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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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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 서명숙 지음, 문학동네, 2017.

 

책을 배달받자마자 단숨에 꼼꼼하게 읽은 지 몇일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 책에서 받은 감동과 그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바로 그 시대를 공유했던 나에게는 행동하지 못한 부끄러움과 함께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이 생각나서 남이야기 같지 않았다.

저자 서명숙은 서귀포에서 나고 자라서 고대(76학번)에 진학했지만 나는 같은 나이지만 재수해서 다음 해에 그 근처의 대학(77학번)에 들어갔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영초언니가 고대 72학번이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72학번이었다. 학번을 들먹이는 것이 그 당시 선택받은 자들만 가던 대학을 못 다닌 분들에게는 불쾌한 경우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 72학번이 대학에 입학한 그 시기부터 서명숙과 내가 대학을 다닌 1980년말 까지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긴급조치 시대였고 영초언니와 서명숙이 활약한 그 무지막지하고 살벌한 시기였기 때문에 꼭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 시기가 지금은 많이 잊혀져 미니스커트나 장발 단속과 같은 코메디 같은 일이 벌어진 시대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리고 웬만한 사람들이야 좀 움츠리고 살아야 하는 정도의 시대 상황이었지만, 실제로는 박정희 장기독재와 불법통치에 저항한 사람들을 아무런 체포-구속영장이나 합법적 절차도 없이 불법체포-불법감금-고문수사-군사재판-엉터리 판결까지도 가능했고 영초언니와 서명숙과 같이 고문수사를 받고 감옥살이 한 사람들은 부지기수였고 사형판결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분들도 많다.


이 책은 그 살벌한 시대에 활약한 영초언니와 서명숙이 대학 선후배로 만나서 민주화 투쟁하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감옥에 가서 고초를 겪고 그리고 그 후일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당시에는 박정희정권을 비판하거나 반정부 집회나 시위를 하거나 반정부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하면 바로 감옥에 가는 것을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 웬만한 사람들은 다들 죽어지냈는데, 그래도 목숨 걸고 민주화투쟁을 한 분들 덕분에 박정희의 장기독재와 불법통치는 끝이 났다.

서명숙과 내가 1957년생이고 박정희가 1961년에 정권을 잡았으니까 내가 자의식이 생기고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쯤부터 (박정희가 죽은 날이 1979.10.26.일이었으니까) 내가 대학교 3학년 때까지 19년 동안 줄곧 대통령은 박정희였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말이 내 머리 속에 얼마나 확실하게 각인이 되었으면 나중에 그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 똑같이 박대통령이라고 호칭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에게는 문득문득 박정희대통령이 먼저 생각났고, 아니라는 상황을 깨닫고는 나는 그 지긋지긋한 박정희의 망령(亡靈)에 진저리를 쳐야만 했다. 아마도 서명숙도 그러하지 않을까?

이 책은 1970년대 그 시절 이야기다. 서명숙은 영초언니를 끌어들여 그 시절을 증언하고 있는데, 그 단서는 올해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이가 호송차에서 내리면서 엉뚱하게도 민주주의를 언급하는 장면이었다고 프롤로그에 썼다. 나도 최순실의 그 장면을 화면으로 보면서 1970-80년대에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잡혀 들어가서 재판을 받던 그 혈기왕성한 학생들과 민주투사들이 호송차에서 내리는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민주주의를 외치던 모습을 떠올렸었다. 교도관들은 소리치는 입을 막으려고 덤벼들었고! 서명숙은 최순실의 그 장면을 비현실적이라고 표현하였는데 나는 참 생뚱맞다!’고 느꼈었다.

이 책을 보면서 생각나는 말은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것! 이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김대중-김영삼-노무현-문재인 대통령도 그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시대라는 난세에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한 분들이었고, 이 책에 언급된 심재철, 유시민, 최순영 같은 분들은 그래도 보상을 받아서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때 활약을 하고 고초를 겪었음에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수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이 있었다. 나중에 제정된 민주화보상법, 더 정확히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로도 보상받을 길은 없었지만 뒤에서 열렬히 지지해주고 희생적으로 열심히 뛰어준 사람들이 많았고 그 중에 상당수가 안타깝게도 빛도 못보고 그냥 시들어간 경우도 많았다. 이 책에 나오는 정문화가 그렇고 내 주변에도 그런 친구가 있다.

