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걷는다> -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

1권 아나톨리아 횡단, 2권 머나먼 사마르칸트, 3권 스텝에 부는 바람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2003, 효형출판사


모두 3부작으로 되어 있는 <나는 걷는다> 책을 20여일에 걸쳐 다 읽었다.


1. 우선 대단한 올리비에이다. 62살에 터어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만2천km를, 그것도 무지 낯설고 매우 험난한 곳을 걸어서 가다니!!!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00km이니 서울에서 부산까지 15번 왕복하는 거리이다. 와~~ 놀라고, 감동하고, 전율을 느낀다! 위대한 올리비에이다. 인간은 이렇게 위대할 수 있다. 4년에 걸쳐 4번만에 치밀한 준비를 한 끝에 1만2천km를 걸었다. 인간 승리다!


2. 올리비에는 가는 곳을 매우 치밀하게 기록하였고 그 기록이 일반적인 문학보다도 더 높은 경지의 문학작품을 완성해 놓았다. 저자가 오래도록 치열한 기자생활한 경륜이 밑받침이 되었을 테지만, 이 책은 보통의 어느 문학책들 보다 더 서사적이고, 더 감상적이고, 더 치밀하고, 더 완성도가 높은 문학작품이 되었다. 걷는 것도 힘들지만 두꺼운 책 3권을 쓰기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능력도 능력이지만 엄청난 의지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다. 하기사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고 공부하고 경력을 쌓았다니, 그간의 경험이 이렇게 위대한 작품을 남겨 놓았다고 본다. 참으로 인간은 어디서든지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3. 올리비에가 걸은 길은 그 자신과는 참 많이도 다른 문화와 언어와 종교와 풍습이 있는 곳이다. 그 자신이 익숙한 곳(프랑스 노르망디지방)을 떠나 그 낯선 곳에서 그 낯선 것들과 부딪치면서 나름대로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그의 눈에 계속 거슬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뿐 것들인, 공무원과 경찰들의 관료주의, 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학대와 자유박탈과 인권유린, 청결하지 못한 환경, 출구가 없을 것 같은 가난, 마구 쏟아지는 공해물질, 남을 사기치고 도둑질하려는 행동들이었다. 서양의 자유주의와 합리주의와 부유함와 청결함에 익숙한 그가 이해하기 힘든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예민하게 인식하고 인내하고 극복하는 그 모든 과정이 이 책에 아주 세밀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그 순간순간이 나에게 아주 실감나게 전달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걷는 동안에 그에게 호의와 편의를 제공한 고마웠던 그 많은 사람들의 기록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그러한 따뜻한 온정이야말로 색다른 언어와 종교와 풍습을 떠나서 인류애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충만해 있음을 이 책은 증명해 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이 세상은 살만한 세상임을 증언하고 있다.          


4. 올리비에는 1~2천여년 전에 동서양을 오가며 장사를 했던 대상(隊商)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 대상들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무너져 내렸지만 그 옛날의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인류문명의 교통로를 체험하려 했다. 그는 짐을 잔뜩 실은 낙타들을 몰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떼를 지어서 이동하고,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숙소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걷고 또 걷고 했던 그 대상들을 떠올리며 걷고 또 걸었다. 예전에는 대상들이 그  북적대던 그 길을 지금은 자동차와 기차가 점령했지만, 아마도 그 길을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걸어간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 기록으로 이렇게 책으로 남겼으니 아마도 수많은 세월이 후에는 이 책이 역사의 보고가 될 것이다.

