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초록 천막 2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1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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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장편 소설 '커다란 초록 천막'은 스탈린 사후 격동기 소련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인생에 대한 통찰이며, 문학과 음악을 향한 작가의 순애보이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됐던 21세기 러시아의 가장 저명한 작가이다.

출신이 다른 6명의 주인공(남자 친구들인 일리아, 사냐, 미하와 여자 친구들인 올가, 갈랴, 타마라)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그물처럼 연결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생을 연주한다. 죽기 전까지 우리는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단할 수 없다. 카덴차로 마무리되는 인생이 있다면 끝내 마무리하지 못한 미완성 곡으로 남겨지는 인생도 있다.

가난한 학창 시절, 러문애(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모임)를 이끈 문학 선생님인 빅토르 율리예비치의 열정적인 가르침은 아이들 인생에 커다란 자양분이 된다. 그는 이러한 가르침이 '삶에서 혐오스럽거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등에 대항하고도 남을 백신을 맞는 것이라고 확신했다.(194p)'

당시, 문학이 사상교육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국가는 철저하게 문학을 통제.검열 하지만 사람들은 검열을 피해 자가 출판물을 만들기도 하고 비밀리에 유통하기도 한다. 일리야는 이런 사마즈다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누구보다 시를 사랑한 미하는 고달픈 인생을 위대한 작가들의 시로 위로받는다. 귀로 듣는 문학인 음악을 사랑한 사냐도 인생의 고비마다 음악으로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인생을 발목 잡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것은 당시 통제와 검열의 잔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대와 운명적 만남이 삶 속에서 일으키는 다양한 스파크를 보다보면 인생 앞에 겸손해지게 된다. 어떤 스파크는 인생을 휘몰아치게도 한다. 10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 속에서 작가는 '비인간적인 시대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것이 당시에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또한, 삶의 모습은 다 달라도 죽음은 누구에게든 찾아오며, 죽으며 들어가는 초록 천막 안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있다는 것을.


#은행나무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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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도르르 마법 병원 밤이랑 달이랑 6
노인경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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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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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아이들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그 시절 아이들이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였는지 깨닫게 된다. 불쑥 내뱉는 말 한마디가 웬만한 시 못지않게 아름다웠고 놀이에서 하는 말들은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놀이 중 드러나는 자신의 감정과 경험에서 나온 말들을 들을 때면 한 번씩 나의 육아태도를 돌아보기도 했다.

1.훌훌 도르르 마법 정원🩺🏥

밤이랑 달이는 힘이 없어 보이고, 말하기 싫고, 당근을 안 먹는다고 혼나거나, 늦잠을 자서 소풍을 못 간 동물 친구들의 마음을 잘 안다. 아마도 밤이랑 달이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동물 친구들이 아픈 걸 지나치지 못하고 치료해 주려고한다. 의사 선생님으로 변신한 아이들의 치료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밥을 잘 먹었는지, 똥을 잘 쌌는지 묻고, 배도 두드려 본다. 아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해도 괜찮다. 밤이랑 달이에겐 무엇이든 고칠 수 있는 두루마리 휴지가 있기 때문이다. 힘이 없어 보이는 코끼리의 코를 둘둘 말아주고, 말하기 싫은 호랑이가 휴지탑을 뻥차게 해주고, 혼나고 실망한 강아지와 새와는 신나게 놀아준다. 어느새 동물 친구들은 다 나은 것 같다. 밤이랑 달이는 신나게 노는 것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잘 아는 의사 선생님들이다. 나을 거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진 이 꼬마 선생님들에게 치료를 받으면 낫지 못할 병이 없을 것 같다.

2. 꽁꽁 사르르 비밀의 방 🍦🧊

아이들은 신나는 모험가이고 모험을 사랑해서 스스로 모험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밤이랑 달이는 한밤중에 냉동실 아이스크림을 구출하는 모험을 떠난다. (엄마에게 혼날 걸 생각하면 이건 확실한 모험이다!) 한밤중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또 먹고 싶어 아이스크림을 찾아 냉동실을 샅샅이 뒤지며 모험을 떠나지만 빈손이다. 아쉬운 마음에 내일은 꼭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잠자리에 든다. (밤이가 냉동실 아이스크림을 구해주자고 할 때 소극적이던 누나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서는 더 먹고 싶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진짜 너무 귀엽다.)