 

나는 법대를 다녔는데 헌법 시간에 그 엉터리 유신헌법을 배웠다. 대통령의 중임제한 규정도 없고 3권분립도 적법절차 조항도 유명무실해진 그 황당한 헌법과 그것보다 더한 헌법현실을 보면서 많이도 착잡했다. 아마도 대학 시절 내가 겪었던 가벼운 우울증 증상은 이러한 갑갑한 시국과도 연관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헌법을 가르치셨던 소심했던 교수님은 워낙 한심하게 쓰여진 헌법조문의 대목에서는 얼버무리시면서 그냥 지나쳤다.

나의 경우는 그 때나 지금이나 성향이야 운동권 못지않았으나 성격이 소극적이고 제대로 된 선배를 못 만나서 운동권은 못되었다. 하기야 신문사나 탈춤반 같은 써클에 운동권 기질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지하에 이념써클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누가누가 잡해갔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어 모른체 했다. 나는 심정적 지원군 정도!

이 책의 앞부분에 서명숙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국민교육헌장을 단 하루만에 외웠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러한 머리는 타고 나는 것인데 서명숙은 워낙 머리가 좋았나 보다. 나도 그 때가 얼핏 생각나는데 선생님이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라 하니 뜻도 모르고 외었는데 그래도 2~3일은 걸렸던 것 같은데...

 

그 당시의 운동권에는 여전히 가부장제적 전통이 강했다고 들었다. 운동권 아니더라도 그 당시에는 여자 후배가 남자선배들에게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영초언니와 서명숙처럼 운동권 여학생들은 담배를 많이 피었다. 그 당시에는 운동권에서는 말도 못 꺼내는 분위기였지만 다른 사람들(부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 권은숙 포함)이 나중에 그 당시를 회고하면서 쓴 글들을 보면 여자무시를 넘어서는 성희롱 성추행 같은 것도 있었겠다. 이 책에는 그러한 상황이 순화되어 나오지만 여학생들이 따로 모임을 결성하는 등 어렴풋이 언급되는 상황을 보니 가부장제적-성희롱적인 횡포가 심한 경우도 많았으리라.

 

기자출신인 서명숙의 글발은 끝내준다. 그녀의 이전 책들처럼 이 책도 술술 잘 읽힌다. 표현은 사실적이고 문장은 매끄러우면서 간결하고 정확하다. 이러한 솜씨도 타고난 소질에 그 동안에 갈고 딱은 수련의 덕분이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명숙은 소신이 확실하고 야무지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기대를 온몸으로 받으면서 자라고 서울로 유학까지 온 저자가 곳곳에서 흔들리는 모습도 인간적으로 잘 그려졌다. 하기야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서명숙의 이러한 재능과 경력과 내공이 한 여인의 몸과 마음에 응축되고 오랜 시간을 거쳐 숙성되어 마침내 제주올레길로 화려하게 만개하였다. 그녀는 선견지명을 가지고 아무도 생각해 보지도 못한 치유를 위한 걷는 길! 제주올레길을 최초로 고향 제주도에 만들었고 그 길이 각광을 받으면서 각 지자체로 전세계로 전파되었다. 대한민국 최남단 서귀포시의 서명숙상회의 딸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아주 새롭고 유익한 트랜드를 만든 아주 자랑스러운 유명인이 되었다.

영초언니나 서명숙 같이 이 땅의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고생하고 희생한 분들의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정치적 민주주의의 절차와 제도를 구현하며 살고 있고 인권과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으니 이런 책을 읽으면서 그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듬뿍 가져야겠다. 작년과 올해로 넘어오면서 계속되었던 그 촛불 시위와 그 이후의 과정도 일제 강점기 시대의 독립운동부터 해방후에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분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역사는 그렇게 진행된다. 감사할 따름이다

 

쓸데없는 사족:

1. 서명숙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연애하고 결혼을 한 동지였던 엄주웅과 21년만에 이혼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서명숙의 그 이전의 책들에서도 이런 내용은 확실하게 안 나왔는데, 그래도 나는 전에 대충 그런 얘기는 들었는데 여기서 확인하니 내가 당황스러웠다. 천하의 서명숙이!