그 옛날의 대상들은 하루에 25km를 평균 8시간에서 12시간을 걸었다고 했다. 그 정도의 거리마다 대상들의 숙소가 있었고, 그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 옛날에 대상 무역의 경제적 가치를 깨닫고 이러한 시스템을 창안하고 유지하였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데.... 그것들이 세월 속에 묻혀지는 것이 안타깝다


5. 올리비에는 그렇지만 하루에 많게는 62km를 걸었는데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다. 더욱이 먹고 자고 기록할 것들을 많이 짊어지고 끌고 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만한 거리를 걸었다니 대단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는 이 길을 왜 걸었는가???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고 갈 수도 있는데... 그는 그 여행에 대하여 “내 안에 있는 억누를 수 없는 원초적인 충동”(2권119쪽)이라고도, 친구의 말을 빌어 “자신과 벌이는 일 대 일 싸움”(2권 378쪽)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는 이러한 도보여행을 준비하면서 은퇴할 정도로 나이든 그의 존재의 의미를 다시 되찾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6. 이 3권의 책에는 경치가 좋은 곳과 인상 깊은 장면들에 대한 묘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에 나에게 단 하나만 고루라고 한다면 3권 399쪽에 나오는 중국의 경작지 장면이리라! 만리장성보다도 피라미드보다도 더 장엄한 것은 농부들이 만들어낸 빈틈없이 경작되는 농경지인데, 이 웅장한 작품을 올리비에는 “어느 쪽을 돌아보든, 위를 향하든 아래를 향하든 수천 개의 비탈진 경작지”가 “해가 나자, 모든 것이 빛나는 팔레트 같았다”고 묘사했다. 나에게는 제주올레 1코스 말미오름에 올라 성산일출봉 쪽을 바라보았을 때 마치 퍼즐조각 같았던 제주도의 경작지가 나타났을 때 느꼈던 그 느낌과 흡사하게 다가왔다. 먹고 사는 문제는 인간에게 가장 큰 문제이지만 이 문제에 당면하여 인간은 이렇게 대지에 뿌리내리면서 끈질기게 +경건하게 살아가고 있다. 서울의 신도림역에서 환승하는 그 많은 인파를 볼 때 느꼈던 인간에 대한 경외감도 비슷한 느낌이리라! 

 

6.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오래도록 걷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제주올레를 자주 다녀오는 편이지만 그래도 더 오래오래 걷고 싶다는 충동이 나를 들뜨게 했다. 지금은 직장에 억매여 오랜 기간을 걷기 힘든 상황이고, 지난번처럼 3일정도 보다 더 오래 걸으면 기가 빠져서 그런지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염려되는 상황이 있지만, 언젠가는 1만2천km는 못 걷더라도 제주도를 일주하는 올레길 전코스(약400km)을 걷는다든지, 산티아고(약800km)를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 중에 제주올레길 전코스는 언젠가는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으리라!!! 

올리비에는 먹는 것, 자는 곳을 때와 곳에 따라 가리지 않고 순응해 나갔다. 야생의 체질이라고 할까! 긴 여행을 하려면 그런 체질이어야 하는데, 나는 여러 사람이 함께 자야 하는 게스트하우스나 찜질방을 꺼리는 편이니 우선 나의 체질 개선부터 해야겠다!


7. 책읽기는 역시 자기만의 행복이다. 두꺼운 3권의 책을 꼼꼼하게 읽은 후의 자기만족감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것들이 나의 자존감에 대한 기반이 되리라! 더 나아가 그 소감을 이렇게 글로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나의 행위는, 글을 쓴다는 것은 그냥 읽는 것과는 달리 상당한 고통과 열정과 능력을 요구하기에, 귀찮니즘을 떨쳐낸 결과물이다. 올리비에와 비교해 보면 아주 작은 것이지만, 이러한 독서노트도 나의 존재를 더욱 의미있게 하는 것이리라!!!

문제는 책 읽는 사람들의 병폐인 책속에서 농사짓고, 책속에서 여행하며 걷고, 책속에서 구호활동하고, 책속에서 사랑하고... 이는 책읽는 사람들이 간접경험에만 만족한 나머지 실천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독서는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지만 실천이 따르지 않는 독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쨌든 나는 걷는다! 나는 읽는다! 나는 꿈꾼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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