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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평점 :
1. 프롤로그(10-11쪽)
나는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오하이오의 (...) 나는 시궁창 같은 삶에서 허덕이며 살고 있었다.
문제) 힐빌리는 빈곤의 악순환, 가정 폭력과 학습된 무기력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내가 잠시라도 이웃에 살았거나 친척이거나 이곳에 부임한 교사라면 이들에게 계층 상승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2. 47~48쪽
할모의 증조할아버지가 20세기 초에 카운티 판사 후보로 출마했는데, 아들이자 할모의 할아버지인 틸든이 선거 당일 경쟁자의 가족을 살해하고서야 판사로 당선됐다. (...)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신문에서 이 섬뜩한 이야기를 읽자마자 밀려든 감정은 자랑스러움이었다. 우리 집안에서 『뉴욕타임스』에 이름을 올려본 적이 있는 다른 조상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제) 우리는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위인전이나 소설을 읽고 꿈을 꾸고 용기를 얻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매스컴에 오르는 인기 가수나 연예인을 따라다니고 그들과 동일시하며 그들의 일화에 일희일비합니다.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진 매체에서 나를 훌륭한 교사 혹은 성공한 주인공이라고 소개하고 취재를 해 주기를 원하는가요? 즉 인기인들처럼 나도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싶은가요, 아니면 조용히 살고 싶은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3. 73~74쪽
할보가 퇴근하고 돌아와 뜨끈한 저녁밥을 지어달라고 하면 할모는 뜨끈한 쓰레기 한 접시를 정성스레 내주곤 했다. (...) 할모는 할보의 술 취한 인생을 생지옥으로 만드는 데 몰두했던 것이다. (...) 빈말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할모는 차분히 차고로 가서 휘발유 통을 가져오더니 휘발유를 남편의 온몸에 붓고 불붙은 성냥을 그이 가슴팍에 떨어뜨렸다. 할보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자 열한 살짜리 딸이 재빨리 나서서 불을 꺼 아버지의 목숨을 구했다.
문제) 할모와 할보의 부부 싸움 이야기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나의 부부싸움(연인과의 싸움)은 어떻게 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이나 방법이 옳다고 보는가요?
4. 평생 무책임과 마약에 젖어 산 어머니와 살면서도 저자는 어떻게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6. 102쪽 3행 ∼
엄마와 린지 누나가 유치원으로 나를 데리러 와서는 앞으로는 아빠를 볼 수없을 거라고 말했던 9월 초의 어느날도 기억한다. 엄마와 누나는 아빠가 내 친권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슬픈 감정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6년동안 아버지는 내게 거의 유령같은 존재였다. 아빠에겐 새로운 아내와 두 명의 어린 자녀가 있었고 내 자리는 없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처음 느끼는 슬픈 감정은 친부와의 이별이었다. 많은 기억은 구체적으로 나지않지만 아름다운 산백과 말이 뛰노는 푸른 구릉지가 펼쳐진 켄턱키를 사랑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고 서술한다.
우리에게 일어났던 이런 슬프거나 기쁜 최초의 기억을 더듬어봅시다. 장소나 대상이든 가장 어릴 때라고 생각되는 기억을 말해봅시다.
7. 140쪽
할모는 ‘기성 종교’를 평할 때마다 ‘큰 소리로 영광을 외치는 사람들’이라고 끔찍이 싫어했다. 그런데도 할모는 여전히 도널드 아이손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를 비롯해 켄터키 잭슨의 몇몇 교회에 여윳돈을 기부하고 있었다. 할모의 논리로는 신은 결코 곁을 떠난 적이 없다. 할모의 신학은 단순했지만 교훈은 분명했다. 인생을 만만하게 산다는 것은 신이 허락한 재능을 낭비하는 것이므로 열심히 살아야한다. 기독교인의 의무를 다하며 가족을 돌봐야 했다. 용서를 실천해야 했다. 나는 결코 절망할 필요가 없었다.
142쪽 1∼4행 내가 할모에게 신이 우리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던 건 상황이 끔찍하더라도 믿음을 잃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다. 이 고통과 혼란이 곧 끝날 거라고 나를 안심시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문제) 열한번째 생일을 맞이하면서 두 번째 아버지를 잃고 밴스는 또다른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아이가 혼란을 겪고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적응하면서 제자리를 잡아간 것에는 할모의 종교관이 영향을 주었다고 보인다. 여기에서 기부하는 문화를 엿볼수 있는데 기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기부를 하고 있다면 어떤 성격의 기부를 하고 있는지요?