다들 사이좋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부부관계를 포함한 가족관계가 다들 어려운가 보다.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2. 누구의 말을 들으니 서명숙 이사장은 벌써 2년전쯤에 담배를 끊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책에서 그런 사실을 밝혔으면 좋았을텐데! 그러면 서명숙 팬들이 좀 더 안심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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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 - 디지털 세계를 벗어나 진짜 인생을 찾은 한 가족의 유쾌한 고백록
수잔 모샤트 지음, 안진환.박아람 옮김 / 민음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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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

 - 수잔 모샤트 지음, 안진원 박아람 옮김, 민음인 출판사, 2012.


이 책을 읽는 동안 너무나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느껴져서 누군가에게 자꾸 소개해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비록 지구 반대편(호주에서도 서쪽 끝 퍼스)에서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였지만 바로 나와 우리 아이들과 우리 학생들의 이야기였기에 실감이 팍팍났다.

이 책은 저자가 세 아이들과 함께 6개월 동안 화면이 나오는 전자기기들, TV PC 스마트폰 게임기를 사용하거나 보지 않기를 작정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어느덧 이러한 전자기기들에게 중독되어 이것들이 없는 세상을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은 세상에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들과 결별하겠다니 얼마나 커다란 모험인가??? 저자는 이 모험을 그 당시(18450년)에 미국의 최첨단의 문명사회를 뒤로하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2년 동안 하면서 <월튼>이라는 명작을 남긴 소로우를 본받겠다는 각오로 단행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찌나 감칠맛 나게 썼는지 읽는 내내 참으로 유쾌했다.

이것은 실험이었다. 온갖 기기를 다 이용하다가 끊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현대 생활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자는 일시적으로만 끊겠다고 작정하고 실험에 돌입한 것이다. 실험은 실험이 끝나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소로우도 그랬듯이. 이 가족들도 다시 그 기기들을 사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실험 전과는 다르게 덜 사용하고 집착하게 되지 않을까!


전철을 타고 가노라면 10에 8~9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나는 마지막 최후까지 그러지 않고 책을 보겠다고 작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불과 채 2년도 되지 않았다. 이러한 전자기기의 범람과 남용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동안 많이도 즉흥적이게 되고 사고가 얇아지고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로 전락된 느낌이다. 미디어 기기에 중독된 어른이나 아이들은 모두 그것들에 몰두하여 사용하고 있을 때는 행복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그 때가 가장 게으르고 수동적이며 소모적이며 집중력과 생산성도 최악이 된다. 또한 다른 부작용도 있겠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이어폰의 악영향으로 난청難聽인구가 많아질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정도 상황까지 되다 보니 이러한 기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유익한 정보를 습득하고 활용하여 인간의 가치와 품성을 더 높였다고는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정보 기기들에 대한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보통 4인 가족으로 치면 (초기에 전자기기들의 구입비용은 빼고도) 스마트폰 4개 사용료, 집전화 비용, 집인터넷 접속료, 케이블 TV이용료 등으로 한 달에 약 30여만원이 들어갈 것인데, 이 비용은 한 가구의 지출비용의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이를 알고 통신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으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얻는 것은 무엇인가. 한 예로 직장에서 일을 해야 했던 저자는 집에 있는 아이들과 통화를 많이 할수록 자녀 양육의 질도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많이 통화했는데, 나중에 결산을 해 보니 불안은 줄어들었겠지만 이는 오히려 휴대폰과 엄마에 대한 의존증만 심화시켰다고 본다. 그 때는 왜 이것을 몰랐을까? 


전자기기의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이 많다. 우선 이 기기들을 통하여 각자의 공간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가능하여 대화와 소통에 상당한 지장을 받게 된다. 우리 집처럼 밥 먹으면서 TV를 시청하는 보니 어쩌다 만나는 가족 간의 대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책에도 나오듯이 한 가족이 승용차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더라도 좁은 한 공간에 모여 있을 뿐 각자 다른 기기들과 접촉하면서 각자의 세계에서 빠져 있다 보니 가족공동체의 의미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요즈음 아이들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어 부모 말을 건성으로 듣거나 잘 안 듣는다. 저자가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 얻어진 것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 것으로 더 잦아진 가족간의 모임과 대화를 꼽았다.