노인경 작가님의 밤이랑 달이랑 시리즈 속 아이들 세계를 들여 보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세계 속에서 신나게 놀고 나면 내일을 긍정적으로 희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그 희망 속에서 아이들은 건강하게 한 뼘씩 자라게 된다는 믿음이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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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의 미친 여자들 - 여성 잔혹사에 맞선 우리 고전 속 여성 영웅 열전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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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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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웅(雄)이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이자 수컷을 뜻하는 말이란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고전적인 영웅 이야기는 철저한 남성 중심의 서사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부장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20p)

영웅 하면 떠올리는 인물들이 있다. 떠올리는 인물들은 대부분 남성들이고 그들이 펼치는 활약상은 비슷하다. 여성 영웅이라고 할 때 '이질적인 존재, 딱 들어맞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남성중심의 영웅서사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회나 제도에 의해 약자가 될 수밖에 없고 차별을 겪는 여성들이 운명에 휩쓸리기보다는 '자기 운명의 주체가 되어 용기를 내 세상에 걸음을 내딛는 옛이야기 속 여성 영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거나 세상 끝을 향해 모험을 떠나지 않았어도 그 자체로 영웅이라 불릴 수 있다.

공주로 태어났지만 버림받고 시련과 모험 끝에 죽은 아버지를 살려내고 신으로 정좌한 <바리데기> 이야기는 우리 이야기 속 여러 여성 주인공들의 이야기의 기본 토대다. '출발-입문-귀환'이라는 영웅의 여정을 거치는 바리데기 이야기에서 우리나라의 옛이야기 속 여성 인물들이 어떻게 변주되고 연관되는지 저자는 이야기한다.

1.여성 영웅에서 중요한 어머니, 또는 이에 준하는 이들_
<숙향전>의 숙향은 가부장제에 굴복한 친어머니에 의해 버림받지만 이후 수양어머니와 여신어머니에 의해 보호받고 마고할미(어머니 여신)의 인도를 받아 모험을 마친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화해하고 이로서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간다.

2.아버지라는 숙명적 비극, 자식보다는 가문이 소중한_
여성 영웅의 아버지들은 대게 딸들에게 관심이 없고 오히려 시련을 준다. '자식 사랑'으로 포장된 무능한 <심청전>의 심봉사, <장화홍련전>,<콩쥐팥쥐전>에는 계모보다 무서운 무관심한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의 안일한 시각은 가정폭력, 아동학대로 이어지며, 불화와 잘못을 계모의 몫으로 전가한다. 여성이 의지할 곳은 자궁가족 밖에는 없다.

3. 결혼의 족쇄와 사랑으로 낡은 세계에 균열을_
<사씨남정기>와 <숙영낭자전>을 통해 혹독한 시집살이와 가부장제가 얼마나 여성의 인격을 말살하는지 보여준다. 미혼모가 된 <당금애기>의 당금은 스스로 감당한 시련과 모험으로 삼신이 된다. 여성들은 죽어 신이 되어도 여성들을 돌보는 존재가 된다. 가부장이 생사여탈권을 쥔 사회에서 여성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대안 중 하나는 사랑이다. 운명에 도전한 궁녀의 사랑을 보여주는 <운영전>,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주는 <춘향전>의 춘향이 있다. '계급의 벽에 균열을 내는 혁명의 이야기다.'

4. 여성 영웅의 발전_
<박씨전>의 박씨는 명예남성이길 거부한 여성 영웅이었다. 남성보다 더 뛰어난 지혜로 가정을 이끌고 그 뜻을 이어갈 제자를 길렀다. 사회의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남장을 한 홍계월, 남장을 하고 나라를 구했지만 가정을 벗어나지 못한 영웅 <이학사전>의 이현경, 레즈비언과 동성의 대안가정을 상상한 <방한림전>을 통해 여성 여웅이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여성 여웅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부장적인 사회와 차별 자체가 고난인 사회에서 여성은 태어나면서 모험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진짜 자신들을 찾아가는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다른 여성들을 구하는 손짓이다. 남성들이 세계를 구하는 바깥일에 몰두해 있을 때, 여성 영웅들은 남성성의 세계를 뚫기 위해 끝없이 고군분투했다. 여성들은 나 자신을 먼저 찾아야 했기때문이다.

