하고 앞날을 계획한다. 그러면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던 엄마를 용서하게 된다.

크나큰 사건이나 반전이 없음에도 500쪽이 넘는 이 소설은 미스키가 엄마라는 굴레와 그로 인한 잘못된 선택을 하며 살았왔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기까지의 감정의 변화들이 섬세하게 묘사돼 있다. 엄마로부터 받은 상당한 돈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것이 미스키가 받은 더 가치있는 유산일 것이다.

딸 둘을 키우면서 들었던 여러 가지 감정들과 나의 욕심들이 떠오르며 나와 딸들의 관계가 어떤 방향과 형태를 가져야 할지를 내내 생각하며 읽었다. 엄마라는 이름이 가진 양면의 모습, 그 사이에서 딸은 때론 혼란스럽다. 딸을 위한 것이라고 행하는 모든 것이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엄마는 알아야만 할 것이다. 엄마 자신이 겪었던 것처럼.

🔖미쓰키도 어머니가 죽어주였으면 싶었다.어머니 자신의 죽고 싶은 욕망보다 그야말로 몇십 배나 더 어머니의 죽음을 오랫동안 바라왔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며 계속 노력했고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어왔다. 앞으로도 그런 상태를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어머니에게는 용서를 구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 미쓰키가 자신의 죽음을 내내 바랐다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알면서도 딸을 용서했다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처럼 어머니답게 아주 제멋대로 말하면서- 그처럼 어머니답게 아주 제멋대로 말함으로써 어머니도 딸의 용서를 구했을 것이다. 미쓰키 자신이 어느새 그런 어머니를 용서했다. 생각건대 간호사가 어머니의 검은 눈울 감겨주었을 때 이미 어머니를 용서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벚꽃은, 언젠가 미쓰키도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게 될 벚꽃이었다.

#어머니의유산 #미즈무라미나에 #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최애에게
류시은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다름은 각자의 경험에 기인할텐데 나는 류시은 작가의 이 소설을 읽으며 기존 나의 사랑의 의미를 어떻게 확장시켜 나갈지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경계에서
미카이아 존슨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공도서

멀티버스는 꽤 매력적인 이론이라 sf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다루는 소재가 됐다.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무수한 평행 우주 속에서도 존재한다. 환경이나 나의 선택에 따라 평행 우주 속에서의 나는 닮은 듯 다른 삶을 산다. 천재 애덤 보슈는 10대에 이 경계를 넘나드는 비밀을 발견했고 횡단자들을 고용해서 해치를 통해 세상의 경계를 넘나들도록 했다. 횡단자들은 다른 세계에서의 자신이 죽어야만 그 세계에 이동할 수 있다.

이 세상은 부자 도시인 와일리시티와 가난한 황무지 도시인 애시타운으로 나뉘어 있다. 주인공 카라멘타는 애시타운 출신 횡단자 중의 한 명이고 그녀는 와일리시티 시민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 그녀가 세상의 경계를 넘나들다 애덤 보슈에 관한 커다란 비밀을 알게 되고 세상을 바로 잡고자한다. 이 책은 특권을 거머쥔 이가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 위한 계획에는 인간의 존엄성이나 가치는 쉽게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것을 맞설 수 있는 건 개인이 아니라 연대의 힘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평행 우주 속의 카라와 연관된 다양한 인물들이 드러나며 스토리는 복잡한 듯 보이기도 하다. 현재의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다른 평행 우주를 이용하는 것은 조금 불편한 지점이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했던 카라의 의도는 현재가 중요하기 때문인가. 다만 책을 읽으며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무수한 나들도 과연 '나'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계속하게 됐다. 자신의 정체성에 흔들렸던 주인공 카라는 다양한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좀 더 성장하고 성숙해지게 되는 것 같다.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지만 몇 번의 반전이 나오고,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문장들은 가독성을 높인다. 그러나, 많은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소 매끈하지 못한 전개와 필요 이상 자극적인 장면들과 설정은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토록 불행한 우리는 왜 그렇게 오래 사는 것에 집착할까? 오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탈한 삶은 축복이 아니다. 편안하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때때로 편히 살려는 바람에 비참해지기도 한다. (23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공도서
.
서문에서 '감각이 우리를 과거와 밀접하게 이어준다'라는 다이앤 애커먼의 말은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분명히 다가온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며 삶의 결을 회복하고 여섯 감각이 펼치는 축제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이다.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의 과학적 사실, 사회. 문화에 따른 다양성과 이러한 감각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자극을 받은 감각이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감각은 예술가들에게서 주로 발견된다. 이런 여섯 감각 안에서 인간의 정신과 행동의 비밀들이 드러나고 세상 만물을 움직이는 규칙들과 의미를 발견하면서 인간이 자연과 세계와 우주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한다. '우리의 감각을 다른 종의 감각의 범위 안에 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로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 마음과 감각이 작용하는 법을 배워야 함을, 내가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을 감사하며 최대한 누리는 것, 그것이 삶을 사랑하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과학적, 역사적, 철학적인 내용을 뛰어넘어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무엇보다 다이앤 애커먼이 이것들을 풀어낸, 그녀의 통찰이 돋보이는 멋진 문장들에 매료되었다.


🔖가장 멋진 일, 삶과의 가장 멋진 연애는 가능한 한 다양하게 사는 것, 힘에 넘치는 순종의 말처럼 호기심을 간직하고 매일 햇빛이 비치는 산등성이를 전속력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위험이 없다면, 그 모든 넓이와 계곡과 봉우리와 우회로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영토는 무미건조할 것이고, 일생에 매력적인 지형은 전혀 없이 오직 끝없는 거리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것은 신비에서 시작되었고 신비로 끝날 테지만, 그 사이에는 얼마나 거칠고 아름다운 땅이 가로놓여 있는가. (528p)

👃냄새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잠자는 감각을 일깨우고, 욕구를 채워주고, 자아상을 규정하고, 매혹의 가마솥을 휘젓고, 위험을 경고하며, 유혹에 무릎 꿇게 하고, 종교적인 열정에 부채질하고, 이곳을 천국으로 변화시키고, 스타일을 만들어주며 주며, 쾌락에 젖게 해준다.(74p)

👁 과학과 예술은 습관적으로 우리의 잠을 깨우고, 불을 모두 켜고, 우리의 목덜미를 붙잡고 이걸 좀 보라니까!라고 말한다. 인생을 그토록 쉽게 놓쳐버리듯, 우리는 복잡하게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앞만 보고 뜀박질하는 경주마처럼, 자신이 가는 길 위에 있지 않은 풍경은 놓쳐버린다. 예컨데 길가에 모여 있는 색색의 군중이라든가, 바퀴 자국이 깊게 파인 길, 항상 존재하고 항상 변화하는 머리 위의 영원한 장관 壯觀, 하늘을. (40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