이 책에 나온 저자의 가족은 나름대로 의식 있는 집안인데도 이렇게 저렇게 전자기기에 매몰된 경우였는데, 그래서 이러한 실험이 가능했는데, 문제는 더 가난하고 형편이 안 좋은 집의 아이들은 더 집착하고 중독되어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맞벌이 가정이나 한부모가정 아이들의 경우는 아마도 사정이 더 안 좋을 것이다. 저자도 직장을 가진 바쁜 한부모(싱글맘)이기 때문에 그 보상으로 (먹는 것 중에 단 것이나 기름진 것은 통제하면서) 아이들이 전자기기에 빠져드는 것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통절히 자책을 하고 있다. 


‘기술을 통한 보다 나은 삶’의 약속은 언제나 부담이 따르는 거래이며 종종 모순적인 거래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탁기는 특히 주부들의 가사노동을 현격하게 줄여 주었지만 깨끗함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 높아져서 더욱 많은 빨래를 더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우리의 환경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청결하고 깔끔해졌지만 여전히 여성들의 노고와 자원과 비용의 낭비는 심각하다. 또한 집의 유선전화와 흑백TV만으로 행복했던 그 시절에 비하여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며 더 많은 지출을 하기 위하여 우리는 더 여유가 없고 바쁘게 생활하게 되니, 그 때에 비해 행복의 총량이 더 늘어난 것 같지도 않다. 

전자기기의 목적은 정보전달에 있는 것인데, 문제는 점차로 이러한 비용증가를 부담할 수 있는 계층과 그러지 못하고 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계층으로 나누어진다는 데에 있고 이 계층의 분화 현상은 사회의 정보접근성에 대한 격차로 벌어지고 이는 결국 사회적 부와 신분의 양극화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정보통신 기술의 시대에서 다시 예전의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종이위에 필기도구로 글을 쓰는 것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혀진 기능이 되었다. 정보통신기술을 겨우겨우 뒤따라가는 나에게도 이제 필기도구로 (간단한 메모는 몰라도) 글 쓰는 것은 물 건너갔다. 사고자체가 컴퓨터 자판에 맞게 바뀌어져서 생각이 나는 것과 자판을 두두리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다. 그러기에 이제는 컴퓨터 자판 앞에서만 글이 쓰여진다는 얘기다. 저자도 그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전자타자기가 나올 무렵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생각의 속도에 따라 글자를 쳐낼 수가 있었다...자판이 글쓰기의 도구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게 또 하나의 감각 기관이나 다름없었다”(251쪽)


컴퓨터를 통한 편집은 정말로 환상이다. 글쓰기 속도는 늘었고 책도 많아지고 정보도 많아졌다. 세계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뉴스와 정보의 홍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저자나 나도 마찬가지였다. 차분하게 뭐를 할 수 없는 짜투리 시간에 나는 수시로 인터넷 포털싸이트를 들락거리며 뉴스와 정보를 찾으며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다. 특히 제목이 자극적인 연애인들 기사와 사진들은 지나치기 힘들다. ‘하의실종’ ‘칼힐’ ‘명품 몸매’ ‘연애설과 이혼기사’. 내가 보기에도 내가 한심스러운데... 저자도


“우선 나는 수많은 지식인 성인들이 그러하듯 ‘뉴스’를 다이어트 콜라처럼 소비했다. 하루 종일 실속없이 마셔댔다는 얘기다... 식사를 하고 30분 동안 낮잠을 자다가 바로 잠에서 깨어 고개를 들고 묻는다. ‘새로운 소식 있나?’.. 우리가 마치 열혈팬이나 스토커라도 되는 것처럼 ‘쫓아다니는’ 뉴스의 ‘효용’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현대 저널리즘에서 좀처럼 논의되지 않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다” 118쪽     