🔖여성 영웅의 경우, 아테나 여신처럼 어머니가 삭제된 '아버지의 딸'이 아닌 이상, 여성 영웅에게 더 중요한 이들은 어머니, 또는 어머니에 준하는 이다. 딸의 시련은 어머니의 상실에서 시작되고, 어머니에 준하는 존재들의 보호를 받아 성장하며, 어머니 여신의 인도를 받아 모험을 떠난다. 그리고 여신 어머니의 사랑과 가르침을 통해 성장해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딸은, 한때 자신이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그 어머니와 화해하고, 그 상처를 감싸준다. 상처받은 어린 딸은 이 과정을 통해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성장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자유]를 손에 넣는 것이다. (85p)

#규방의미친여자들 #전혜진 #여성영웅열전
#한겨레출판 #서평단 #독서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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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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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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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닌은 나보코프가 롤리타 이후 발표한 소설이다. 나보코프의 소설은 아직 접하지 않았고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을 읽을 때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2012, 을유문화사)를 읽은 게 다인 내가 그의 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작품이다.

미국으로 망명해 웬델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티모페이 프닌은 첫 장에서부터 우스꽝스럽게 등장한다. 강연장으로 가는 기차를 잘못 탄 해프닝을 시작으로 프닌의 외모는 우습고 행동은 어리숙하고 문법과 어휘가 오류투성이인 그의 미숙한 영어는 남들에겐 조롱감이다. "그가 미국 유머를 이해한다는 것은 행복할 때조차 불가능하다."

🔖그날 프닌이 어딘가에서 들었던(하지만 더 알아보고 싶지 않았던) 어떤 말이 이제야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짓누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저지른 불찰이나 우리에게 저질러진 무례한 언행이나 우리가 못 본 척 무시한 위험은이렇게 회상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고 짓누른다.(120p)

그가 러시아 문학작품을 읽으며 과거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는 모습이나, 전처의 부탁으로 전처의 아들에게 주기적으로 용돈을 보내고 그와 편지를 주고받고 그의 선물을 사는 모습, 소비에트 다큐 영화를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때때로 그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 부모님의 환각을 보는 프닌. 웬델에서 종신 재직권을 따지 못한 그가 결국 대학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초반 우스꽝스러워 조롱했던 프닌에게 연민의 감정이 든다.

7장에선 드디어 푸닌을 서술한 진짜 화자가 등장하고 프닌의 진짜 과거가 드러난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티푸스로 사망했으며, 그는 전쟁 중 통신병으로 복무했으며 적화된 지역을 탈출하고, 히틀러로 인해 프랑스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망명하기까지 그간 거쳐온 인생은 녹록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부인은 불륜남과 떠나 이혼까지 당했다.

프닌이라는 캐릭터는 웃기면서도 슬프다. 그의 행동이나 말이 어설프고 미덥지 못해도 그의 진실을 알게 되면 그를 조롱하거나 미워할 수 없다. 프닌을 읽고 생각해 보게 된다.우리가 사람을 판단하는데 우선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로 인해 진실은 가려지고 조롱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 않은지..희극 속에 감춰진 비극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지 않는지..프닌은 우리의 민낯을 드러낸다.

책을 읽으며 문법과 어휘에 오류가 많은 프닌의 말을 그대로 독자가 느끼도록 번역에 많이 애를 쓴 게 돋보인다. 그래서 일부 장면에선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틀니를 맞췄을 때, 빅터를 위해 축구공을 살 때, 운전면허 시험 볼 때....등) 초반 번역이 껄끄럽다 느낀 것은 그대로 그것이 프닌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프닌의 말이 그를 더욱 우습게 보이게 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기의 은밀한 슬픔을 그냥 좀 가지고 있게 내버려둘 것이지. 안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진짜로 소유한 것이 슬픔 말고 뭐가 있습니까?" (76p)

🔖프닌은 근엄한 소나무들 밑을 천천히 결었다. 하늘이 죽는 시간이었다. 그는 절대 군주 유형의 신은 믿지 않았다. 그는 막연하게나마 유령들의 민주주의를 믿었다. 죽은 존재들의 영혼들이 각총 위원회를 꾸리고 있지 않을까, 그들의 끝없는 회의가 살아 있는 존재들의 운명을 보살피고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었다. (2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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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초록 천막 1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0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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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격동기 러시아 사회와 그 흐름에 떠밀린 개개인의 삶이 직조한 커다란 초록 천막, 슬픔과 기쁨과 고통과 사랑 그리고 죽음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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