8. 166쪽 2행∼ 이날까지도 나는 누군가를 ‘필요할 때만 찾을 수’있다는 말을 부모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누나와 나는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되는 줄 알고 있었다. 얼리 때도 먹을 음식이 없거나 차가 고장나도 동움을 구하는 행동조차도 과하게 하면 안되는 사치로 알았다. 이런 경향을 없애주려고 할머와 할보가 문진애를 썼다. 가장 근접하게 성공했던 할보가 끝내 완벽하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만약 어렸을 때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대처했을까? 지금이 가치관과 연결하여 생각해 봅시다. 나는 굶더라도 혼자 해결하려고 참는 형,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형일까요?
9. 172쪽 나는 갈수록 더 복잡한 수학 문제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풀었던 날이 떠올랐다.
이런 기쁨을 겪어본 적이 있을까요? 자신이 어떤 면에서 도약하고 있다는 걸 느낀 기쁨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10. 205쪽 1행
새로운 환경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할모는 거의 몰랐다. 내가 말을 안 했으니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했다. (중략) 애초에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끔찍하다고, 전에는 누나가 곁에 있었고 언제든 할모 집으로 갈 수 있었던 덕분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는데 이제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차마 그런 내 용건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릴없이 친척들에게 사랑한다는 인사를 전해달라는 부탁만 하고 전화를 끊은 뒤, 텔레비전을 보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때만큼 외로운 적이 없었다.
3학년 중간부터 할모의 집이 있는 미들타운을 떠나 해마다 이사를 다니고, 엄마의 남자는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9학년 때는 그나마 함께 살던 린지 누나마저 결혼하여 함께 살지 않았으며, 켄아저씨와 그의 자녀 셋과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밴스는 너무 외로워 푸념이라도 늘어놓으려고 할모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할모의 전화 너머로 다른 친척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영락없는 명절 분위기에 밴스는 푸념마저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질문: 살아온 날들 중 여러분은 외로웠던 적이 있나요? 있다면 가장 외로웠을 적,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11. 217쪽 1행
가장 친한 친구들도 내가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걸 몰랐다. (중략) 누가 묻기라도 하면, 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으며 우리가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있노라고 거짓말을 했다. 할모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고등학생 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숨겼다는 게 지금까지도 후회로 남아 있다.
밴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이라고 여겨질만큼 소중한 할모에게 의지를 하면서도 할모의 여러 가지를 부끄러워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숨겼다는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질문: 삶의 여러 가지 갈래 중 여러분이 선택했던 길을 따라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고 봅니다. 그 여러 가지 선택 중 후회되는 선택이 있나요? 있다면 그 후회되는 선택은 무엇일까요?
12. 240쪽 15행 ~ 241쪽 마지막
할모와 함께 사는 집이 안겨준 평화로움 덕분에 나는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숙제를 할 수 있었다. 싸움이나 불안정함이 사라진 덕분에 학교 공부와 아르바이트에 집중할 수 있었다. (중략)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억 속의 내가 행복했다는 사실이다.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더 이상 두럽지 않았고, 다음 달에 지낼 곳이 어딘지도 알고 있었으며, 누구의 낭만적인 결정도 내 삶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행복 덕분에 지난 12년 동안 정말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밴스는 해마다 이사를 다니고 엄마의 남자가 자주 바뀌는 불안 속에서 살다가 할모의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할모의 집은 가난했고, 보통의 가정처럼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것도 아니고, 할모는 가난이 명예의 휘장이라도 되는 양 티를 내고 다녀서 창피스러웠는데도, 할모와 같이 사는 것이 평화롭고 안전하다는 느낌 때문에 행복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12. 274쪽 2행 ~ 275쪽 6행
그때 수줍음이 굉장히 많은 한 소년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 조그마한 지우개를 하나 쥐어주자, 순간 기쁨의 미소로 얼굴이 환해진 소년이 2센트짜리 선물을 쥔 손을 높이 들고 의기양양하게 가족의 품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신이 난 어린아이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중략) 그전까지 나는 늘 세상에 분노를 품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화가 나 있었다. 학교에 갈 때 다른 애들은 친구들끼리 차를 타고 가는데 나는 버스를 타야 해서 화가 났고, 내 옷이 아베크롬비에서 산 게 아니라서 화가 났고, 우리 할보가 돌아가셔서 화가 났고, 좁은 집에 살아야 해서 화가 났다. (중략) 그때 나는 누군가 지우개를 건넬 때 미소 짓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만족할 만큼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그날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 테다.
질문: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이 있게 하는데 결정적인 것(혹은 일, 혹은 사람)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무엇(혹은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