저자는 세 남자와 살았었고 그 중 두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이 책을 쓸 때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소설가 공지영과 비슷하다). 한창 민감한 아이들을 설득하여(아마도 돈도 쥐어준 것 같다) 이러한 실험에 참가하게 한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이렇게 똑똑하고 능력있고 의식있는 엄마의 아이들이니까 나름대로 수준이 있는 애들이겠고 그래서 잘 견디어 낸 것이 아닐까! (남편들은 이러한 부인을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으며, 이러한 여성은 또한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남편을 싫어할 수도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이러한 사생활이 적당히 버무려져서 솔직담백한 글이 되었고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대단히 궁금해 하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지금은 호주를 떠나 23년 만에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뉴욕으로 건너갔지만 그곳에서 저자가 돈도 많이 벌고 아이들과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책을 많이 많이 저술해 나를 즐겁게 해 주고 세상을 품위있게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봐 보시라! 책이 좀 두껍지만 유쾌하고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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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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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걷는다> -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

1권 아나톨리아 횡단, 2권 머나먼 사마르칸트, 3권 스텝에 부는 바람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2003, 효형출판사


모두 3부작으로 되어 있는 <나는 걷는다> 책을 20여일에 걸쳐 다 읽었다.


1. 우선 대단한 올리비에이다. 62살에 터어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만2천km를, 그것도 무지 낯설고 매우 험난한 곳을 걸어서 가다니!!!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00km이니 서울에서 부산까지 15번 왕복하는 거리이다. 와~~ 놀라고, 감동하고, 전율을 느낀다! 위대한 올리비에이다. 인간은 이렇게 위대할 수 있다. 4년에 걸쳐 4번만에 치밀한 준비를 한 끝에 1만2천km를 걸었다. 인간 승리다!


2. 올리비에는 가는 곳을 매우 치밀하게 기록하였고 그 기록이 일반적인 문학보다도 더 높은 경지의 문학작품을 완성해 놓았다. 저자가 오래도록 치열한 기자생활한 경륜이 밑받침이 되었을 테지만, 이 책은 보통의 어느 문학책들 보다 더 서사적이고, 더 감상적이고, 더 치밀하고, 더 완성도가 높은 문학작품이 되었다. 걷는 것도 힘들지만 두꺼운 책 3권을 쓰기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능력도 능력이지만 엄청난 의지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다. 하기사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고 공부하고 경력을 쌓았다니, 그간의 경험이 이렇게 위대한 작품을 남겨 놓았다고 본다. 참으로 인간은 어디서든지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3. 올리비에가 걸은 길은 그 자신과는 참 많이도 다른 문화와 언어와 종교와 풍습이 있는 곳이다. 그 자신이 익숙한 곳(프랑스 노르망디지방)을 떠나 그 낯선 곳에서 그 낯선 것들과 부딪치면서 나름대로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그의 눈에 계속 거슬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뿐 것들인, 공무원과 경찰들의 관료주의, 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학대와 자유박탈과 인권유린, 청결하지 못한 환경, 출구가 없을 것 같은 가난, 마구 쏟아지는 공해물질, 남을 사기치고 도둑질하려는 행동들이었다. 서양의 자유주의와 합리주의와 부유함와 청결함에 익숙한 그가 이해하기 힘든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예민하게 인식하고 인내하고 극복하는 그 모든 과정이 이 책에 아주 세밀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그 순간순간이 나에게 아주 실감나게 전달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걷는 동안에 그에게 호의와 편의를 제공한 고마웠던 그 많은 사람들의 기록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그러한 따뜻한 온정이야말로 색다른 언어와 종교와 풍습을 떠나서 인류애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충만해 있음을 이 책은 증명해 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이 세상은 살만한 세상임을 증언하고 있다.          


4. 올리비에는 1~2천여년 전에 동서양을 오가며 장사를 했던 대상(隊商)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 대상들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무너져 내렸지만 그 옛날의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인류문명의 교통로를 체험하려 했다. 그는 짐을 잔뜩 실은 낙타들을 몰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떼를 지어서 이동하고,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숙소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걷고 또 걷고 했던 그 대상들을 떠올리며 걷고 또 걸었다. 예전에는 대상들이 그  북적대던 그 길을 지금은 자동차와 기차가 점령했지만, 아마도 그 길을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걸어간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 기록으로 이렇게 책으로 남겼으니 아마도 수많은 세월이 후에는 이 책이 역사의 보고가 될 것이다.

