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

13쪽에는 그 안에 마치 빙하에 묻힌 천년된 시체처럼이라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이 소설 속에 45억년이라는 비밀이 있을 것 같다,

그 안은 환기 되지 않는 곳이고 빨래가 절대 마르지 않는 공간이고 키에슬로프ㅡ스키 감독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을 본 곳이다.

그는 엄청난 고뇌에 빠져있지만 어쨌든 계속 나아가고 있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그 사실 자체가 형벌을 승리로 만들어 준다.

 

2020. 07.08. 수요일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더위가 등을 뒤덮는다. 난 옥수수 한 개를 먹고 있고 에어프라이기에는 감자를 익히는 기계음이 동일한 소리를 내면서 돌고 있다. 감자를 깎아서 삶아먹어봐야 겠다. 하얀 전분으로 싸인 뜨거운 삶은 감자는 맛을 말하기가 그렇다. 당을 넣은 단맛과 혀 천장을 데울 듯한 뜨거움이 뜨거운 감자의 전부이다. 뜨거울 때는 거의 감자의 냄새를 상실한다. 이제야 깨닫는다. 갓 솥에서 꺼낸 뜨거운 감자는 감자 냄새가 안 나기 때문에 맛있다. 일에 대하나 열정이 식으면 누구나 자기 본색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식은 감자에서는 감자 냄새가 진해진다. 일을 도모할 때 일에 대한 통찰보다 자기의 욕망과 자기의 위치나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려고 할 때 식은 감자 냄새가 난다. 식은 감자를 밀어내듯 그런 사람은 밀어낼 수밖에 없다.

주인공 루터는 파리에서 알랭타네의 영화<백색도시>를 보았다. 이 영화가 실제 상영된 영화인지 확인해 봐야겠다.

32쪽 저녁에 그는 영화 <밀회>를 보러갔다. 그건 전통이었다. 생일날 어떤 식으로든 <밀회>를 보는 일. 보통은 비디오에 만족해야 했던 루크로서는, 스크린- 비록 작은 스크린이었지만 -에서 그 영화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생일을 홀로 보냈다는 사실에 대한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그 영화의 모든 면이 좋았다.

 

202007.09 목요일

34쪽 누군가의 삶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믿는 것은 분명 불가능하다. 한 개인의 유전자 안에, DNA안에 어떤 계획이 들어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각각 사람들은 하나의 약속을 지닌 채 태어나고 그 약속이 적절한 조건을 만나면 눈에 띄게 전면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이룬 것들을 반추하면서 느끼는 실망, 혹은 덧없음은 어쩌면 그가 버리거나 피해왔던, 하지만 완전히 입을 다물게 하지는 못했던 어떤 희미한 반향일지도 모른다.

어떤 삶의 양식은 지금은 희미해진 그 최초의 청사진에 더 가까이 닥가갈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202007.10. 금요일

다시 잠들었다가 비소리에 깬다. 새벽에 북쪽 창문을 다 열었는데 비가 들어왔다. 현미를 담아놓은 푸대에 물이 묻었으나 방수가 되어 쌀은 물에 젖지 않았다. 저 현미도 벌레가 슬지 모른다. 찹쌀에 쌀벌레가 생겨 베란다로 옯겨놓았다. 펼치고 말려야 하는데 공간이 없다, 점점 생활 할 수 없도록 베란다도 짐으로 메워져 가고 있다.

이 방엔 책과 다른 생필품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겨우 드나들고 컴퓨터에 앉아 일을 할 수있다. 그럼에도 아침이면 맑은 공기가 들어오고 새소리가 들리는 집이다. 오래된 묵은 성과 같고 비울 수 없는 성은 감옥과 같다. 포탄에 맞고도 굴뚝에 연기를 피워올리며 봄을 맞이하던 프랑크푸르트 성과 같다. 이미 폐허이면서 밥냄새를 풍기고 창을 연다. 그래서 이 집은 아직 살아있다.

시작은 그렇게 파리의 어느 골목에서시작되었다. 지금 일고 읽는 소 제목에서 시작되었다. 시작했으니 끝을 내야한다. 골목에 들어섰으니 골목의 끝에까지 가 보아야 한다. 출구가 없는 그림일지 모르지만 끝에 가서야 알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는가.

 

2020.07.12. 일요일

74쪽 이 대화처럼 흐르는

78쪽 다른 사람이 되려고요. 적어도좀 더 사람다워지려고

112쪽 그는 바흐의 평균률 건반곡을 집어 들었다.

 

20220.07.13 월요일

148쪽 요리는 문명 그렇게 자신을 몰입시키는 활동 중 하나였다.

새벽 1시에 내리던 비는 새벽을 거쳐 아침 6시까지 이어 내리고 있다.

일하러 가기 위해 8시에는 집을 나서야 하지만 아직 책을 읽을 시간은 충분하다.

유산균과 고혈압 약을 먹고 오랜 만에 커피를 탔다. 비소리 때문이다. 다양도실 배수구로 빠져 나가는 물소리가 마치 숲속의 좁은 계곡을 연상케 한다. 잠을 깨면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어휘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숙제처럼 만나야 할 사람들과 처리해야 할 일들을 짚ㅇ 보았다. 문태고모는 방아를 베었다고 전화를 하셨다. 시간을 만들어 식사라도 해야겠다. 진숙이 어머니와 문태고모, 불루베리농장의 젖큰 할머니 실은 그 할머니는 어머니와 먼 친척벌이다. 이제 그 동내에서 살아남은 1세대들이다. 홍아아제가 돌아가시기 전에 사진이라도 ᄍᆞᆨ어두었으면 아쉬움이 없을건데 생각만 해도 스스로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집안에 분란이 일었지만 시골집을 둘째 아들에게 넘겨주신 진숙이 어머니 판단이 옳을지도 모른다. 일요일마다 나와 어머니를 돌본다. 식사하고 하고 청소도 하고 마주보고 웃기도 할 것이다. 장장게 집을 물려주지 않았다고 각각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물려주는 사람 의지니까 옆에서 뭐라 할 수는 없는 문제다.

164쪽 이 세상에는 다른누구도 아닌 자기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있단 말이지. 그ㅡ길이 어디로 이어지냐고? 묻지 말고 그냥 가.

 

2020.07.15. 수요일

143쪽 지금은 나 자신이 다른 중심을 향해 가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거든.

 

2020.07.16. 목요일

330

그 책은 우울했다. 결국 우리 모두는 그런 모습이었고, 또한 그런 모습이 될 것이라는 생각. 말라비틀어진 스펀지 같은 덩어리들, 열 개중 아홉 개는 결국 폐기처분될 운명인 것들.

 

이 책도 막바지로 다가간다. 메시지가 있거나 철학적이거나 관념적인 표현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실 묘사를 아주 세밀하게 하였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들의 피부 어느 부위에 털이 나 있고 항문의 어느 쪽으로 손가락이 들어가는지, 축구를 하면서 힐끔힐끔 바라볼 때 온 ㅡ순간 남녀 주인공의 눈길이 서로 스쳐가는지 묘사를 하였다. 정리가 안 된 아파트를 묘사할 때는 흐트러진 짐들과 부엌을 오갈 때의 시선의 혼돈까지 읽을 수 있다.

 

책을 접기로 했다. 옮긴이의 말처럼 지금을 부정하지 않고 그 시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법을 기억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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