그 옛날의 대상들은 하루에 25km를 평균 8시간에서 12시간을 걸었다고 했다. 그 정도의 거리마다 대상들의 숙소가 있었고, 그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 옛날에 대상 무역의 경제적 가치를 깨닫고 이러한 시스템을 창안하고 유지하였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데.... 그것들이 세월 속에 묻혀지는 것이 안타깝다


5. 올리비에는 그렇지만 하루에 많게는 62km를 걸었는데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다. 더욱이 먹고 자고 기록할 것들을 많이 짊어지고 끌고 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만한 거리를 걸었다니 대단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는 이 길을 왜 걸었는가???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고 갈 수도 있는데... 그는 그 여행에 대하여 “내 안에 있는 억누를 수 없는 원초적인 충동”(2권119쪽)이라고도, 친구의 말을 빌어 “자신과 벌이는 일 대 일 싸움”(2권 378쪽)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는 이러한 도보여행을 준비하면서 은퇴할 정도로 나이든 그의 존재의 의미를 다시 되찾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6. 이 3권의 책에는 경치가 좋은 곳과 인상 깊은 장면들에 대한 묘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에 나에게 단 하나만 고루라고 한다면 3권 399쪽에 나오는 중국의 경작지 장면이리라! 만리장성보다도 피라미드보다도 더 장엄한 것은 농부들이 만들어낸 빈틈없이 경작되는 농경지인데, 이 웅장한 작품을 올리비에는 “어느 쪽을 돌아보든, 위를 향하든 아래를 향하든 수천 개의 비탈진 경작지”가 “해가 나자, 모든 것이 빛나는 팔레트 같았다”고 묘사했다. 나에게는 제주올레 1코스 말미오름에 올라 성산일출봉 쪽을 바라보았을 때 마치 퍼즐조각 같았던 제주도의 경작지가 나타났을 때 느꼈던 그 느낌과 흡사하게 다가왔다. 먹고 사는 문제는 인간에게 가장 큰 문제이지만 이 문제에 당면하여 인간은 이렇게 대지에 뿌리내리면서 끈질기게 +경건하게 살아가고 있다. 서울의 신도림역에서 환승하는 그 많은 인파를 볼 때 느꼈던 인간에 대한 경외감도 비슷한 느낌이리라! 

 

6.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오래도록 걷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제주올레를 자주 다녀오는 편이지만 그래도 더 오래오래 걷고 싶다는 충동이 나를 들뜨게 했다. 지금은 직장에 억매여 오랜 기간을 걷기 힘든 상황이고, 지난번처럼 3일정도 보다 더 오래 걸으면 기가 빠져서 그런지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염려되는 상황이 있지만, 언젠가는 1만2천km는 못 걷더라도 제주도를 일주하는 올레길 전코스(약400km)을 걷는다든지, 산티아고(약800km)를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 중에 제주올레길 전코스는 언젠가는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으리라!!! 

올리비에는 먹는 것, 자는 곳을 때와 곳에 따라 가리지 않고 순응해 나갔다. 야생의 체질이라고 할까! 긴 여행을 하려면 그런 체질이어야 하는데, 나는 여러 사람이 함께 자야 하는 게스트하우스나 찜질방을 꺼리는 편이니 우선 나의 체질 개선부터 해야겠다!


7. 책읽기는 역시 자기만의 행복이다. 두꺼운 3권의 책을 꼼꼼하게 읽은 후의 자기만족감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것들이 나의 자존감에 대한 기반이 되리라! 더 나아가 그 소감을 이렇게 글로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나의 행위는, 글을 쓴다는 것은 그냥 읽는 것과는 달리 상당한 고통과 열정과 능력을 요구하기에, 귀찮니즘을 떨쳐낸 결과물이다. 올리비에와 비교해 보면 아주 작은 것이지만, 이러한 독서노트도 나의 존재를 더욱 의미있게 하는 것이리라!!!

문제는 책 읽는 사람들의 병폐인 책속에서 농사짓고, 책속에서 여행하며 걷고, 책속에서 구호활동하고, 책속에서 사랑하고... 이는 책읽는 사람들이 간접경험에만 만족한 나머지 실천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독서는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지만 실천이 따르지 않는 독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쨌든 나는 걷는다! 나는 읽는다! 나는 꿈꾼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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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개청춘 -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
유재인 지음 / 이순(웅진)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각종 공사에 재직하고 있는 간부체질DNA를 가진 기성세대들들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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